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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3박 4일간의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아이슬란드로 가는 날이 되었다.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지. 아이슬란드와 인연이 없을까 걱정되었다. 비행기 타기 전까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빌었다.

며칠 먹지도 않았는데 빵이 질리기 시작했다.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한식이 그리웠다.

체크아웃을 하고 테르미니 역으로 왔다. 티켓 머신에서 공항까지 가는 표 두 장을 구매했다.

친구가 전에 이 역에서 캐리어를 도둑맞았다고 하기에 캐리어를 손에서 땔 수 없었다. 그리고 뒤로 맨 가방이 걱정이 되었다.

공항으로 가는 열차는 자주 있어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옛날처럼 표를 펀칭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몰라서 일단 펀칭 기계에 표를 넣었다.

유레일패스 1등석 티켓이 있어야 탈 수 있는 열차인데 내부 구성은 일반석, 2등석으로 구성되어 앞뒤 간격이 빡빡했다.

로마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30여 분이 걸렸다.

드디어 아이슬란드로 가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티켓으로 구매해서 로마에서 레이캬비크까지 직항이 아닌 노르웨이 오슬로를 거쳐 가는 코스였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스타얼라이언스일 때는 비즈니스석 체크인 라인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스카이팀으로 옮기는 바람에 일반석 줄에 서서 체크인을 기다렸다.

여름이지만 아이슬란드의 날씨가 로마보다 훨씬 춥기에 겨울옷을 몇 벌 챙겨왔더니 가방의 무게가 꽤 나갔다.

가방을 보내고 나니 손이 자유로워 편했다. 티켓에 이상하게 패스트 트랙이라 적혀 있어서 패스트 트랙을 이용해 보안검색을 받을 수 있었다.

트립 닷컴을 통해 이번 비행기표를 구매하면서 라운지 티켓이 두 장 있기에 로마 공항에서 사용했다. 그래서 보안검색을 마친 후 라운지를 찾아갔다.

라운지 표시가 헷갈려서 처음에 잘못된 곳으로 갔다 다시 돌아와서 라운지를 찾을 수 있었다.

라운지를 위층에 숨겨두어 찾기가 힘들었다.

라운지에서 쉬면서 티켓 사진도 찍고 아이슬란드 돈도 환전했다. 그런데 환전 수수료가 비싸서 손해를 많이 봤다. 처음 보는 아이슬란드 돈이 신기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이슬란드 돈을 쓸 일이 없었다. 어딜 가든 카드 사용이 보편화되어서 현금을 쓸 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라운지는 크지 않아서 앉을 자리가 많지 않았다. 겨우 앉을 자리를 찾은 후 간단한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한 후 오슬로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로 갔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예전에 북유럽 여행을 할 때 이용해 본 항공사라 낯설지는 않았다.

좌석을 선택하면 추가 요금이 들어서 따로 신청을 안 했더니 아빠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따로 앉아 갔다.

유럽 내 운행하는 항공사들이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기내식의 경우는 유료였다.

창문 옆에 앉으면 창밖을 보면서 갈 텐데 복도에 앉아서 보이는 것이 없어서 조금 심심했다. 그래서 아이슬란드 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벼락치기 공부를 하니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집에서 읽을 때는 뭔 말인지 모르겠던 것들이 막상 닥치니 이해가 되었다.

기내식을 따로 제공하지는 않고 커피나 차, 물은 공짜로 제공했다. 라운지에서 간단하게라도 먹지 않았으면 비행 동안 쫄쫄 굶을뻔했다.

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뒷문으로 내리는 것이 신기했다. 오슬로의 공기는 가볍고 차가웠다. 로마의 뜨거운 공기와는 달랐다.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춥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유럽인데 이렇게 날씨가 다를 수 있을까.

비행기 뒷문으로 내려 유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비행기를 전체적으로 한번 쓱 볼 수 있어서 비행기를 좋아하는 나는 너무 신이 났다.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있어서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배가 고파 공항에서 간단한 음식을 하나 사 먹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이게 북유럽의 물가 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한국식 스타일 빵이 하나에 2만 원이나 했다.

공항에 앉아 하늘을 보는데 하늘이 너무 푸르렀다. 하늘에서부터 시원함이 느껴졌다.

고등어같이 생긴 비행기도 보였다.

공항이 그렇게 크지 않아 끝과 끝을 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탈 SK4785는 E13에서 출발을 했다.

진짜로 아이슬란드로 가나 보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그 순간까지 믿을 수 없었다. 우리와 드디어 아이슬란드가 인연이 닿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드디어 아이슬란드로 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신이 나셨다.

이번에도 복도 좌석이었다. 그래도 나란히 붙어 앉아 갈 수 있었다.

스칸디나비항 항공 조종사들은 출발하기 전에 문을 열어 놓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로마에서 올 때도 그랬고 오슬로에서 레이캬비크로 가는 길에도 똑같았다. 그래서 비행기 내부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경유를 해서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슬란드로 간다는 설렘만큼은 가득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문에 있는 조금한 창문으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창밖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 또 3시간가량의 비행 후 우리는 레이캬비크에 착륙할 수 있었다. Exit to Iceland라는 문구를 보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수화물을 찾기 위해 수화물 수취대로 갔다.

예상 예외 캐리어가 빨리 나왔다. 이곳에 오늘 것도 평생 한번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싶었다.

드디어 짐을 찾아 도착층으로 나왔다. 공항이 작아서 도착층 옆에 출발층이 있었다. 레이캬비크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버스인 플라이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인터넷으로 표를 미리 예매했기에 바로 버스를 타러 갔다.

시내로 가는 버스회사가 하나밖에 없기에 그냥 사람들을 따라가면 되었다.

공항버스는 꽤 커서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대략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시내로 오는 길 중간에 한 번인가 두 번 정차했던 것 같다.

드디어 레이캬비크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은 플라이 버스와 연계하여 호텔로 가는 버스까지 표를 같이 구매하는데 우리는 버스터미널까지만 가는 표를 샀기에 여기서 시내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야 했다.

사람들이 가고 나니 버스터미널을 텅 비어 버렸다. 뭔가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리 한국에서 다운로드해둔 아이슬란드 시내버스 탑승권 구매 앱으로 탑승권을 구매했다. 아빠는 시니어, 나는 일반으로 구매했는데 대략 버스비가 만 원 정도 나왔다.

버스 노선은 촘촘한데 버스 시간이 촘촘하지 않아 버스로 여행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언제나 신기한 일인 것 같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호텔까지 걸어갔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오니 드디어 안도감이 들었다.

호텔에는 물도 없었다. 대신 컵 두 개만 있을 뿐이었다.

방도 크지 않아서 캐리어 펼치기는 것이 애매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밖으로 나왔다. 늦은 밤이지만 이곳은 대낮 같았다.

북위 64도에 있는 레이캬비크. 지금 시간이 오후 9시 30분인데도 그냥 오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면서 원래는 렌터카로 할 생각이라 호텔을 1박만 예약했는데, 계획이 바뀌어 렌터카 대신 일일 투어로 하는 것으로 바뀌어 레이캬비크에서 일주일가량 있어야 했다. 지금 있는 호텔로 예약을 하려고 하니 만실이라 예약이 안되었다. 그래서 조금 더 저렴한 호텔로 예약을 했다.

늦은 밤인데 공원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람이 차가웠다. 내일은 바람막이도 꺼내고 긴 바지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계획만 세우다 못 온 아이슬란드인데 이번에는 진짜 오게 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가슴 벅찼다. 일주일 동안 이곳에 있으며 어떤 풍경과 만날지 궁금했다. 늦은 밤이지만 백야로 대낮같이 밝은 하늘도 신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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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이틀 있으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한끝에 토스카나 지방을 제대로 여행해 본 적이 없기에 한번 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여행을 하면 좋은데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기에 대중교통이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일일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6시까지 모여야 하기에 새벽에 일어나 씻고 전날 사둔 빵을 먹고 집합장소인 캐나다 호텔로 향했다.

소규모 투어라 버스도 작았다. 우리 맞은편에 있는 남부 투어는 대형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우리는 소형 버스로 이동을 했다. 버스를 타고 2시간쯤 갔을까, 첫 번째 목적지인 치비따 디 반뇨 레지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3곳의 주가 만난다고 한다. 치비따 디 반뇨 레지오까지는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마을이 조용했다. 조용한 마을을 조용히 걸어갔다.

이 고요함과 적막함이 좋았다. 번잡한 로마를 떠나 지방 소도시로 오니 관광객의 물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일행의 걷는 속도를 따라잡느라 열심히 걸었다. 단체 여행은 편하고 좋은데 나만의 속도로 걷거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했다.

큰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아직까지 해가 뜨겁지 않아 땀을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마을 끝에 도착하니 바위 위에 우뚝 솟은 것 같은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산비탈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내려갈 때는 신나게 갔는데 돌아갈 생각을 하니 조금 아찔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하나둘 개별 여행자들은 차를 끌고 이곳으로 왔다.

원래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시간도 촉박하고 체력도 안될 것 같아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마을로 들어가는 저 길의 각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올라가는 길이 힘들다고 했다.

마을에 안 들어 가는 대신 마을이 잘 보이는 곳에서 마을을 감상했다.

안 들가 봐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을의 모습을 봤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언덕을 올라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점점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체력이 조금씩 방전되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는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못 봤던 풍경을 돌아가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로마의 건축물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너무 좋았다.

길거리에 아빠와 나 둘밖에 없었다. 우리가 동네를 전세 낸 것 마냥 걸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가이드가 카톡으로 알려준 카페가 있기에 그곳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갔다. 쌉싸름한 커피가 뱃속으로 들어가니 온몸에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나는 뜨거운 커피만 있는지 알고 뜨거운 커피로 주문했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아이스커피도 있다고 해서 아이스로 먹을 걸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아침에 할 숙제를 한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커피 한 잔에 몸이 가벼워졌다.

모일 시간보다 여유를 두고 정류장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사이 날씨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치비따 디 반뇨 레지오를 떠나 다음으로 간 곳은 막시무스의 집이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왔던 곳이라고 했다. 실제 영화를 촬영한 곳은 못 가고 그곳과 비슷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느낌은 비슷하다고 한다.

소나무 길 옆에는 올리브 농장이 있었다. 올리브 나무에 올리브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길가에 있는 관광지라 지나가는 차를 피해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다 찍는 동안 올리브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희미한 녹색 잎을 가진 올리브 나뭇잎이 신기했다.

사람들이 빠진 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를 타고 실제 막시무스의 집에 갔는데 개방을 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문 앞에 서서 카메라의 줌 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같던 곳이나 막시무스의 집이나 느낌은 비슷했다.

차를 타고 가며 막시무스의 집 옆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피엔짜라는 소도시로 왔다. 가이드가 몇몇 곳의 식당을 추천해 주었다. 사람들은 고민을 하더니 그냥 가이드가 가는 식당에 같이 가겠다고 해서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한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에 오면 많이 먹는 음식이 트러플 파스타와 티본스테이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메뉴로 주문을 했다. 파스타는 꾸덕꾸덕하고 트러플 버섯이 많이 들어 있었다.

티본스테이크는 반쯤 익힌 상태로 나왔다. 철판 위에 놓여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표면이 익어 갔다. 겉은 익고 속은 촉촉하니 부드러웠다.

아빠는 와인 한 잔을 하시려다가 술을 마시면 여행하기 힘들 것 같다고 콜라를 주문하셨다. 콜라를 와인 잔에 담으니 레드 와인 같아 보였다.

음료와 파스타,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95유로가 나왔다. 이때 환율이 1700원대라 거의 17만 원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었기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이 한 시간가량 있었다. 그래서 피엔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나오니 마을의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성벽 너머로 토스카니 지방의 들판이 보였다. 보고만 있어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햇살이 너무 강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성벽돌에 손을 대면 손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그러나 그늘로 들어서면 그나마 시원했다.

마을 안은 그늘이 져서 그래도 걸을만했다.

마을이 작다 보니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마을의 끝과 끝을 갔다 왔다.

 

너무 힘들어 그늘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갔다.

벽돌 바닥과 돌로 만들어진 담장이 인상적이었다.

치비따 디 반뇨 레지오를 떠나 다음으로 간 곳은 막시무스의 집이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왔던 곳이라고 했다. 실제 영화를 촬영한 곳은 못 가고 그곳과 비슷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느낌은 비슷하다고 한다.

소나무 길 옆에는 올리브 농장이 있었다. 올리브 나무에 올리브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길가에 있는 관광지라 지나가는 차를 피해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다 찍는 동안 올리브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희미한 녹색 잎을 가진 올리브 나뭇잎이 신기했다.

사람들이 빠진 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를 타고 실제 막시무스의 집에 갔는데 개방을 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문 앞에 서서 카메라의 줌 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같던 곳이나 막시무스의 집이나 느낌은 비슷했다.

차를 타고 가며 막시무스의 집 옆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피엔짜라는 소도시로 왔다. 가이드가 몇몇 곳의 식당을 추천해 주었다. 사람들은 고민을 하더니 그냥 가이드가 가는 식당에 같이 가겠다고 해서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한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에 오면 많이 먹는 음식이 트러플 파스타와 티본스테이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메뉴로 주문을 했다. 파스타는 꾸덕꾸덕하고 트러플 버섯이 많이 들어 있었다.

티본스테이크는 반쯤 익힌 상태로 나왔다. 철판 위에 놓여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표면이 익어 갔다. 겉은 익고 속은 촉촉하니 부드러웠다.

아빠는 와인 한 잔을 하시려다가 술을 마시면 여행하기 힘들 것 같다고 콜라를 주문하셨다. 콜라를 와인 잔에 담으니 레드 와인 같아 보였다.

음료와 파스타,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95유로가 나왔다. 이때 환율이 1700원대라 거의 17만 원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었기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이 한 시간가량 있었다. 그래서 피엔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나오니 마을의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성벽 너머로 토스카니 지방의 들판이 보였다. 보고만 있어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햇살이 너무 강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성벽돌에 손을 대면 손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

그러나 그늘로 들어서면 그나마 시원했다.

마을 안은 그늘이 져서 그래도 걸을만했다.

마을이 작다 보니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마을의 끝과 끝을 갔다 왔다.

 

너무 힘들어 그늘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갔다.

벽돌 바닥과 돌로 만들어진 담장이 인상적이었다.

잠시 햇빛을 피하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광장에서 모이기로 했기에 광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갈 수가 없어서 광장 가까운 곳만 걸어 다녔다.

마을 끝에 공원이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쉬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광장에 모여 다시 버스 타는 곳으로 걸어갔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못 봤던 풍경을 내려가면서 볼 수 있었다.

성벽 아래로 보이는 토스카나 지방의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 담아 두었다.

다시 로마로 돌아가는 길 가이드가 사진 명소가 있다고 하여 잠시 버스를 세웠다. 길에 서서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단체 사진을 찍은 후 개별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중간중간 차가 지나다녀서 차를 피해서 찍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길게 뻗은 도로와 나무가 인상적인 장소였다.

이렇게 아침 6시부터 시작된 투어는 저녁 6시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하루에 세 군데나 다녀서 힘들 수는 있는데 혼자서 가기 힘든 곳을 투어로 다니니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날이 더워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은 마음 깊숙한 곳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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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 늦게 도착해서 바로 오자마자 자야 했다. 열몇 시간의 비행과 시차 때문에 몸이 엄청 피곤했다.

다음날 일어나니 삭신이 쑤셨다.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밥은 없고 전부 빵뿐이었다. 유럽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빵과 베이컨, 그리고 치즈를 접시에 담았다. 이제 보름 동안은 이런 것들과 친해져야 했다.

로마 시내를 구경하러 가기 전 잠깐 기차역을 들렸다. 이틀 뒤에 탈 기차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서 테르미니 역으로 왔다. 호텔에서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 부담이 없었다. 아침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더웠다. 폭염으로 유럽이 들끓고 있었다. 햇빛 아래 있으면 오전이지만 타들어 갈 것 같았다.

공항 전철은 촘촘하게 있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당시 환율이 1700원에 가까워서 그런지 28유로라고 하니 엄청 비싸게 느껴졌다.

기차역을 나와 트레비 분수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늘이 없는 곳을 걸을 때는 햇빛에 온몸이 따가웠다. 잠시 걸었는데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습도가 한국보다는 낮다고는 하지만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니 이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되도록이면 해를 피해 그늘로 걸어 다녔다. 그래도 그늘로 걸으면 조금은 괜찮았다.

어디서 바람도 불지 않는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열기가 공기를 더 뜨겁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유럽을 여름에 올 일이 없었다. 언제나 겨울에 유럽에 왔었다. 그래서 시원했거나 따뜻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여름에 유럽을 왔다. 그런데 서유럽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는 햇살의 강도가 다른 것 같았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이곳을 지나면 다음에 뭐가 나오고 또 모퉁이를 돌면 또다시 다른 상점이 나오고. 시간이 지났지만 크게 변화가 없는 곳이기에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십 년 전 이십 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도 이곳을 샅샅이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가게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아주 오래전 혼자 왔을 때도 이 가게는 있었고 몇 년 전 아빠와 함께 왔을 때도 이 가게는 그 자리에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 드디어 도착했다. 그런데 트레비 분수에 접근을 하지 못하게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이제는 길거리에 있는 관광 명소까지 돈을 받는 것 같았다. 이건 좀 너무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분수도 아니기에 돈을 내고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펜스 옆에 서서 트레비 분수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돈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들은 펜스 밖에서 트레비 분수를 감상해야 했다.

우리는 트레비 분수에 왔다는 인증숏 정도만 남기고 싶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인증숏을 남기지 않으면 아쉽지 않은가.

시원한 분수를 보고 있으니 이 더위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트레비 분수 주변은 언제나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시원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고 싶은데 대부분의 음식점이 에어컨이 없었다. 그래도 시원해 보이는 곳이 있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에어컨이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안에 들어오니 밖엔보다는 시원했지만 한국처럼 추울 정도로 시원하지는 않았다. 테라스에 앉았으면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면 좋은데 식당 안으로 들어왔기에 온 김에 점심을 주문했다. 식전 빵이 나왔는데 빵이 질겼다. 4조각 중 다 먹지 못하고 결국에는 식전 빵은 남겼다.

주문한 파스타와 피자가 나왔다. 양이 많을까 걱정했는데 양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음식이 짤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짜지 않았다.

파스타와 피자, 물, 콜라 이렇게 주문했더니 45유로 정도 나왔다. 한 끼 식사로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유럽에서 사 먹은 첫 끼라는데 의의를 두니 그렇게 나쁜 가격은 아닌 것 같았다. 친절한 식당 직원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일하실 때도 즐겁게 일하시고 음식이 입에 맞는지 계속해서 물어봐 주셨다.

시원한 곳에 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숨이 안 쉬어질 만큼 푹푹 찌었다.

햇빛이 강한 노천카페에는 사람이 없고, 그늘진 카페에는 사람들이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늘에 들어오면 그런대로 버틸만했다. 선풍기에서 바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물입자 같은 것도 나와서 더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판테온 앞에 왔다. 어느 날부터 인가 판테온도 돈을 받기 시작했다. 돈을 받지 않았던 옛날이 좋았던 것 같다.

판테온 앞에 있는 분수에 가서 물을 만지니 생각보다 물이 차가워서 놀랬다. 사람들은 물병을 가지고 다니며 길 곳곳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서 마셨다.

이날은 걷다 보니 나보나 광장까지 왔다. 나보나 광장에 오기 전 잠깐 맥도널드에 들려서 화장실도 가고 시원한 콜라도 한 잔 마셨다. 돌아다니면서 제일 시원한 곳이 맥도널드였다. 시원해서 그런지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 같아도 밖에 나가기 싫었으니까.

나보나 광장은 딱히 볼 것은 없는데 세 개의 분수가 인상적이고 일단 이 광장의 생김새가 특이했다.

원형 경기장의 모양으로 생겨서 로마 시대 때는 이곳을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이라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에 오면 광장이 트랙같이 생겨서 전차 경기장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광장 가운데에는 큰 분수가 하나 있고 작은 분수가 각각 하나씩, 총 3개의 분수가 있다. 그늘이 없어서 햇빛을 피할 수 없었다.

분수를 주변을 두르고 있는 철제 기둥들도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분수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인지 분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동물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보나 광장까지 간 후 더 이상 돌아다니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다시 테르미니 역으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올 때는 그래도 신나서 왔는데 돌아갈 때는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길가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시원한 물로 얼굴을 씻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이 그렇게 덥지만 않았으면 더 돌아다녔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일은 토스카나 지방 소규모 투어가 새벽에 시작되기에 일찍 호텔에 도착해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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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휴가는 한 번쯤은 가고 싶었던 아이슬란드에서 보내기로 했다. 코로나 이전에 가려고 다 계획 세우고 표도 구매했는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전부 취소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아이슬란드가 머릿속에 잊힐 즘 다시금 아이슬란드가 떠올라 1년 전부터 표도 사고 숙소도 예약하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1년 동안 준비를 하다 보니 벌써 아이슬란드를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슬란드에 간 김에 내 버킷리스트인 페로제도도 함께 다녀올 예정이었다.

여름 휴가철이라 공항 주차장에 빈자리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주차타워 마지막 층에 여유 공간이 많아서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층은 벌써 다 만차를 가리키는데 마지막 층만 빈자리가 보였다. 옥상이라 햇빛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슬란드로 가기 전 로마로 먼저 간 후 로마에서 3일을 보낸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오슬로를 거쳐 아이슬란드로 가는 여정이었다. 보름여 간의 여행이라 캐리어의 무게가 조금 나갔다. 여름 옷도 챙기고 가을 옷도 함께 가져가야 해서 수화물의 무게가 꽤 나갔다.

휴가철이라 공항에 사람이 많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사람이 적어서 빠르게 수속을 마치고 보안 검색을 받을 수 있었다.

에에 사이드 안에 들어왔는데 이곳도 사람으로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면세점을 구경한 후 바로 라운지로 향했다.

1시 20분 비행 편인데 3시 20분으로 2시간 지연되었다. 카카오를 통해서 여행자 보험을 가입했는데 한 사람당 4만 원씩 지연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늦게 도착해서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보상금으로 지갑이 두둑해져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여름이라 주차장에서 공항까지 이동했는데 땀이 많이 났다. 그래서 장거리 비행기를 타기 전 라운지의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개운한 게 열 시간이 넘는 비행도 거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비행기에서 또 먹기는 할 테지만 라운지에 온다고 굶고 와서 배가 고팠다. 많이 담아 오지 않는다고 신경을 썼는데도 접시에 이것저것 많이 담아 왔다.

라운지에 개별 좌석으로 되어 있는 곳이 많아서 혼자 온 사람도 부담 없이 식사를 하거나 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빠는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비빔밥으로 한식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셨다.

비행기가 지연되어 라운지에 오래 있다 보니 이번에는 라운지에 있는 마사지 기계도 이용할 수 있었다. 앉아서 받는 마사지 기계도 있고 누워서 받는 것도 있었다.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좋을 것 같았다.

비행기 탑승 20여 분을 남겨두고 게이트 앞으로 갔다.

우리를 로마까지 데리고 갈 비행기는 게이트에 도착해서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이 아시아나 항공으로 여행하는 마지막 장거리 여행일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겉은 아시아나인데 비행기 내부는 벌써 대한항공으로 바뀐 상태라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좌석은 3-3-3 좌석이었다. 우리 옆에 누가 앉을지 궁금했다. 창가가 좋아서 장거리 여행에서도 창가를 선택하는데 매번 걱정하는 것이 화장실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누가 끝에 앉을지 궁금했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A350-900으로 아시아나 항공이 가진 가장 좋은 비행기였다. 그리고 기내 엔터테인먼트도 최신형이라 모니터 화질도 좋았다.

로마까지의 비행거리는 만 킬로미터가 넘었다. 지도에서는 그렇게 안 먼 것 같은데 생각보다 먼 거리를 날아가야 했다.

탑승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사람들이 타는 동안 아시아나 항공 윙렛을 카메라로 찍어 보았다. 색동 꼬리는 볼 때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석인 비행기의 문이 닫힌 후 비행기는 푸시 백을 했다. 이제 진짜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불안했다. 우리랑 아이슬란드랑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비행기가 출발하고 나니 이제 아이슬란드와 조금 더 한 발짝 가까워진 것 같았다.

활주로에 들어선 비행기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사뿐히 지상과 멀어졌다.

지상과 멀어진 비행기는 점점 하늘 위로 높게 날아갔다.

서해 바다의 물빛이 반짝였다.

하늘에 오르니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이렇게 맑은 날은 오랜만인 것 같았다.

맑은 하늘 아래 보이는 아시아나의 윙렛은 더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아시아나 항공의 윙렛이 너무 마음에 들어 윙렛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했다.

안정 고도에 이르자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아빠는 묵밥을 나는 감자가 있는 소고기를 선택했다. 아시아나 하면 쌈밥인 데 대한항공과 통합을 하면서 대한항공의 묵밥이 제공되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아시아나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감자와 소고기가 부드러워 먹기 좋았다. 밥이 있다면 소스에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내식을 먹다 보니 비행기는 어느새 중국 하늘을 날고 있었다.

중국의 드넓은 평야를 보니 대륙의 스케일이 느껴졌다.

기내식을 먹고 나니 이제 1000킬로미터 밖에 오지 않았다. 아직도 9000킬로미터나 남았다.

영화를 볼까 책을 읽을까 고민을 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는 이 시간만큼은 책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김용택 선생님의 책을 처음 접한 후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책을 좋아한다. 마음이 힘들 때, 뭔가 복잡한 일이 있을 때 선생님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의 생각이 하나둘 정리가 되었다.

한참을 책을 읽은 것 같은데 아직 3시간 반밖에 오지 않았다니. 점점 허리도 아파지고 다리도 저려왔다.

창밖에는 얼음 결정들이 창문에 붙어 있었다.

비행기는 해를 쫓아 서쪽으로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앉아만 있는데 배는 왜 그렇게 고픈지. 두 번째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몸도 찌푸둥하고 속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주는 것은 다 먹는 편이라 두 번째 기내식도 남김없이 먹었다. 너무 많이 먹었는지 배가 볼록했다.

이제 달려온 시간이 남은 시간보다 많았다. 드넓은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오느라 비행기도 힘들어하고 나도 힘들어했다.

사람들은 수면을 취하거나 영화를 보며 긴 시간을 각자 나름대로 보냈다. 장거리 비행은 설레면서도 혹독한 것 같다. 비행기를 오래 타서 설레지만 막상 타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드디어 비행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착륙 2시간 전 간단한 스낵이 제공되었다. 아빠도 계속 속이 좋지 않도고 하시고선 피자도 다 드셨다. 꺼내서 먹는 게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피자는 너무 맛있었다.

환한 대낮을 날던 비행기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노을 진 하늘 속으로 비행기는 빠져들고 있었다.

아시아나 항공이 사라지면 이 스트레칭 영상과 유니세프 영상이 그리워질 것 같다.

비행기는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지는 것이 보였다.

비행기가 구름 아래로 고도를 낮추니 이탈리아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유럽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비행기는 장시간 높은 고도를 날았기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도를 낮추었다.

바닷가까지 나간 비행기는 바닷가 앞에서 선회를 했다.

그리곤 점점 고도를 낮추어 활주로에 착륙을 했다. 드디어 14시간가량의 비행이 끝나게 되었다.

비행기에 내리기 전 내가 앉았던 자리를 찍어 보았다. 힘들었던 비행이지만 내릴 땐 늘 그러듯 아쉬움이 남았다.

입국 수속도 빠르게 받고 짐도 빠르게 나왔다.

터미널 3은 기차역과 가까워 그렇게 많이 걷지 않아도 되었다. 이번에는 유레일패스 없이 하는 여행이라 매표기에서 티켓을 사야 했다. 로마 테르미니까지 14유로나 했다. 예전에는 11유로였던 것 같은데.

로마 테르미니와 공항을 직통으로 연결해 주는 열차라 비싸지만 가장 빠르게 로마 시내까지 갈 수 있었다.

짐을 짐칸에 두었는데 유럽의 소매치기를 생각하니 캐리어가 왠지 불안했다. 그래서 캐리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기차는 30여 분 만에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숙소가 기차역 바로 앞이라 늦게 도착해도 안심이 되었다.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니 역시나 정신이 없었다. 구글로 미리 호텔의 위치를 알아 두었기에 핸드폰을 꺼내지 않고 역 밖으로 나갔다. 내 친구가 여기서 캐리어를 소매치기당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기차에서 내리니 경각심이 들었다.

테르미니 역을 나와 찻길을 건너니 바로 호텔이 나왔다. 숙소를 기차역 가까운 곳으로 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8시간의 시차 때문인지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빨리 호텔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긴장을 했는지 목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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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날은 늘 언제나 아쉬움이 가득한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한 후 산노미야 역으로 향했다.

산노미야 역에서 포트 라이너를 타고 이십여 분 오니 공항에 도착했다. 포트 라이너를 타고 오면 1터미널로 도착하는데 2터미널까지는 걸어서 가야 했다. 2터미널로 가는 도중 신기한 비행기가 보여서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가 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골이 띵하게 울리는 게 은근히 아팠다.

2터미널에 도착하니 체크인이 진행 중이었다.

일반석 줄에 서서 체크인을 하는데 대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짐을 보내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서 나올 때는 10킬로대 초반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옷도 사고 과자도 사고 커피도 샀더니 무게가 꽤 늘었다.

에어 사이드는 아담했다. 작은 면세점이 있고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대기할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점점 에어사이드 안에도 사람이 많아졌다.

면세점이 작아서 쓰윽 하고 한번 둘러보면 끝이었다.

에어 사이드가 작아도 면세점도 있고 카페도 있고 흡연실까지 있었다.

이번에 타고 가는 비행기는 대한항공 구도장이었다. 새로 나온 도장보다 이게 더 정감 있고 나은 것 같다.

좌석을 맨 뒤로 지정했다. 비행기는 A321-200으로 3-3배열로 되어 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비행이니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모니터 화질도 선명하게 잘 보였다.

탑승객이 다 탄 후 비행기는 출발을 했다. 창문을 만져보니 창문이 뜨거웠다.

공항이 크지 않아서 계류장에서 활주로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활주로에 금세 도착한 비행기는 활주로에 서서 잠시 정렬을 했다.

작은 비행기지만 큰 힘을 내며 앞으로 튕겨 나가듯이 달려 나갔다. 이 순간 가장 떨리고 짜릿한 순간이 아닐까. 하늘로 날아가는 이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

비행기는 고도를 계속 높여 갔다.

고도를 높인 비행기는 적정 고도에 도착하니 안전벨트 사인이 꺼졌다.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니 승무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더니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비행시간이 짧다 보니 기내식도 간단하게 나왔다. 샌드위치 같은 콜드 밀이 아닌 따스하게 데워진 밥이라 너무 좋았다. 아침을 먹고 오기는 했지만 배가 슬슬 고파왔다.

기내식을 먹고 나니 비행기는 동해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한국 땅 위를 날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릇한 산과 강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비행기는 착륙을 위해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었다.

구름과 구름 사이를 지날 땐 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밖은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지만 풍경만은 아름다웠다.

비행기는 사뿐히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비행시간이 짧아서 못내 아쉬웠다.

한국에 낮에 도착해서 좋기는 한데 더 놀고 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내리기 전 내가 앉았던 의자를 한 번 찍어 보았다. 오랜만에 탄 대한항공이었다. 거의 십 년 동안은 대한항공을 탄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시아나를 이용하거나 스타얼라이언스 항공사를 주로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대한항공을 타는 것이 어색했다. 이제 합병을 앞두고 있으니 대한항공이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수화물이 나오는 데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나왔다. 2터미널도 1터미널처럼 장기 주차장까지 걸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기 주차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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