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날 저녁 늦게 도착해서 바로 오자마자 자야 했다. 열몇 시간의 비행과 시차 때문에 몸이 엄청 피곤했다.


다음날 일어나니 삭신이 쑤셨다.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밥은 없고 전부 빵뿐이었다. 유럽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빵과 베이컨, 그리고 치즈를 접시에 담았다. 이제 보름 동안은 이런 것들과 친해져야 했다.


로마 시내를 구경하러 가기 전 잠깐 기차역을 들렸다. 이틀 뒤에 탈 기차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서 테르미니 역으로 왔다. 호텔에서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 부담이 없었다. 아침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더웠다. 폭염으로 유럽이 들끓고 있었다. 햇빛 아래 있으면 오전이지만 타들어 갈 것 같았다.


공항 전철은 촘촘하게 있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당시 환율이 1700원에 가까워서 그런지 28유로라고 하니 엄청 비싸게 느껴졌다.


기차역을 나와 트레비 분수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늘이 없는 곳을 걸을 때는 햇빛에 온몸이 따가웠다. 잠시 걸었는데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습도가 한국보다는 낮다고는 하지만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니 이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되도록이면 해를 피해 그늘로 걸어 다녔다. 그래도 그늘로 걸으면 조금은 괜찮았다.


어디서 바람도 불지 않는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열기가 공기를 더 뜨겁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유럽을 여름에 올 일이 없었다. 언제나 겨울에 유럽에 왔었다. 그래서 시원했거나 따뜻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여름에 유럽을 왔다. 그런데 서유럽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는 햇살의 강도가 다른 것 같았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이곳을 지나면 다음에 뭐가 나오고 또 모퉁이를 돌면 또다시 다른 상점이 나오고. 시간이 지났지만 크게 변화가 없는 곳이기에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십 년 전 이십 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도 이곳을 샅샅이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가게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아주 오래전 혼자 왔을 때도 이 가게는 있었고 몇 년 전 아빠와 함께 왔을 때도 이 가게는 그 자리에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 드디어 도착했다. 그런데 트레비 분수에 접근을 하지 못하게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이제는 길거리에 있는 관광 명소까지 돈을 받는 것 같았다. 이건 좀 너무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분수도 아니기에 돈을 내고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펜스 옆에 서서 트레비 분수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돈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들은 펜스 밖에서 트레비 분수를 감상해야 했다.


우리는 트레비 분수에 왔다는 인증숏 정도만 남기고 싶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인증숏을 남기지 않으면 아쉽지 않은가.



시원한 분수를 보고 있으니 이 더위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트레비 분수 주변은 언제나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시원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고 싶은데 대부분의 음식점이 에어컨이 없었다. 그래도 시원해 보이는 곳이 있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에어컨이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안에 들어오니 밖엔보다는 시원했지만 한국처럼 추울 정도로 시원하지는 않았다. 테라스에 앉았으면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면 좋은데 식당 안으로 들어왔기에 온 김에 점심을 주문했다. 식전 빵이 나왔는데 빵이 질겼다. 4조각 중 다 먹지 못하고 결국에는 식전 빵은 남겼다.


주문한 파스타와 피자가 나왔다. 양이 많을까 걱정했는데 양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음식이 짤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짜지 않았다.


파스타와 피자, 물, 콜라 이렇게 주문했더니 45유로 정도 나왔다. 한 끼 식사로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유럽에서 사 먹은 첫 끼라는데 의의를 두니 그렇게 나쁜 가격은 아닌 것 같았다. 친절한 식당 직원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일하실 때도 즐겁게 일하시고 음식이 입에 맞는지 계속해서 물어봐 주셨다.


시원한 곳에 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숨이 안 쉬어질 만큼 푹푹 찌었다.


햇빛이 강한 노천카페에는 사람이 없고, 그늘진 카페에는 사람들이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늘에 들어오면 그런대로 버틸만했다. 선풍기에서 바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물입자 같은 것도 나와서 더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판테온 앞에 왔다. 어느 날부터 인가 판테온도 돈을 받기 시작했다. 돈을 받지 않았던 옛날이 좋았던 것 같다.


판테온 앞에 있는 분수에 가서 물을 만지니 생각보다 물이 차가워서 놀랬다. 사람들은 물병을 가지고 다니며 길 곳곳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서 마셨다.


이날은 걷다 보니 나보나 광장까지 왔다. 나보나 광장에 오기 전 잠깐 맥도널드에 들려서 화장실도 가고 시원한 콜라도 한 잔 마셨다. 돌아다니면서 제일 시원한 곳이 맥도널드였다. 시원해서 그런지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 같아도 밖에 나가기 싫었으니까.


나보나 광장은 딱히 볼 것은 없는데 세 개의 분수가 인상적이고 일단 이 광장의 생김새가 특이했다.


원형 경기장의 모양으로 생겨서 로마 시대 때는 이곳을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이라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곳에 오면 광장이 트랙같이 생겨서 전차 경기장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광장 가운데에는 큰 분수가 하나 있고 작은 분수가 각각 하나씩, 총 3개의 분수가 있다. 그늘이 없어서 햇빛을 피할 수 없었다.


분수를 주변을 두르고 있는 철제 기둥들도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분수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인지 분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동물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보나 광장까지 간 후 더 이상 돌아다니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다시 테르미니 역으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올 때는 그래도 신나서 왔는데 돌아갈 때는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길가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시원한 물로 얼굴을 씻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이 그렇게 덥지만 않았으면 더 돌아다녔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일은 토스카나 지방 소규모 투어가 새벽에 시작되기에 일찍 호텔에 도착해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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