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아그라에서 타지마할을 본 후 다시 델리로 돌아온 후, 야간열차를 타고 인도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바라나시로 향했다. 친구들과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 한정된 시간에 여행을 해야했기 때문에 고르고 고른 곳이 바라나시였다. 그래도 갠지스강은 한번 보고 가야 인도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델리-바라나시 구간은 여행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구간이라 항상 표를 구하기 힘든 구간이였다. 친구들과 왔을 때는 2012년 여름이였다. 델리-바라나시 구간열차 중 빨리 가는 열차는 일단 외국인 표는 매진이였다. 그래서 뉴델리 출발이 아닌 올드델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여름 인도의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는데, 에어콘이 되는 열차칸은 벌써 다 매진이라서 선풍기가 달린 칸을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그것도 겨우 구한 것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대략 11시간이 걸리나, 연착이 잦은 겨울에는 11시간이 아닌 24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도 3~4시간 정도 연착되어 바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는 침대칸 열차이지만 선풍기만 달린 칸이였지만, 이번에는 에어컨이 달린 열차 칸을 탈 수 있었다. 인도의 열차는 설국열차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신분에 따라 재력에 따라 같은 기차도 칸이 무수히 많이 나뉘어 졌다. 맨 하층민이나 가난한 사람이 타는 기차칸은 몇 시간을 나무의자에 앉아서 가야하고, 그리고 침대칸도 등급이 나눠져 있어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친구들과 같이 탔던 침대칸이지만 선풍기만 달린 창문을 열 수 있는 칸이 있고, 그 상위 단계는 아빠와 내가 탄 것 같은 에어컨이 들어오지만 여럿이 같이 같은 칸을 이용하는 열차 칸이 있다. 그리고 돈이 더 많은 상류층 사람들은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1등석 싱글룸같이 생긴 기차칸을 이용했다. 아무튼 한 기차 안에 부유층부터 가난한 사람까지, 설국열차처럼 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행이랄까?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가는 기차표 값은 한화로 3만원 정도로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돈이 아니였다.바라나시에서 다즐링으로 가는 길목인 뉴잘파이구이로 가는 기차에서 다양한 인도 중류층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아빠는 엄청 피곤해 보이셨다. 기차에서 잠을 좀 청하기는 했지만 편하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는 숙박예약이라는 것을 하고 다니지 않았다. 첫날 첫도시만 숙소를 예약하고 나머지 숙소는 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찾아 보았는데, 인도여행 이후 여행은 미리 한국에서 되도록이면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을 떠났다. 인도여행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인도여행 이후 여행스타일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바라나시 숙소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때 지냈던 시바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딱히 아는 곳이 그곳 밖에 없었고, 그때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숙소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아빠와 함께 방문했을 때도 같은 숙소로 정했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했다. 특히 날씨가 적응이 안되었다. 여름에는 진짜 이곳은 미친듯이 습하고 더웠다. 그런데 겨울에는 으스스하게 춥고 습했다. 그래서 그런지 컨디선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북인도 어디가나 겨울엔 스모그가 심한 것 같다. 이곳도 강가에 위치해 있다보니 하루종일 강가의 안개와 오토릭샤에서 나오는 매연, 난반으로 인한 매연까지 합쳐져 뿌연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길을 걷다 한국어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뉴델리에서도 종종 길거리에 소가 서 있는 경우를 보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는 걷다 보면 서있는 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서있는 소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쫒아내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들도 오토릭샤들도 소를 피해서 갈 뿐이였다. 소들은 걷다 쓰레기 통이나 쓰레기장에 떨어져 있는 야채같은 것을 주워먹었다.

 

 

아빠는 정신없는 이곳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것 같아 보이셨다. 델리도 정신이 없지만 이곳은 지옥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비규환이였다. 특히 강가 오게 되면 오만감정이 교차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쉬지 않고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있고, 산사람은 똑 먹고 살기 위해 죽은 사람 옆에서 밥을 먹고 대화를 이어간다.

 

사는게 뭔가라는 질문을 나도 모르게 해보게 되는 곳이였다. 인도인들은 이곳에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하고 다하는데, 우리가 이 물에 피부가 닿으면 피부병으로 고생한다고 하기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갠지스 강은 그렇게 폭이 넓은 강은 아니나, 왠지 보고 있으면 드넓은 평원을 달리는 강이라 그런지 한없이 넓고 크게 느껴졌다.

 

다즐링을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바라나시역으로 릭샤를 타고 갔다. 그런데 릭샤꾼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 몸무게 반밖에 안되는 분이 정신없는 거리에서 열심히 패달을 밟는데, 왠지 짠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주기로한 돈보다 더 드렸다. 대부분 외국인들에게 사기치는 릭샤꾼이나 오토릭샤꾼이 많은데, 그렇지 않았기에 왠지 마음이 더 갔다.

 

 

바라나시에는 두개의 기차역이 있다. 하나는 시내에 있고 다른 하나는 오토릭샤로 30~4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자신이 타고자 하는 기차나, 내리고자 하는 기차가 어느 역에 정차하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뉴잘파구이로 가는 기차는 시내에 있는 바라나시역에서 출발하지 않고,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서 출발했다. 시내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없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일찍 기차역으로 떠나야 했다.

 

바라나시의 밤은 낮과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침, 저녁 안개가 자욱한 이곳은, 밤이 되면 길거리의 주황색의 조명이 더욱더 도시를 신비스럽게 만든다.

 

 

낮만큼 밤엔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는 곳은 왁자지껄했다. 해가 지고 나니 급격히 날이 쌀쌀해 졌다. 두껍게 옷을 입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얇게 입기도 애매한 날씨이다. 으슬으슬 감기에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힌디어로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으니 그냥 멀리 서서 바라만 보았다. 낮이나 밤이나 화장장은 쉴세 없이 운영되는 모양이다. 강가에서는 늦은 저녁이었지만, 화장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뭔가 화장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희비가 교차되는 느낌이다. 지금 이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아빠에게 인도여행은 매순간이 도전이였다. 일단 음식이 잘 안맞기에 먹는 것도 곤욕이였고,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더 쳐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스모그는 한국에 와서 한동안 아빠를 힘들게 했었다. 아빠는 인도 커리가 똥같아 보인다면 항상 드시기를 꺼려하셨다. 그래도 최대한 색이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커리를 주문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먹는 인도 커리이지만,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비쥬얼적인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일출을 보고 싶어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왔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에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강가로 나오니 아침부터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침엔 쌀쌀한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점심, 저녁 다른 모습을 갠지스강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날 산 인도풍의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니, 우리도 뭔가 이 문화에 젖어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인도여행을 하면서 막 입기 좋은 옷 같았다. 그리고 이런 옷 하나는 입고 다녀야, 인도여행을 쫌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나는 사이즈가 없어서 아빠만 구매하셨다.

 

정말 바라나시의 길은 미로 같다. 우리 숙소도 골목에 있는데, 어떻게 처음에 친구들과 찾아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로같은 골목을 걷고 있는 것도 바라나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또 다른 길을 찾다 보면 결국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나왔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오래있고 싶었지만, 아빠는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하셨다. 일단 날씨가 너무 습하고 춥기에 좀 더 좋은 날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3일째 되던 날 우린 다즐링으로 떠났다. 그런데 바라나시는 우리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바라나시 외곽에서 뉴잘파구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서 갔다. 그런데 기차전광판에 딜레이 6라고 적혀있어서, 6분 정도 연착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기차는 6시간 연착이라는 표시였다. 하릴없이 기차역 주변을 돌아다니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연착되는 것을 알았으면 아예 숙소에서 늦게 나오면 되는데, 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6시간 정도면 견디면 되었기에 버틸만 했다. 그런데 전광판의 숫자는 결국 14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정오전에 기차를 탑승할 예정이였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열몇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2일동안 기차를 타고 갔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델리에서 탑승했는데, 집이 미얀마 국경이라고 한다. 이상태로 가면 집에 가는데 1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2일만에 아주 늦은 시간에 뉴잘파구이에 도착을 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다즐링으로 바로 가기 무서웠다. 또 산길을 짚차로 3시간에서 4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차역 주변에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아침에 수많은 비둘기 때의 소리에 잠이 깨기는 했지만, 이틀만에 흔들림 없이 자서 그런지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A. 바라나시 융티온 레일웨이 스테이션 maa surge balika intermediate collage, Railwayganj Colony, Varanasi, Uttar Pradesh 221002 인도

B. Shiva Guest House Munshi ghat, Varanasi, Uttar Pradesh 221001 인도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