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부산여행 갔던 여행기를 마무리 하려고 봤더니, 마지막 여행지에 대한 정리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미리 정리해둔 2015년 1월에 다녀온 인도여행기 부터 포스팅하려고 한다. 인도여행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때 사진을 많이 찍은 것 같은데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2015년까지는 갤럭시 시리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예전 핸드폰에 사진이 많을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아이폰으로 갈아 탔다. 아이폰을 사용한 이후에는 아이클라우드를 사용해서 사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는 편이다. 가끔 2015년 이전 여행 사진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 진다. 빨리 싸이월드가 복구되어야 아주 오래전 다녀온 사진들을 만날 수 있질 않을까?

처음에 아빠는 인도여행을 간다는 것에 엄청 들떠 계셨다. 우리는 동방항공을 이용해 상하이에서 몇 시간 경유한 후 델리로 이동했다. 나는 인도여행이 처음이 아니였다. 아빠랑 같이 여행가기 두해전 친구들과 10일간 인도 북부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남자 셋이 홍콩에서 너무 놀았는지 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 사기를 당하고 숙박 사기도 당하고, 친구는 남아있는 돈마저 소매치기를 당하고, 직장인 3명 여행이 이래저래 사기를 당하다 보니 빈곤한 여행으로 여행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때 그 느낌을 종종 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그래도 30대 초반이였으니 그것마저 재미가 있었던 시기였다. 아무튼 친구들과의 인도여행 후 한번 더 인도가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계속 바람을 넣었다.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도 있고, 갠지스강도 있고, 우리가 보는 세상, 여행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감언이설로 계속 말하니 결국엔 아빠도 인도여행을 가기로 하셨다. 그렇게 해서 기분 좋게 델리행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다행이랄까 델리 공항에서 뉴델리까지는 공항전철이 운행되고 있어서 공항에서 택시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 아빠는 델리공항에 내렸을 때 공항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다며, 인도 너무 좋은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공항전철 타고 뉴델리역까지 올 때까지 싱글벙글이셨다. 그런데 뉴델리역에 내려서 숙소가 있는 빠하르간지까지 오는 길은 아빠에게 지옥이였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조식을 먹고, 숙소 근처에 있는 여행자의 거리인 빠하르간지에서 커피한잔 마시며 어디를 갈지 생각해 보았다. 아빠는 이때부터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20여일 가까이 웃지를 않으셨다. 타지마할 볼 때만 빼고는 내내 찡그린 표정을 유지하셨다.

 

나는 어디를 갈까 엄청 고민이 되었다. 어디를 가던지 쉽지 않을게 뻔하기 때문이였다. 솔직히 인도여행은 나에게도 쉽지 않은 여행이였다. 처음에 왔을 땐 친구들과 같이 왔기에 내가 신경안쓰면 친구들이 하닌까라는 생각이 있기에 그냥 편하게 미친놈들같이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뭔가 모를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먹는 것도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첫 여행에서는 아무거나 사먹다가 셋다 장염에 걸렸다. 우리는 그게 장염인지도 모르고 계속 배가 아프네 정도만 생각했었다. 그런 경험이 있다보니 최대한 돈을 더 주더라도 위생적인 곳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뉴델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레드포트를 보기 위해 왔다. 길거리는 지옥같이 정신없고 미칠 것 같고, 이게 게임이면 목숨이라도 많지 하나인 목숨을 담보 잡아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지하철만 타면 뭔가 차분하고 조용했다. 지하철이 그렇게 싼 교통수단이 아니라고 들은 적은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이곳이 델리 맞아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좋았다. 홍콩지하철과 비슷한 느낌이였다.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내려서 정신을 쏘옥 빼놓는 거리를 지나 레드포트에 왔다. 친구들이랑 왔을 땐 입장료가 부족해서 이 앞에서 사진만 찍은 것으로 만족했었다.

 

 

인도에서는 사기가 사기같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250루피를 내야 했다. 우리 돈으로 대략 4,000원으로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현지인들은 무료이거나 10루피 정도로 우리는 현지인들보다 대략 20배가 넘게 돈을 더 내야 했다. 인도의 관광지는 대부분 외국인요금과 내국인 요금이 따로 되어 있다. 뭔가 사기당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너희들은 부자닌까 더 돈내고 들어와야지라는 그런 분위기라 기분은 살짝 나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 사기의 최고봉은 아마 타지마할이 아닐까 생각된다. 타지마할은 몇 만원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현지인은 100원 정도 내면 입장이 가능했다.

 

정신없는 길거리와는 달리 역시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 왔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은 뭔가 질서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인도의 오래된 건물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화려한 문화를 이룬 나라가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길거리에서 듣던 빵빵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4,000원을 내고 마음의 평화를 잠시 얻은 것 같았다.

 

 

밖의 날씨가 흐린 것이 아닌, 초미세먼지와 스모그로 인해 하늘이 맑게 보이지 않았다. 목이 가끔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일상화 되었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하면 마스크를 쓰고 다녀도 아무런 눈치를 받지 않지만, 2015년 인도에서는 흰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엔 너무나 주변의 시선이 무서웠다.

 

여름의 델리날씨는 미친듯이 덥고 습했다. 겨울의 델리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시기이기에 미세먼지는 전세계 1등을 달리고 있었다. 지금은 베트남의 하노이가 겨울철 미세먼지 최악의 도시 1등이지만 그 당시에는 인도 뉴델리가 1등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하루종일 목에 가래가 낀 것 같이 답답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전에 갔던 여름만 생각하다 보니 미세먼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여름에는 워낙 비가 자주 내리다 보니 미세먼지나 스모그를 생각도 못했는데, 겨울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은 것도 있겠지만, 진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전세계 인구수 2위라는 것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지하철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섰을 때도 사람들 사이에 깔려서 죽는줄 알았다.

 

아빠는 레드포트 안에서 돌아다니실 때는 그런대로 표정이 좋으셨다. 그런데 다시 밖으로 나오니 표정이 안좋아지셨다. 아마 주변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와 오토릭샤의 경적음이 사람의 혼을 빼놓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갔을 때가 겨울이라 어떤 사람들은 모포같이 생긴 것을 두르고 다녔다. 종종 저녁에 걸어다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간달프 같아 보였다.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였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숙소로 돌아 왔다. 숙소가 있는 파하르간지에서 레드포트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도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정신이 업었다. 혼이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숙소 침대에 누워있는데 계속 귀에서 크락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소리는 한국에 돌아오고도 며칠 더 귓가를 맴돌았다. 숙소에 들어오닌 나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파하르간지 주변만 저녁 무렵에 더 돌기로 하고 첫날의 일정을 그냥 접어 버렸다.

 

둘쨋날은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뉴델리에서 2시간 떨어져 있는 아그라를 다녀왔다. 그런데 기차 연착으로 새벽에 떠나서 다음날 새벽에 숙소에 도착했다. 인도 기차 연착은 악명이 높았다. 그래도 여름에는 연착이 심하지 않은 편인데 겨울에는 연착은 기본이였다. 바라나시에서 다즐링을 가기 위해 뉴잘파이구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연착이 12시간 정도 된적도 있었다. 타지마할을 보고 와서 오전내내 잠을 자고 늦게 밖으로 나왔다. 이날은 인도 시내 몇몇 군데를 본 후 밤기차를 타고 인도인들의 영적 고향인 바라나시로 이동할 예정이였다.

 

 

꿉뚭미나리는 뉴델리 외곽에 있는 곳으로 공항에 까까운 곳이였다. 뉴델리역에서 엘로우 라인을 타고 30분가량을 이동한 후 말비야 나가르(Malviya Ngar)역에서 내린 후 오토릭샤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면 되었다. 우리는 오토릭샤꾼들이 사기를 치는 것이 너무 싫어서 3키로 정도를 걸어서 왔는데, 걸어가면서 목숨을 몇번 잃을 뻔 했다. 길을 건너야 하는데, 건널목이 없었다. 그래서 요령껏 무단횡단을 해야하는데, 그 도로는 차들이 시속 70~80으로 달리는 도로였다. 사람이 지나가도 절대 서주거나 하지 않았다. 눈치껏 알아서 건너가야 했다. 아무튼 괜히 걸었다는 후회를 하면서 꿉뚭미나리에 도착했다.

 

 

커다란 기둥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관광지 앞은 어디가나 삐끼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오토릭샤꾼들이 호객행위를 했다. 그래도 관광지에 들어오면 호객행위가 없어서 너무 좋았다.

 

 

예전에는 저 기둥인지 굴뚝인지가 무슨역할을 했는지 여행책자를 보고서 알 수 있었는데, 다시 사진을 보니 그냥 엄청 큰 굴뚝같아 보이기만 한다.

 

 

 

세월이 흘러서 세밀한 장식들이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도 곳곳에서 정밀하게 조각한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

 

 

4대문화의 발상지인 나라이고, 한때 거대한 제국을 가졌던 인도의 옛문화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란 참 얼마나 역사 속에서 한순간을 스쳐지나가는지,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뉴델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에 올까말까 망설였었다. 오는 과정에서 목숨을 조금 걸어야 하는 점이 조금 부담스럽지만, 쾌적한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보였던 델리의 모습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유적지 안에만 들어오면 이곳이 인도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레드포트는 잘 까꿔진 유적지인 반면에 이곳은 반쯤 가꿔진 그런 느낌이 들지만 뭔가 가꿔지지 않은 모습은 내 상상력을 동원해서 유적을 바라봐야 하기에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빠를 웃게 만드는 것은 항상 식물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식물들이 힘들고 정신없는 인도여행에서 아빠를 유일하게 웃게 만드는 것이였다.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관광지를 따라 여행을 했다. 날이 정말 좋은 날인데, 미세먼지 때문에 사진도 뿌옇게 나왔다. 가까이 보이는 건물들도 희미하게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와 스모그가 너무 심했다. 이렇게 한달 가까이 인도를 여행하고 난 후 한국에 돌아와서 아빠는 일년정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며 병원에 다니셨다. 나도 아마 이때 천식이 급 안좋아진 것 같다. 여행할 때는 그냥 날이 안좋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사진으 보니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디아 게이트 근처로 관공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도 무슨행사가 있는지 인디아 게이트로 가는 길을 막아 놔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 날만 화창해도 멋져 보였을 것 같은데, 날이 너무 이상했다. 해가 분명히 떠 있는데, 희미한 흔적만 보이는 것이 있는듯 없는듯 묘한 날씨였다.

 

 

숙소에서 조식을 먹다 만난 한국인 유학생 부부가 알려준 코넛플레이스 근처의 남인도 음식점으로 갔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아빠는 입맛에 안맞으신다며 별로라고 하셨다. 일단 커리가 우리가 먹는 카레와는 느낌이 다르기에 아빠 입장에서는 응가색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셔서 먹기 힘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식사를 하시는 인도분들이 손으로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니 식욕이 사라져서 갑자기 배가 부른 느낌이 드셨다고 하셨다. 아무튼 아빠에게도 인도는 충격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인도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쯤 되면 전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될 수 있을 만큼 여행에 있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인도 여행은 여행레벨에서 최상급에 속하기에 인도여행을 마치면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A. Red Fort 인도 110006 델리 뉴델리 챈드니 초크 랄 킬라

B. Qutub Minar 인도 110030 델리 뉴델리 메라우리 세스 사라이

C. India Gate Rajpath, India Gate, New Delhi, Delhi 110001 인도

D. 인도 델리 뉴델리 파하르간즈 인도 델리 뉴델리 파하르간즈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