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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인도를 떠난다는 기쁨도 있지만 더 길게 오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웠다. 조금 더 시간을 내서 왔다면 남인도까지 갔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짧은 일정으로 오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델리, 아그라, 자이푸르를 묶어서 여행을 오게 된다. 델리로 돌아올 날이 며칠 남지 않아서, 델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을 하면 돌아올 때 변수가 생길 것 같아서 델리에서 4~5시간 거리에 있는 자이푸르를 인도여행의 마지막 도시로 정했다.

 

카주라호에서 자이푸르까지는 기차로 1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인도기차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침에 카주라호에서 기차를 탔다.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는 자이푸르에 도착해야 했으나, 우리는 또 새벽에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자이푸르에 도착했다. 자이푸르의 새벽은 쌀쌀했다. 숙소까지 오토릭샤를 타고 갔는지, 걸어갔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그러나 새벽 공기의 싸함과 길거리를 거닐고 있는 들개들의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자이푸르의 첫인상은 싸늘했다.

 

 

숙소로 정한 곳은 예전에 궁전 비슷한 곳으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해서 정했는데, 방에 걸려 있던 초상화가 밤새 나를 처다보는 것 같아서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검은색의 옷장을 열면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이불 밖으로 나갈 수 없었었다. 아무튼 기분야릇한 밤을 보내고 자이푸르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낮이 되니 밤과는 도시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낮에는 도시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도시는 생기가 없어지고 으스스함만 남았다.

 

자이푸르에 오는 백이면 백 모두 이 건물을 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와마할, 한국어로 바람의 궁전은 작은 창문이 여러개가 큰 대로를 향해 놓여져 있는 건물이였다. 이 창문을 통해 궁전 안에 사는 여성들이 바깥세상을 구경했다고 한다.

 

카메라의 화각이 넓지가 않아서 그당시 유행했던 핸드폰용 광각카메라를 핸드폰에 부착하고 찍어야 하와마할의 전체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붉은 색의 건물에 작게 난 창문들에 기대어 밖을 보았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그런가 창문들이 입체적으로 살짝 앞으로 나와 있었다. 하와마할을 보고 있으면 알라딘이 생각났다. 그냥 저 창문에 기대어 공주가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바람의 궁전 근처에 있는 시티 팰리스로 가보았다. 바람의 궁전을 보고 나니 딱히 땡기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스타벅스나 카페가 있어서 시간을 보낼만한 장소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책자에서 가볼만한 다른 곳을 찾아 보게 되었다. 앉아서 쉴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그냥 쉴새없이 걷게 되는데, 그래도 이런 유적지나 볼거리가 있는 곳은 가끔 쉰 공간이 있기에 근처 관광지로 향했다. 그런데 이 동네는 무슨 비둘기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비둘기 때가 하늘을 날면 하늘이 까맣게 보였다. 비둘기가 무섭기도 하지만 날면서 똥을 뿌리고 갈까봐

 

무슨 행사가 있던 것일까?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의 커튼이 인상적이였다.

 

 

그런후 화려한 장식을 한 낙타와 기마병 같은 사람들이 나왔다. 인도 서부지역은 동부와 다르게 사막지역인데 이곳이 그런 곳에 속하나 보다. 기마병보다는 낙타의 훤칠한 키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뒤로는 무용수가 나오는 등 이지역은 전통행렬 같아 보였다.

 

 

이놈의 비둘기들은 한두마리가 아니다. 한번 후두둑 날기 시작하면 무섭다는 인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시티 팰리스도 밖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도 어디가나 사람의 물결에 쉽게 휩싸이게 된다. 세계 2위의 인구 대국다웠다. 인도를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였다. 세계 인구의 1위와 2위인 나라를 이렇게 경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두나라의 느낌은 정반대라 신기했다.

 

 

시티팰리스를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바람의 궁전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 보았다.

 

 

인도에 와서 음식에 엄청 신경쓰였다. 이때까지 다행히 장염 등에 걸리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길거리 음식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바나나였다. 아빠는 카레를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시기에 식당을 찾을 때 인도 음식 전문점은 제외했다.

 

구글지도에서 찾은 중국음식 식당으러 갔다. 가격이 한국식당만큼 가격이 비쌌다. 일반 인도인들이 가는 식당보다 가격에 0이 하나씩 더 붙어 있었다. 인도 여행 후반부라 루피가 많이 없어서 음식을 먹고 싶은만큼 많이 주문하지 못한점이 아쉬웠다.

 

 

오후엔 바람의 궁전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애버 팰리스로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앰버 팰리스로 가는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앰버 팰리스는 자이푸르 외곽에 있는 성이였다.

 

 

버스에서 내려서 성으로 들어가는 길 비둘기도 많고, 성벽을 서성이는 염소나 소도 있었다. 참 어디를 가도 이런 풍경은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이푸르 북쪽에 있는 산쪽엔 여러 성들이 있는데 산비탈을 따라 성벽이 둘러져있고 노란색은 궁전이 있었다.

 

 

성으로 가기 위해선 지그재그로 생긴 길을 따라 올라갔다.

 

 

완만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꽤 올라갔다. 오래전엔 이 길을 말을 타고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드디어 오르막의 마지막부분을 오르니 넓은 광장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문밖을 보니 반대편 산에 성벽이 이어져 있었다.

 

 

바람의 궁전의 붉은색과 대비되는 노란색의 궁전이였다.

 

 

지대가 높다 보니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 왔다. 자이푸르 시내가 보이는 뷰는 아니지만 골짜기 사이로 자리잡은 마을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무가 많지 않은 사막같아 보이는 산들은 이방인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왔다.

 

 

궁전 안 이곳저곳을 돌다보니 광장이 보이는 곳에 가게 되었다. 광장이 아래에서 봤을 때도 꽤 넓어 보였는데 위에서 보니 더 넓어 보였다. 주변의 산들의 색과 궁전의 색이 깔맞춤을 한 것 같았다.

 

궁전 회랑을 따라 걸으며 보이는 풍경들은 이방인의 마음 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겨졌다.

 

 

 

성 자체가 꽤 크다보니 방문객이 많았지만 여유롭게 우리만의 속도로 걸으며 감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넓은 궁전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은 관광객에 의해 온기가 살아있는 건물이 되지만, 예전에는 누군가 애지중지 가꾸던 궁전이 아니였을까!

 

성의 회랑을 따라 거다 보니 성으로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호수와 지그재그 언덕길이 보였다.

 

 

 

궁전의 안쪽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아라비아풍이 느껴지는 건물의 장식들이 이 건물도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전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바람과 같이 지나갔다.

 

 

저 솥단지는 뭐하는 것일까?

 

 

 

앰버 궁전 근처에 계단식 우물로 유명한 곳이 있는데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지쳤기 때문에 유명한 계단식 우물에 가보지 못하고 다시 자이푸르 시내로 돌아왔다. 이곳에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있는 힘을 조금 더 짜내서 가봤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글을 쓰는 지금 밀려왔다. 아무튼 앰버 팰리스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자이푸르로 돌아오는데, 주말이라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A. Hawa Mahal Hawa Mahal Rd, Badi Choupad, J.D.A. Market, Kanwar Nagar, Jaipur, Rajasthan 302002 인도

B. 앰버 팰리스 인도 302001 Rajasthan, Jaipur, Amer, 데비징퓨라

C. 시티 팰리스, 자이푸르 Tulsi Marg, Gangori Bazaar, J.D.A. Market, Pink City, Jaipur, Rajasthan 302002 인도

D. Panna Meena ka Kund 인도 302028 라자스탄 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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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즐링에서 지프를 타고 3~4시간 이동한 후, 뉴잘파구이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인도의 삼대 도시인 캘커타(콜카타)에 도착했다. 기차는 다행히 연착없이 새벽 6시 무렵 콜카타 역에 도착했다. 콜카타에서 조금만 가면 방글라데시가 나오고, 미얀마가 나오는 도시로 인도 동쪽에 있는 도시이다. 예전 영국 식미지 시절 영국인들이 이곳을 발판 삼아 인도와 미얀마 등을 점령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델리에 비해 영국적인 느낌이 나는 건물들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다즐링에서 콜카타(캘커타)로 가는 길은 북에서 남으로 계속 내려오는 일정이였다.

 

 

새벽에 도착해서 숙소 체크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새벽 시간이였지만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조금 잔 후 콜카타 시내 구경을 나왔다. 제일 먼저 카주라호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표 예약하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신기하게 기차역에서 예약하지 않고 기차표 예약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콜카타는 낮에는 덥다는 느낌을 받았다. 델리나 바라나시 등은 싸하게 추운 느낌이 있었는데, 이곳은 햇살이 겨울인데도 다른 인도에 비해 뜨거웠다.

 

델리처럼 북적이는 도시였다. 그러나 델리에 비해 스모그는 적은 것 같았다. 뭔가 북적이지만 델리같은 무질서함은 아니였다. 같은 인도지만 느낌이 사뭇달랐다.

 

 

콜카타를 흐르는 강인 하우라 강을 보기 위해 하우라 다리로 걸어가는 길에 강가 옆에 있는 시장을 들렸다.

 

시장같기도 하고 시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래에서 봤을 땐 그래도 시장같아 보였는데, 위에서 보니 완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철제 구조물로 된 거대한 하우라와 다리는 차량통행도 많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다리였다. 인도의 다리는 국가보호 시설(군사시설) 같은 것이라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여행책자에 써있었다. 그런데 인도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다 핸드폰으로 사진찍고 하는데 우리만 경찰이 불렀다. 그러더니 사진을 보자고 한다. 그래서 몇몇 사진을 보여줬다. 경찰이 두명 있었는데, 한사람은 우리를 안보내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우리를 보내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안하다, 사진찍으면 안되는지 몰랐다라고 계속 말하니 사진찍지 말라고 말하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여행책자에도 경찰이 잡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글을 보았다. 그리고 심한 경우 카메라를 뺏아가려고 하니 조심하라고 적혀 있었다.

 

카메라를 뺏길까봐 은근 가슴을 조렸나 보다. 경찰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잽싸게 걸어 갔다. 얼마나 가슴이 콩딱거리는지, 카메라를 뺏기는 순간 인도여행의 모든 기억이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던지 눈에 잘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많은 인도인들이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해도 우리는 이곳을 찾은 이방인이라 누구의 눈에도 쉽게 띄었다.

 

차들은 쉴세 없이 다리를 지났고, 사람들도 다리를 건너 강건너편으로 갔다. 이렇게 큰 다리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걸어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다들 손에는 물건 하나씩 들고 힘겹게 다리를 통행했다. 저 짐들이 저분들의 삶의 무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구경 후 다리에서 멀지 않은 메단지역으로 갔다. 공원이 펼쳐진 이곳은 정신없는 도시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이였다.

 

주변에는 고층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뭔가 인도에서 이런 건물은 본적이 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생각보다 고층건물을 많이 본적이 업는 것 같다.

 

근처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 공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소리를 벗어나 이런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니 너무 좋았다. 계속 차들의 경적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아빠도 꽃도 있고 한적한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돗자리 하나 있으면 누워서 자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곳이였다.

 

 

공원에서 나와 빅토리아 메모리얼로 갔다. 횡단보도가 없는 길이 많기에 현지인들이 건널 때 눈치껏 따라 건너서 다녔다.

 

영국의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인 19세기 초 타지마할을 본따서 만든 건물이라고 한다. 어쩐지 돔형태 및 색상 등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카타는 겨울이지만 미세먼지나 스모그가 델리나 북인도 타지역에 심하지 않아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따뜻한 날씨 덕분일까 공원이 발달해 있고, 겨울이지만 나무도 푸릇푸릇했다.

 

 

길가의 야자수는 이곳을 더욱더 이국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같은 나라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가 수도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문화의 중심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처럼 이곳도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델리와는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더 사람들이 교양(?)있다고 해야할까?!

 

이곳의 환경이 풍경이 이곳 사람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일까? 뭔가 사람들도 세련되고 차분한게 콜카타라는 도시가 좋았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 앞에 있는 호수에 비친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의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아마 이것도 타지마할을 따라서 만들지 않았을까? 타지마할의 물에 비친 모습을 보고 오지는 못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이 물에 비친 모습을 보며 타지마할을 떠올렸다.

 

퇴근시간이 된 것일까? 빌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낮 동안도 활기찼던 거리가 더욱더 활기차졌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 맞은 편에 세인트 폴스 대성당이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찾아보니 영국 런던에 있는 성당과 같은 이름이였다. 그만큼 영국인들이 이곳을 식민지 기지로 삼고 자신들의 문화를 인도에 심어 놓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힌두교 나라에서 보는 성당이라 생소했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보기 위해 이곳에 방문하고 있었다. 성당 옆쪽에 플래너터리엄(천체과학관)이 있었다. 따로 입장료가 있는 것 같아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과학관 앞에 있는 화단의 꽃들이 너무 이뻤다.

 

 

캘커타의 둘째날은 택시를 타고 아주 조금 멀리 가보았다. 택시로 20~30분 거리에 있는 보태니컬 가든이였다. 특이한 나무들도 볼 수 있고, 일단 사람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이 너무 좋았다. 콜카타 시내를 걷다보면 노란색의 택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번쯤 타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택시를 타면 시간은 1970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캘커타의 겨울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택시를 타면 더웠다. 에어컨이 없는 택시는 달려야 밖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올드한 맛에 한 번은 타볼만 한 것 같았다. 여름에 탔으면 어떠했을지 상상을 해보았다.

보태니컬 가든에서 찍은 사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겨우 핸드폰에서 찾은 사진을 이것 하나뿐이였다.

A. Howrah Bridge Howrah Bridge, Howrah, West Bengal 700001 인도

B. 빅토리아 메모리얼 Victoria Memorial Hall, 1, Queens Way, Maidan, Kolkata, West Bengal 700071 인도

C. Botanical Garden Road Botanical Garden Rd, Howrah, West Bengal 711103 인도

D. 인도 서부 벵골 캘커타 Maidan Cathedral Rd, Maidan, Kolkata, West Bengal 700071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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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에서 타지마할을 본 후 다시 델리로 돌아온 후, 야간열차를 타고 인도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바라나시로 향했다. 친구들과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 한정된 시간에 여행을 해야했기 때문에 고르고 고른 곳이 바라나시였다. 그래도 갠지스강은 한번 보고 가야 인도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델리-바라나시 구간은 여행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구간이라 항상 표를 구하기 힘든 구간이였다. 친구들과 왔을 때는 2012년 여름이였다. 델리-바라나시 구간열차 중 빨리 가는 열차는 일단 외국인 표는 매진이였다. 그래서 뉴델리 출발이 아닌 올드델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여름 인도의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는데, 에어콘이 되는 열차칸은 벌써 다 매진이라서 선풍기가 달린 칸을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그것도 겨우 구한 것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대략 11시간이 걸리나, 연착이 잦은 겨울에는 11시간이 아닌 24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도 3~4시간 정도 연착되어 바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는 침대칸 열차이지만 선풍기만 달린 칸이였지만, 이번에는 에어컨이 달린 열차 칸을 탈 수 있었다. 인도의 열차는 설국열차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신분에 따라 재력에 따라 같은 기차도 칸이 무수히 많이 나뉘어 졌다. 맨 하층민이나 가난한 사람이 타는 기차칸은 몇 시간을 나무의자에 앉아서 가야하고, 그리고 침대칸도 등급이 나눠져 있어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친구들과 같이 탔던 침대칸이지만 선풍기만 달린 창문을 열 수 있는 칸이 있고, 그 상위 단계는 아빠와 내가 탄 것 같은 에어컨이 들어오지만 여럿이 같이 같은 칸을 이용하는 열차 칸이 있다. 그리고 돈이 더 많은 상류층 사람들은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1등석 싱글룸같이 생긴 기차칸을 이용했다. 아무튼 한 기차 안에 부유층부터 가난한 사람까지, 설국열차처럼 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행이랄까?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가는 기차표 값은 한화로 3만원 정도로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돈이 아니였다.바라나시에서 다즐링으로 가는 길목인 뉴잘파이구이로 가는 기차에서 다양한 인도 중류층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아빠는 엄청 피곤해 보이셨다. 기차에서 잠을 좀 청하기는 했지만 편하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는 숙박예약이라는 것을 하고 다니지 않았다. 첫날 첫도시만 숙소를 예약하고 나머지 숙소는 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찾아 보았는데, 인도여행 이후 여행은 미리 한국에서 되도록이면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을 떠났다. 인도여행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인도여행 이후 여행스타일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바라나시 숙소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때 지냈던 시바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딱히 아는 곳이 그곳 밖에 없었고, 그때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숙소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아빠와 함께 방문했을 때도 같은 숙소로 정했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했다. 특히 날씨가 적응이 안되었다. 여름에는 진짜 이곳은 미친듯이 습하고 더웠다. 그런데 겨울에는 으스스하게 춥고 습했다. 그래서 그런지 컨디선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북인도 어디가나 겨울엔 스모그가 심한 것 같다. 이곳도 강가에 위치해 있다보니 하루종일 강가의 안개와 오토릭샤에서 나오는 매연, 난반으로 인한 매연까지 합쳐져 뿌연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길을 걷다 한국어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뉴델리에서도 종종 길거리에 소가 서 있는 경우를 보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는 걷다 보면 서있는 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서있는 소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쫒아내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들도 오토릭샤들도 소를 피해서 갈 뿐이였다. 소들은 걷다 쓰레기 통이나 쓰레기장에 떨어져 있는 야채같은 것을 주워먹었다.

 

 

아빠는 정신없는 이곳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것 같아 보이셨다. 델리도 정신이 없지만 이곳은 지옥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비규환이였다. 특히 강가 오게 되면 오만감정이 교차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쉬지 않고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있고, 산사람은 똑 먹고 살기 위해 죽은 사람 옆에서 밥을 먹고 대화를 이어간다.

 

사는게 뭔가라는 질문을 나도 모르게 해보게 되는 곳이였다. 인도인들은 이곳에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하고 다하는데, 우리가 이 물에 피부가 닿으면 피부병으로 고생한다고 하기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갠지스 강은 그렇게 폭이 넓은 강은 아니나, 왠지 보고 있으면 드넓은 평원을 달리는 강이라 그런지 한없이 넓고 크게 느껴졌다.

 

다즐링을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바라나시역으로 릭샤를 타고 갔다. 그런데 릭샤꾼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 몸무게 반밖에 안되는 분이 정신없는 거리에서 열심히 패달을 밟는데, 왠지 짠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주기로한 돈보다 더 드렸다. 대부분 외국인들에게 사기치는 릭샤꾼이나 오토릭샤꾼이 많은데, 그렇지 않았기에 왠지 마음이 더 갔다.

 

 

바라나시에는 두개의 기차역이 있다. 하나는 시내에 있고 다른 하나는 오토릭샤로 30~4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자신이 타고자 하는 기차나, 내리고자 하는 기차가 어느 역에 정차하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뉴잘파구이로 가는 기차는 시내에 있는 바라나시역에서 출발하지 않고,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서 출발했다. 시내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없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일찍 기차역으로 떠나야 했다.

 

바라나시의 밤은 낮과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침, 저녁 안개가 자욱한 이곳은, 밤이 되면 길거리의 주황색의 조명이 더욱더 도시를 신비스럽게 만든다.

 

 

낮만큼 밤엔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는 곳은 왁자지껄했다. 해가 지고 나니 급격히 날이 쌀쌀해 졌다. 두껍게 옷을 입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얇게 입기도 애매한 날씨이다. 으슬으슬 감기에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힌디어로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으니 그냥 멀리 서서 바라만 보았다. 낮이나 밤이나 화장장은 쉴세 없이 운영되는 모양이다. 강가에서는 늦은 저녁이었지만, 화장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뭔가 화장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희비가 교차되는 느낌이다. 지금 이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아빠에게 인도여행은 매순간이 도전이였다. 일단 음식이 잘 안맞기에 먹는 것도 곤욕이였고,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더 쳐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스모그는 한국에 와서 한동안 아빠를 힘들게 했었다. 아빠는 인도 커리가 똥같아 보인다면 항상 드시기를 꺼려하셨다. 그래도 최대한 색이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커리를 주문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먹는 인도 커리이지만,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비쥬얼적인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일출을 보고 싶어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왔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에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강가로 나오니 아침부터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침엔 쌀쌀한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점심, 저녁 다른 모습을 갠지스강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날 산 인도풍의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니, 우리도 뭔가 이 문화에 젖어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인도여행을 하면서 막 입기 좋은 옷 같았다. 그리고 이런 옷 하나는 입고 다녀야, 인도여행을 쫌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나는 사이즈가 없어서 아빠만 구매하셨다.

 

정말 바라나시의 길은 미로 같다. 우리 숙소도 골목에 있는데, 어떻게 처음에 친구들과 찾아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로같은 골목을 걷고 있는 것도 바라나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또 다른 길을 찾다 보면 결국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나왔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오래있고 싶었지만, 아빠는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하셨다. 일단 날씨가 너무 습하고 춥기에 좀 더 좋은 날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3일째 되던 날 우린 다즐링으로 떠났다. 그런데 바라나시는 우리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바라나시 외곽에서 뉴잘파구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서 갔다. 그런데 기차전광판에 딜레이 6라고 적혀있어서, 6분 정도 연착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기차는 6시간 연착이라는 표시였다. 하릴없이 기차역 주변을 돌아다니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연착되는 것을 알았으면 아예 숙소에서 늦게 나오면 되는데, 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6시간 정도면 견디면 되었기에 버틸만 했다. 그런데 전광판의 숫자는 결국 14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정오전에 기차를 탑승할 예정이였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열몇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2일동안 기차를 타고 갔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델리에서 탑승했는데, 집이 미얀마 국경이라고 한다. 이상태로 가면 집에 가는데 1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2일만에 아주 늦은 시간에 뉴잘파구이에 도착을 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다즐링으로 바로 가기 무서웠다. 또 산길을 짚차로 3시간에서 4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차역 주변에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아침에 수많은 비둘기 때의 소리에 잠이 깨기는 했지만, 이틀만에 흔들림 없이 자서 그런지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A. 바라나시 융티온 레일웨이 스테이션 maa surge balika intermediate collage, Railwayganj Colony, Varanasi, Uttar Pradesh 221002 인도

B. Shiva Guest House Munshi ghat, Varanasi, Uttar Pradesh 221001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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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저녁에 도착해서 정신이 혼미하고, 둘째날은 잠깐 델리 시내를 다녔을 뿐인데 인도인들에게 기까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빠가 가장 기대했던 타지마할을 가기 위해 전날 뉴델리역 외국인 전용창구에서 기차표를 예약했다. 외국인 전용창구로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나야 이번이 두번째 인도 여행이니 뉴델리역 외국인 전용창구가 어디있는지 알기에 우리에게 사기 치려는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갈 수 있었지만, 처음 왔다면 아마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며 사기치는 아저씨들의 말을 믿었을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대단한게 어디가 사기이고 어디가 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 진짜 구라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그들의 거짓말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였다.

 

 

 

뉴델리에서 아그라까지는 특급열차로 2시간 거리였다. 기차는 뉴델리에서 출발하는 열차라 플랫홈에 정시에 기차가 도착을 했다. 아그라까지 가는 기차표는 항상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구간이라 성수기에는 표를 구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 및 날짜에 표를 살 수 있었다. 뉴델리역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고 정신이 없다. 플랫홈에서는 계속 힌디어와 영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도 시끌시끌하고,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갑자기 그때 그 느낌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기차의 종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장 정거장 수가 적은 기차라는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인도에서 여러번 기차를 탔지만 이것만큼 좋았던 기차는 없었던 것 같다. 리클라이닝이 되는 의자라는 것을 볼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이렇게 에어콘이 나오고 리클라이닝 되는 좌석은 최고급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기차는 정시에 출발을 했다.

 

 

앉아 있으니 아침 식사도 나왔다. 짜이나 차, 그리고 샌드위치인지 오믈렛인지 아무튼 조식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는데 이렇게 공짜로 음식을 주니 기분이 좋았다. 아빠도 타지마할을 볼 생각을 하시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다. 인도에 온 이유의 90퍼센트 이상이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기차가 잘 달리다 한동안 달리지 않고 정차해 있었다. 기차역도 아니고 그냥 철길 위에서 말이다. 물어보니 안개가 심해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2시간 거리를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원래는 오전 8시 무렵에 도착해야 하는데 오전 10시가 넘어서 아그라 칸트역에 도착했다. 인도인들은 일상이라는 듯이 별 불만없이 기차에서 내렸다. 연착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만 왠지 마음이 조급해 보였다.

 

아그라 칸트역에 내리니 기차역 앞에는 진짜 수많은 오토릭샤 운전하와 릭샤 운전사들이 초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여행객들을 유혹했다. 일단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올바른 판단이 불가능 해서 착해보이는 릭샤꾼에게 타지마할까지 얼마냐고 물어 본 후 자전거 뒤에 앉았다. 지금이야 내가 살이 너무쪄서 아빠와 함께 앉을 수 없지만 그때만 해도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해서 릭샤꾼 뒷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가냘픈 릭샤꾼이 뒤에서 보니 너무 힘들어 보여서 괜히 내돈내고 타는데 눈치가 보였다. 릭샤꾼은 타지마할에 도착해서 우리에게 한국의 지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한국돈이 있으면 한국 지폐를 기념으로 줄 수 없냐고 물어봐서 천원을 주려고 하니, 다른 색깔로 달라고 해서 순간 당황했다. 이것도 사기인가 우리는 50루피에 팁으로 한국돈 1,000원을 주면 대략 100루피 한화로 2,000원을 준거닌까 괘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뭔가 뒤를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웃고 있지만 뒤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이때부터 사람의 친절함 뒤에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아서 뭔가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타지마할은 입장료를 사서 안에 바로 들어가면 짜잔하고 타지마할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입장권을 사고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안으로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입장료가 인도여행하면서 다닌 유적지 중 가장 비쌌다. 대략 1000루피 정도로 그당시 환률로 하면 대략 인당 2만원 정도였다. 대신 인도 현지인들은 몇백원 정도로 외국인은 약간 호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인도여행에서 타지마할은 뺄 수 없으니 울며겨자 먹기로 표를 살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인도정부도 미안한지, 외국인은 물한병과 봉지하나를 주었다. 타지마할 안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히 비닐봉지를 선물로 주었다.

 

뉴델리도 초미세먼지와 스모그가 심하지만 아그라는 강가에 있는 도시라 그런지 오전 내내 앞이 안 보일만큼 하늘이 뿌했다.

 

이곳을 지나면 타지마할이 짜잔하고 나타나야 했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건물을 지나 타지마할을 보러갔다.

 

어!? 그런데 타지마할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많은 블로그에서 문을 지나면 타지마할이 나를 반길 것이라고 했는데, 분수대 끝에 분명히 있어야 할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보기 위해 한국에서 왔는데라는 별별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타지마할 쪽으로 걸어가니 타지마할의 윤곽이 드러났다. 너무 극심한 스모그로 인해서 바로 앞에 있는 타지마할이 보이지 않았다. 진짜 겨울엔 스모그와의 전쟁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수대 앞에 예전에 영국의 다이애나 왕비가 타지마할을 방문했을 때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찍었다는 의자가 있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는 타지마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짜 가까이 가야 타지마할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료를 살 때 받은 비닐봉투에 신발을 넣고 타지마할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미얀마 여행 때는 사원에 들어가려면 양말까지 벗어야 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곳은 양말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대리석 바닥을 신발없이 밟고 다니니 기분이 찝찝하기도 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였다.

 

멀리서 봤을 땐 흰 대리석의 느낌이였으나, 세월의 영향 때문일까, 대리석은 누런색을 띠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 웅장해서 건물에 약간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으로 본 타지마할의 모습은 그렇게 크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타지마할을 보게 된다면 그 규모에서 먼저 놀라게 될 것 이다.

 

정오에 가까워질 수록 스모그는 많이 사라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타지마할의 모습을 아침보다는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입장료가 비싼데 너무 빨리 나가면 너무 돈이 아까울 것 같아서 타지마할을 나가지 못하고 계속 봤던 곳을 또보고 또 보았다. 타지마할을 보면서 진짜 이곳은 평생 한번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평생 한번 밖에 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장소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타지마할 같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과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일단 가는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기에 다시 여행을 계획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젊을 때 아니면 체력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운 곳들이기에 젊을 때, 기운있을 때 딱 한번이면 족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광객도 많아졌다. 점점 스모그가 거치게 되니 사진에서 보던 타지마할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생각했던 타지마할은 이 분수대에서 멋지게 사진을 찍는 것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 타지마할을 상상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빠가 빨간색의 특이한 모자를 쓰고 다니셔서 그런지 사람들이 한번씩 모자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타지마할이 안보인다고 그냥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남들이 다하는 타지마할로 할 수 있는 착시효과 사진을 찍어 보았다.

 

몇 시간 동안 타지마할 앞에 있으면서 타지마할을 질리도록 보고 온 것 같다.

 

정오가 지나 오후 한시쯤 되었을까 완전히 타지마할의 모습을 영접할 수 있었다.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여기서 비비적 거리지 않고 다른데로 갔으면 이런 모습을 놓쳤을 것 같다.

 

타지마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밖에 나가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장소로 이동을 위해 타지마할과 작별의 인사를 하고 타지마할 밖으로 나왔다.

 

정신이 다시 혼미해지는 것 같다. 지나만가도 이사람 저사람이 우리에게 호객행위를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서 알게된 점은 세워져 있는 오토릭샤나 릭샤를 타기보다는 지나가는 빈 오토릭샤나 릭샤를 타는게 사기도 덜 맞고 저렴한 것 같았다.

 

무섭게 달려드는 삐끼아저씨들을 피해 길가로 나와 오토릭샤를 잡아 탔다. 다음 목적지는 타지마할을 본 후 꼭 간다고 하는 아그라성이였다. 델리는 그래도 대도시라 그런지 인도를 걷거나 상점이 많아서 볼거리가 많아서 걸어다닐만 했다. 종종 횡단보도가 없어서 힘들 때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데 이곳은 구글 지도만 보고 왔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었다.

오토릭샤는 동남아 여행하며 타는 뚝뚝이 같은 것으로 운전석 뒤에 앉는데 전에 친구들과 왔을 땐 성인 남자 3명정도 까지 끼어서 탈 수 있었다. 저렴하고 인도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교통수단이지만, 약간 목숨은 내 놓고 타고 다니는 느낌이였다.

 

 

타지마할 만큼 많은 방문자들로 북적이는 장소였다. 붉은색으로 된 성이 인상적이였다. 타지마할과 대조되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는 정신없었지만, 성안으로 들어오니 역시 다시 평화가 찾아 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올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멘탈을 구하는 비용을 입장료로 대신한 것 같다. 아무튼 인도여행의 3일차 였지만, 적응이 잘 안되는 것 같다. 해외나오면 집생각이 잘 안나는데, 인도여행을 하는 내내 집이 그리웠다. 그래도 남은 일정이 있으니 정신 잘 잡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아그라주변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기에 스모그만 아니였다면 풍경이 죽여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성을 만들어 무엇을 했을까?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났기에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겠지만, 과거에는 더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았을까? 알라딘에 나오는 그런 풍경이였을까? 성의 전망대(?)에 서서 사람의 유한함과 권력의 무상함 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루종일 아침에 기차에서 먹은 오믈렛인지 샌드위치 같은 것이 전부였다. 아그라성을 구경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런데 식당을 찾기 힘들었다. 괜히 길거리 음식 먹었다가 장염에 걸리면 안될 것 같아서 구글지도에서 메인 쇼핑거리를 찾아 가보았다. 그런데 주말이라 그런가 문을 다 닫았다. 여기서 피자나 먹고 가려고 했다. 문연 상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차역으로 빨리 돌아갔다. 기차역에 가서 예약된 기차보다 빠른 기차가 있으면 델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모든 기차가 연착되어서 언제 기차가 올지 모른다고 한다. 다행히 기차역 안에 스낵코너가 있어서 점심겸 저녁을 대충 먹었다. 우리는 원래 오후 5인가 6시 기차를 타고 뉴델리로 돌아오면 저녁 8~9시 사이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그라 칸트역에서 6~7시간을 기다린 것 같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뉴델리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 기차마저 연착이 되어 새벽 4시 무렵에 뉴델리 역에 도착을 했다. 인도에서 계획이란 무의미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착되었다고 그 누구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인도여행에서 아그라는 뺄 수 없는 필수적인 장소이다. 대부분 당일치기고 타지마할을 보고 오려고 한다. 그런데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빼버려야 하는 여행지이기도 한다. 전에 친구와 1주일 북인도 여행을 할 때 타지마할을 가고 싶었지만, 우리 일정상 타지마할은 비행기 타는 마지막 날 밖에 시간이 되지 않았다. 비행기가 자정에 탑승이라 낮에 타지마할을 보고 오고 싶었지만, 역무원이 기차가 연착되면 비행기 시간에 못 돌아 올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타지마할을 포기했다. 가끔 친구와 만나면 그때 타지마할을 보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이야기 한다. 한국과 같이 생각한다면 두시간 거리에 있는 타지마할을 당일치기로 충분히 가능할 것 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곳은 인도이다. 인도여행의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계획은 단지 계획일 뿐이라는 것을 인도여행을 통해 매일매일 배우게 되었다.

A. Agra Railway Station Agra-Bikaner Road, Railway Station Colony, Agra, Uttar Pradesh 282001 인도

B. Agra Cantt Railway Station 인도 282001 우타르 프라데시 아그라 이드가 콜로니 아그라 캔트

C. Taj Mahal 인도 282001 우타르 프라데시 아그라 타즈간즈 포레스트 콜로니 다르마퓨리

D. Agra Fort 인도 282003 우타르 프라데시 아그라 라카간즈 아그라 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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