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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잠시 상하이에서 3일 동안 머물렀다. 델리에서 늦은 밤 출발한 비행기는 새벽에 상하이에 도착했다. 새벽 6시 무렵에 도착한 것 같다. 밤새 비행기를 탔더니 온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상하이는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다. 중국은 광저우만 두번 가본적이 있는데, 남들 다 가봤다는 상하이는 처음으로 와봐서 살짝 긴장이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푸동지역으로 이동했다. 아침 출근시간대와 겹쳐서 그런지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너무 이른 시간이였지만 숙소 체크인이 가능했다. 오랜만에 따뜻한 곳에서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잘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잠을 거의 못자고 와서 그런가 따뜻한 물에 씻고 침대에 누우니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한숨자고 밖으로 나오니 상쾌했다. 광저우에 처음 갔을 때도 엄청 놀랐었는데, 상하이에 오니 광저우는 세발의 피도 안되는 것 같았다.

 

 

중국에 대해 막연한 상상만 했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일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인도에 있다 와서 그런지 이런 초고층 빌딩들이 너무 낯설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이곳도 공기가 좋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대낮이였지만 하늘은 인도의 하늘처럼 뿌했다. 그러나 뿌연 하늘 사이로 초고층 빌딩의 실루엣이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땐 높은 건물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빌딩 바로 앞까지 가니 카메라에 건물의 모습이 다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의 건물들이 최소 100층 정도였다. 우리가 지내는 노보텔 호텔 객실도 40여층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초고층 빌딩 숲 가운데 작은 공원이 있었다. 이곳만 놓고 보면 중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중국어를 못하지만 상하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생각보다 영어가 잘통했다.

 

 

무슨 건물을 저렇게 높게 지었을까? 저 건물은 병따개같이 생긴게 신기했다. 저 빌딩 꼭대기가 호텔이라는데,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거의 한달간 이런 문명을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모든 것 하나하나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아마 한국에서 바로 이곳으로 왔으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회오리처럼 감아 올라가는 빌딩이며, 병따개 닮은 빌딩, 그리고 우주선 같이 생긴 동방명주까지 푸동지역을 잠시 돌아다녔을 뿐인데 문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인도에서 느꼈던 문화충격과는 또 다른 충격이였다. 중국이 이 정도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만에 식당다운 곳에 와서 저녁식사를 했다. 아빠는 델리에서 산 털모자가 마음에 드시는지 상하이가 그렇게 춥지 않은데 털모자를 쓰고 돌아다니셨다. 델리 파하르간지에 있는 식당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는데 식당주인이 네팔에서 만든 모자라며 팔고 있었다. 질도 좋고 가격도 1,000원 정도 밖에 안되기에 하나 산 것인데, 색도 너무 이쁘고 너무 따뜻하다고 하셨다. 그냥 2~3개 정도 샀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쪼잔해서 하나만 사드린게 아직도 후회가 된다. 10년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도 가끔씩 추운 곳으로 여행을 갈 때 저모자를 꼭 챙기신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벌써 밤이 찾아 왔다. 밤이 되니 푸동지역은 화려하게 옷을 바꿔입었다. 홍콩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니 낮보다 이 도시가 더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초고층 빌딩에서 있던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홍콩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홍콩같지만 홍콩같지 않은 느낌,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느낌이였다. 그래 이곳은 상하이다. 이런 느낌이 상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이곳도 변화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커튼을 열어보니 저 멀리 어제 걸어갔던 푸동지역이 보였다. 다른 지역에 비해 초고층 빌딩이 밀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푸동지역 옆으로 주거단지가 있었다. 푸동의 화려함과 비교되어 보였다.

 

 

최첨단을 달리는 푸동지역을 본 후 다음날에는 옛날의 상하이를 보기 위해 푸동지역 맞은 편에 있는 예원으로 가보았다.

 

푸동지역이 화려한 네온 사인과 초고층 빌딩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면, 이곳은 예전의 중국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하나를 건너 왔을 뿐인데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중국의 과거로 여행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행책자가 있었지만 그냥 참고만 하면서 걸었다. 걷다보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다 보면 우리가 찾던 곳이 나왔다.

 

사람이 많은 중국, 사람이 또 많은 인도, 전세계 인구 수 1위와 2위를 하는 나라답게 어디가나 사람의 물결이였다.

 

중국식 건물들이 인상적이였다. 특히 한국과는 다르게 처마 끝을 가파르게 꺾은 모습이 한국의 처마와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이 맑기에 날씨는 쌀쌀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맑은 하늘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 밀려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조금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오니 내 페이스로 걸을 수 있었다.

 

중국 특유의 건물들 사이를 걷고 있으니 중국영화의 한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중일 세나라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연히 자신들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중국은 일단 스케일에서 세나라 중 가장 압도적인 것 같았다.

 

 

작은 정원이며 회랑이며, 연못이며,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한 건물 안에 다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 수염이 너무 리얼했다.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맞아서 부러지지 않을까라는 잡스러운 걱정이 들기도 했다.

 

진짜 이공간 안에 많은 것을 넣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저런 돌들은 어디서 가지고 왔을까?라는 별 시덥지 않은 생각이 스처 지나가기도 했다.

 

 

이곳에서 지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담이 높게쳐진 모습을 통해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였을지 상상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담장은 보일듯 말듯, 아니 거의 엿볼 수 있는 구조인데 반해서 이곳의 담장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저멀리 초고층 빌딩과 옛날의 건물이 대조가 되었다. 한쪽은 한없이 성장하고 있는 지역이고, 다른 한쪽은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지역이라는 아이러니 같아 보였다.

 

 

 

첨단을 달리는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인공자연을 느끼며 마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예원의 규모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컸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분주함은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인공의 자연을 즐기며 잠시나마 힐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였다. 주말이라 사람에 밀려서 구경할 수 밖에 없어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도심에서 즐기는 힐링의 시간이였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살아서 돌아왔음에 감사했다. 어떤 사고가 항상 일어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 사고없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 만으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였다. 나에게는 짧은 3주였고, 아빠에게는 너무나도 긴 3주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아빠에게 남인도 여행 한번 가자고 장난식으로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크게 정색하시며 나혼자 여행을 가라고 하신다. 아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여행이였다고 하신다. 힘든만큼 소중한 추억도 많았던 인도여행이였다.

A. Novotel Shanghai Atlantis 728 Pu Dong Da Dao, Pudong Xinqu, Shanghai Shi, 중국 200120

B. Shanghai Tower 501 Yin Cheng Zhong Lu, Lu Jia Zui, Lu Jia Zui Jie Dao, Pudong Xinqu, Shanghai Shi, 중국

C. 동방명주탑 1 Century Ave, Lu Jia Zui, Pudong, Shanghai, 중국

D. 예원 279 Yuyuan Old St, Huangpu, Shanghai, 중국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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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할 때는 정신없는 인도때문에 너무 집에 가고 싶었다. 이제 인도를 떠날 때가 다 되어가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인도에 익숙해진 것일까? 이제는 길거리의 오토릭샤의 경적소리며 사람들의 떠들썩한 인도사람들에 익수해진 것 같다. 며칠 뒤면 인도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한달이란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자이푸르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이 걸려서 델리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였다. 다시 델리로 돌아오니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델리에 도착하니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고 마음이 편했다.

 

 

델리에서는 그냥 쉬고 싶었다. 항상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런지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뉴델리역 앞에 있는 조금 비쌌지만 쾌적한 숙소에서 이박을 했다. 숙소에는 온풍기도 있었다. 뽀송뽀송한 이불과 적당한 건조함, 너무 행복했다. 새벽기차를 타고 자이푸르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너무 피곤해서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 그리고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와 콜라를 사가지고 숙소로 왔다. 숙소 앞 경비원이 나에게 콜라가 얼마인지 물어보았다. 세트메뉴라 대략 콜라만 1000원이 넘는다고 말을 하니 놀란 모습을 보였다. 동네 가게에 가면 반의 반가격이면 살 수 있는 것을 너무 비싸게 사온 것 같다고, 자기는 한번도 맥도널드에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누군가는 한번도 이용한적이 없다고 하니 약간 정신이 멍하였다.

 

숙소에서 쉬다 잠시 델리 시내에 있는 후마윤의 묘에 갔다오기로 했다. 걸어갈 거리는 아니고, 그당시 후마윤의 가는 방법은 오토릭샤 밖에 없어서 오토릭샤꾼과 협상 후 100루피에 후마윤의 묘까지 가기로 했다. 가끔 100루피라고 하고는 도착하고 나서는 인당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꼭 총 100루피인지 확인 후 탑승을 했다. 여러번 오토릭샤를 탔지만, 오토릭샤의 속도감은 익숙해 지지 안는 것 같다. 미세먼지를 잔뜩 마시며 델리시내를 질주했다.

 

 

후마윤의 묘 앞은 관광객을 실고 온 오토릭샤 아저씨들로 정신이 없었다. 입장료를 내고 후마윤의 묘 안으로 들어오니 잘 정리된 정원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뭔가 타지마할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가운데 있고, 그 앞으로는 깔끔한 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질서있게 서있는 학생들을 보니 한편으론 직업적으로 부럽기도 하면서 얼마나 저런 생활에 익숙해 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띠지 않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후마윤의 묘 위를 새 한마리가 빙글빙글 날고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순서대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달 전까지 나도 저렇게 일하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머리서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같다. 잠깐이지만 인도 학생들의 소풍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길거리는 항상 정신이 없지만 유적지만 들어오면 인도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신없는 길거리를 벗어나서 유적지로 들어오면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에 너무 좋았다.

 

 

델리를 떠난지 한 2~3주 된 것 같다. 그사이 하늘이 많이 맑아진 것 같다.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 보다 숨쉬는 것이 편했다.

 

델리라고 생각이 안들만큼 후마윤의 묘지 안은 고요했다. 이렇게 편안하게 있다 다시 이곳을 나가는 순간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참 신기한 나라같다는 생각이 든다.

 

후마윤의 묘 안에 있는 분수대인지 수로인지에서 일하는 분이 계셔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간단한 영어로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 한장을 찍으니 팁을 달라고 한다. 한두번 해보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당황스러웠다. 그분은 자연스럽게 다가와 방심한 나에게 훅하고 한대 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마윤의 묘는 붉은 타지마할 같았다. 타지마할이 순백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면, 이 묘지는 흰색과 붉은 색이 조화를 이루었다.

 

 

볼것은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이지만, 델리의 시끌벅적함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한국에 돌아오면 이런 시끌거림도 다 기억에 날 것이지만, 그래도 그당시에는 그 시끌거림이 너무 힘들게 했ㄷ.

 

조용히 묘지를 걸으며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인도 애증의 나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 것도 많고 경험할 것도 많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여행 중 한순간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 항상 긴장하고 경계하고, 한눈을 팔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인도여행을 하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삶에 대해 작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매순간 느끼게 해주었다.

 

 

 

후마윤의 묘를 구경한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3주간의 인도여행 설레임과 긴장의 연속이였다. 그러나 살면서 꼭 한번쯤은 인도를 가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일상의 삶에 지치고 불만이 생길 때 가끔 인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불만이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제 델리공항에서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야 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 푸동 공항으로 갔다. 인도를 떠나기에 행복했지만, 또 그리웠다.

A. 델리의 후마윤 묘지 Mathura Road Opposite, Hazrat Nizamuddin Aulia Dargah, Mathura Rd, Nizamuddin, Nizamuddin East, New Delhi, Delhi 110013 인도

B. New Delhi Railway Station 인도 110002 델리 뉴델리 아즈메리 게이트 캄라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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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인도를 떠난다는 기쁨도 있지만 더 길게 오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웠다. 조금 더 시간을 내서 왔다면 남인도까지 갔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짧은 일정으로 오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델리, 아그라, 자이푸르를 묶어서 여행을 오게 된다. 델리로 돌아올 날이 며칠 남지 않아서, 델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을 하면 돌아올 때 변수가 생길 것 같아서 델리에서 4~5시간 거리에 있는 자이푸르를 인도여행의 마지막 도시로 정했다.

 

카주라호에서 자이푸르까지는 기차로 1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인도기차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침에 카주라호에서 기차를 탔다.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는 자이푸르에 도착해야 했으나, 우리는 또 새벽에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자이푸르에 도착했다. 자이푸르의 새벽은 쌀쌀했다. 숙소까지 오토릭샤를 타고 갔는지, 걸어갔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그러나 새벽 공기의 싸함과 길거리를 거닐고 있는 들개들의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자이푸르의 첫인상은 싸늘했다.

 

 

숙소로 정한 곳은 예전에 궁전 비슷한 곳으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해서 정했는데, 방에 걸려 있던 초상화가 밤새 나를 처다보는 것 같아서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검은색의 옷장을 열면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이불 밖으로 나갈 수 없었었다. 아무튼 기분야릇한 밤을 보내고 자이푸르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낮이 되니 밤과는 도시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낮에는 도시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도시는 생기가 없어지고 으스스함만 남았다.

 

자이푸르에 오는 백이면 백 모두 이 건물을 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와마할, 한국어로 바람의 궁전은 작은 창문이 여러개가 큰 대로를 향해 놓여져 있는 건물이였다. 이 창문을 통해 궁전 안에 사는 여성들이 바깥세상을 구경했다고 한다.

 

카메라의 화각이 넓지가 않아서 그당시 유행했던 핸드폰용 광각카메라를 핸드폰에 부착하고 찍어야 하와마할의 전체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붉은 색의 건물에 작게 난 창문들에 기대어 밖을 보았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그런가 창문들이 입체적으로 살짝 앞으로 나와 있었다. 하와마할을 보고 있으면 알라딘이 생각났다. 그냥 저 창문에 기대어 공주가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바람의 궁전 근처에 있는 시티 팰리스로 가보았다. 바람의 궁전을 보고 나니 딱히 땡기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스타벅스나 카페가 있어서 시간을 보낼만한 장소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책자에서 가볼만한 다른 곳을 찾아 보게 되었다. 앉아서 쉴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그냥 쉴새없이 걷게 되는데, 그래도 이런 유적지나 볼거리가 있는 곳은 가끔 쉰 공간이 있기에 근처 관광지로 향했다. 그런데 이 동네는 무슨 비둘기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비둘기 때가 하늘을 날면 하늘이 까맣게 보였다. 비둘기가 무섭기도 하지만 날면서 똥을 뿌리고 갈까봐

 

무슨 행사가 있던 것일까?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의 커튼이 인상적이였다.

 

 

그런후 화려한 장식을 한 낙타와 기마병 같은 사람들이 나왔다. 인도 서부지역은 동부와 다르게 사막지역인데 이곳이 그런 곳에 속하나 보다. 기마병보다는 낙타의 훤칠한 키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뒤로는 무용수가 나오는 등 이지역은 전통행렬 같아 보였다.

 

 

이놈의 비둘기들은 한두마리가 아니다. 한번 후두둑 날기 시작하면 무섭다는 인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시티 팰리스도 밖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도 어디가나 사람의 물결에 쉽게 휩싸이게 된다. 세계 2위의 인구 대국다웠다. 인도를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였다. 세계 인구의 1위와 2위인 나라를 이렇게 경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두나라의 느낌은 정반대라 신기했다.

 

 

시티팰리스를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바람의 궁전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 보았다.

 

 

인도에 와서 음식에 엄청 신경쓰였다. 이때까지 다행히 장염 등에 걸리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길거리 음식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바나나였다. 아빠는 카레를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시기에 식당을 찾을 때 인도 음식 전문점은 제외했다.

 

구글지도에서 찾은 중국음식 식당으러 갔다. 가격이 한국식당만큼 가격이 비쌌다. 일반 인도인들이 가는 식당보다 가격에 0이 하나씩 더 붙어 있었다. 인도 여행 후반부라 루피가 많이 없어서 음식을 먹고 싶은만큼 많이 주문하지 못한점이 아쉬웠다.

 

 

오후엔 바람의 궁전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애버 팰리스로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앰버 팰리스로 가는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앰버 팰리스는 자이푸르 외곽에 있는 성이였다.

 

 

버스에서 내려서 성으로 들어가는 길 비둘기도 많고, 성벽을 서성이는 염소나 소도 있었다. 참 어디를 가도 이런 풍경은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이푸르 북쪽에 있는 산쪽엔 여러 성들이 있는데 산비탈을 따라 성벽이 둘러져있고 노란색은 궁전이 있었다.

 

 

성으로 가기 위해선 지그재그로 생긴 길을 따라 올라갔다.

 

 

완만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꽤 올라갔다. 오래전엔 이 길을 말을 타고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드디어 오르막의 마지막부분을 오르니 넓은 광장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문밖을 보니 반대편 산에 성벽이 이어져 있었다.

 

 

바람의 궁전의 붉은색과 대비되는 노란색의 궁전이였다.

 

 

지대가 높다 보니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 왔다. 자이푸르 시내가 보이는 뷰는 아니지만 골짜기 사이로 자리잡은 마을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무가 많지 않은 사막같아 보이는 산들은 이방인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왔다.

 

 

궁전 안 이곳저곳을 돌다보니 광장이 보이는 곳에 가게 되었다. 광장이 아래에서 봤을 때도 꽤 넓어 보였는데 위에서 보니 더 넓어 보였다. 주변의 산들의 색과 궁전의 색이 깔맞춤을 한 것 같았다.

 

궁전 회랑을 따라 걸으며 보이는 풍경들은 이방인의 마음 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겨졌다.

 

 

 

성 자체가 꽤 크다보니 방문객이 많았지만 여유롭게 우리만의 속도로 걸으며 감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넓은 궁전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은 관광객에 의해 온기가 살아있는 건물이 되지만, 예전에는 누군가 애지중지 가꾸던 궁전이 아니였을까!

 

성의 회랑을 따라 거다 보니 성으로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호수와 지그재그 언덕길이 보였다.

 

 

 

궁전의 안쪽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아라비아풍이 느껴지는 건물의 장식들이 이 건물도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전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바람과 같이 지나갔다.

 

 

저 솥단지는 뭐하는 것일까?

 

 

 

앰버 궁전 근처에 계단식 우물로 유명한 곳이 있는데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지쳤기 때문에 유명한 계단식 우물에 가보지 못하고 다시 자이푸르 시내로 돌아왔다. 이곳에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있는 힘을 조금 더 짜내서 가봤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글을 쓰는 지금 밀려왔다. 아무튼 앰버 팰리스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자이푸르로 돌아오는데, 주말이라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A. Hawa Mahal Hawa Mahal Rd, Badi Choupad, J.D.A. Market, Kanwar Nagar, Jaipur, Rajasthan 302002 인도

B. 앰버 팰리스 인도 302001 Rajasthan, Jaipur, Amer, 데비징퓨라

C. 시티 팰리스, 자이푸르 Tulsi Marg, Gangori Bazaar, J.D.A. Market, Pink City, Jaipur, Rajasthan 302002 인도

D. Panna Meena ka Kund 인도 302028 라자스탄 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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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자세히 보기에는 3주 정도의 시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일단 이동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된다. 그러다 보니 한 도시에 2일에서 3일 밖에 있지 못했다. 조금 그 도시를 알 것 같으면 이동하다 보니 이동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인도여행도 이제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인도 동쪽 콜카타에서 내륙인 카주라호까지 이동했다. 원래는 카주라호까지 바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었으나 콜카타에서는 카주라호까지 바로 가는 기차가 없어서 카주라호 주변 도시까지 이동한 후 택시로 갈아타고 카주라호까지 갔다. 주변도시라고 하지만 차로 3~4시간 떨어진 도시였다.

 

 

이번에 탄 기차는 침대칸이기는 하지만 에어콘이 나오지 않는 열차였다. 창문을 열면 이렇게 밖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창문을 열어 놓고 누워있으면 가끔 창문 넘어에서 물건을 팔려는 장사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차는 내륙으로 내륙으로 이동했다. 내륙으로 들어갈 수록 스모그와 안개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기차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아마 안개 때문인 것 같다.

 

확에어콘이 나오는 기차칸과 나오지 않는 기차칸의 사람들의 느낌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에게는 얼마 안되는 금액이지만, 인도인들에게 에어콘이 나오는 칸과 나오지 않는 칸의 차이가 큰 것 같았다. 비행기로 하면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의 차이라고 할까?

 

 

침대는 총 3층으로 2층은 접어서 이렇게 의자로 만들어 앉아 갈 수 있었다. 1층 좌석의 경우 이사람 저사람 앉았다 가는 곳이 되어 내자리이지만 내자리가 아닌 이곳을 이용하는 모두의 자리가 되어 버렸다.

 

우리 기차는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원래는 오전에 카주라호 주변 도시인 마닉푸르 정션역에 도착해야 하는데 우리기차는 몇 시간 연착이 되어 저녁 늦은 시간에 마닉프루 정션역에 도착했다.

 

기차에 앉아서 주변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연착되는 기차때문에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러나 기차의 시설이 좋지 못해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씻지 못해 물티슈로 얼굴을 닦았지만 얼굴에 개기름은 없어지지 않고, 머리를 감지 못해 머리는 떡이져 버렸다. 그리고 겨울이라 사람들이 모포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기차에서 사용하다 보니 은근 기차 안에 먼지가 많았다. 또 잘 때 창문을 닫지 않으면 밖에서 으스스한 바람이 들어와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기차여행 낭만은 있지만 현실은 전쟁같았다. 그리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것도 은근히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밤 늦게 마닉푸르역에 도착해서 카주라호로 이동하려니 막막했다. 대중교통으로는 일단 이동할 수 없는 시간이라 택시밖에 방법이 없었다. 기차역 앞에 있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가격 흥정을 한 후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짐을 트렁크에 넣지 않고 가방을 끌어 안고 택시 뒷자리에 앉았다. 중간에 아저씨가 쉬었다 가자며 집한채만 있는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식당인데 손님이 한두명 있었다. 짜이를 마시라고 주는데, 너무 많은 안좋은 여행기를 읽어서 주인장이 주는 차를 마실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서 일단 한명이 먼저 마신 후 다른 사람이 마셨다. 다행히 그 짜이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산을 넘고 넘어 늦은 밤이 되어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왔던지, 산을 넘을 때 택시기사가 산이 험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며 사당같은 곳에 차를 세운 후 기도를 한 후 운전을 하기도 했다.

 

 

몸은 천근만금 피곤했지만 힘들게 왔으니, 카주라호 시내에 있는 사원들을 이른 시간부터 돌아 다녔다. 아침식사는 사원 앞에 있는 한식당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사원으로 향했다. 그때 한국에서 사가지고 간 담배가 떨어져서 상점에서 담배를 사고 사원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직원이 담배는 안된다고 자기들에게 주고 가라고 한다. 그래서 숙소가 가까우니 숙소에 놓고 온다고 하니 어의없어 했다. 왠지 이 사람들이 내가 담배사는 걸 계속 보고 있다가 입장하니 빼앗아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서 나도 짜증나서 방금 산 것인데 빼앗기기 싫어서 오기를 부려보았다.

 

 

카주라호에 오는 백이면 백사람은 인간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는 사원들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처음에 이 조각상을 마주했을 때 사진을 찍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봤을 땐 그냥 야하네, 노골적으로 표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 조각을 보니 야하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저런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조각 하나하나마다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는 사람같은 느낌이라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종교적으로 찍어도 되는 것인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현재의 기준에서 봐도 파격적인 느낌이 드는 조각들인데,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조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이런 조각들이 한두개가 아닌 탑을 둘러싸고 장식되어 있었다.

 

이 당시 사람들이나 현재의 사람들이나 사람의 성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나라는, 원초적인 물음을 하게 되었다.

 

비딱한 시선으로 본다면 외설적이고 저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하나의 예술로서 보니 외설적인 장면들 보다는 저 조각들의 섬세함과 만든이의 의도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원의 조그마한 공간까지 조각이 되어 있었다. 세월의 흐름의 여향을 받아 몇몇 조각들은 떨어져 나가 있었으나, 떨어져나간 자리에 어떤 모습의 조각이 있었을지는 다른 조각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원을 구경하며 자주 보다 보니 이것도 익숙해 지는 것일까? 처음엔 야릇한 기분이 들더니 이제 익숙해졌다고, 조각이 실감나네 등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에 충실해 지는 것 같았다.

 

 

평범해 보이는 조각마저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진으로 봤을 땐 각각의 장들을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조각들이 주는 압도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운 것 같다. 섬세하게 조각된 조각들이 나를 압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젯밤 무서운 택시(?)를 타고 이곳에 온 보람이 느껴졌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한없이 퇴폐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오래전 사람들의 고민을 조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조각 및 보존 상태를 보고 많이 놀라는 것 같았다. 사원을 지키는 사자 같은데, 뒷모습이 너무 통통해서 이런 부분까지 조각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본 사원 말고도 다른 몇몇 사원들도 구경을 했다. 그러나 앞에서 본 사원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다른 사원들은 평범하게 느껴졌다.

 

화려한 조각들을 구경하다 보니 오전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카주라호에서 오후 시간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갔다.

 

카주라호 시내를 조금 벗어 났을 뿐인데 분위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1960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카주라호도 시골이라 시내라고 해봤자 그렇게 현대화 되어 있지 않은데, 이곳은 시내보다 몇 십년은 뒤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곳엔 무너져 가는 사원이 군데군데 있었다. 무너진 사원은 동네 댕댕이들의 모임장소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오면 사람이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되었다. 길가에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보며, 리얼 인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는 조각상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면, 오후에는 시골지역의 풍경을 보며 또 한번 문화적인 충격을 받은 느낌이였다. 아무튼 인도를 인크레더블 인디아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끊임없이 우리가 지루할까 놀래켜 주는 것 같았다.적응했다 생각했지만, 매순간 적응이 되지 않았다.

A.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카주라호 Sevagram 인도 471606 마디아프라데시 카주라호 세베그램

B.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Khajuraho Rina, Road, Eastern Group of Temples, Sevagram, Khajuraho, Madhya Pradesh 471606 인도

C. Khajuraho Staion Khajuraho, Madhya Pradesh 471606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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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즐링에서 지프를 타고 3~4시간 이동한 후, 뉴잘파구이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인도의 삼대 도시인 캘커타(콜카타)에 도착했다. 기차는 다행히 연착없이 새벽 6시 무렵 콜카타 역에 도착했다. 콜카타에서 조금만 가면 방글라데시가 나오고, 미얀마가 나오는 도시로 인도 동쪽에 있는 도시이다. 예전 영국 식미지 시절 영국인들이 이곳을 발판 삼아 인도와 미얀마 등을 점령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델리에 비해 영국적인 느낌이 나는 건물들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다즐링에서 콜카타(캘커타)로 가는 길은 북에서 남으로 계속 내려오는 일정이였다.

 

 

새벽에 도착해서 숙소 체크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새벽 시간이였지만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조금 잔 후 콜카타 시내 구경을 나왔다. 제일 먼저 카주라호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표 예약하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신기하게 기차역에서 예약하지 않고 기차표 예약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콜카타는 낮에는 덥다는 느낌을 받았다. 델리나 바라나시 등은 싸하게 추운 느낌이 있었는데, 이곳은 햇살이 겨울인데도 다른 인도에 비해 뜨거웠다.

 

델리처럼 북적이는 도시였다. 그러나 델리에 비해 스모그는 적은 것 같았다. 뭔가 북적이지만 델리같은 무질서함은 아니였다. 같은 인도지만 느낌이 사뭇달랐다.

 

 

콜카타를 흐르는 강인 하우라 강을 보기 위해 하우라 다리로 걸어가는 길에 강가 옆에 있는 시장을 들렸다.

 

시장같기도 하고 시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래에서 봤을 땐 그래도 시장같아 보였는데, 위에서 보니 완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철제 구조물로 된 거대한 하우라와 다리는 차량통행도 많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다리였다. 인도의 다리는 국가보호 시설(군사시설) 같은 것이라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여행책자에 써있었다. 그런데 인도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다 핸드폰으로 사진찍고 하는데 우리만 경찰이 불렀다. 그러더니 사진을 보자고 한다. 그래서 몇몇 사진을 보여줬다. 경찰이 두명 있었는데, 한사람은 우리를 안보내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우리를 보내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안하다, 사진찍으면 안되는지 몰랐다라고 계속 말하니 사진찍지 말라고 말하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여행책자에도 경찰이 잡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글을 보았다. 그리고 심한 경우 카메라를 뺏아가려고 하니 조심하라고 적혀 있었다.

 

카메라를 뺏길까봐 은근 가슴을 조렸나 보다. 경찰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잽싸게 걸어 갔다. 얼마나 가슴이 콩딱거리는지, 카메라를 뺏기는 순간 인도여행의 모든 기억이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던지 눈에 잘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많은 인도인들이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해도 우리는 이곳을 찾은 이방인이라 누구의 눈에도 쉽게 띄었다.

 

차들은 쉴세 없이 다리를 지났고, 사람들도 다리를 건너 강건너편으로 갔다. 이렇게 큰 다리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걸어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다들 손에는 물건 하나씩 들고 힘겹게 다리를 통행했다. 저 짐들이 저분들의 삶의 무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구경 후 다리에서 멀지 않은 메단지역으로 갔다. 공원이 펼쳐진 이곳은 정신없는 도시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이였다.

 

주변에는 고층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뭔가 인도에서 이런 건물은 본적이 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생각보다 고층건물을 많이 본적이 업는 것 같다.

 

근처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 공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소리를 벗어나 이런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니 너무 좋았다. 계속 차들의 경적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아빠도 꽃도 있고 한적한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돗자리 하나 있으면 누워서 자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곳이였다.

 

 

공원에서 나와 빅토리아 메모리얼로 갔다. 횡단보도가 없는 길이 많기에 현지인들이 건널 때 눈치껏 따라 건너서 다녔다.

 

영국의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인 19세기 초 타지마할을 본따서 만든 건물이라고 한다. 어쩐지 돔형태 및 색상 등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카타는 겨울이지만 미세먼지나 스모그가 델리나 북인도 타지역에 심하지 않아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따뜻한 날씨 덕분일까 공원이 발달해 있고, 겨울이지만 나무도 푸릇푸릇했다.

 

 

길가의 야자수는 이곳을 더욱더 이국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같은 나라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가 수도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문화의 중심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처럼 이곳도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델리와는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더 사람들이 교양(?)있다고 해야할까?!

 

이곳의 환경이 풍경이 이곳 사람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일까? 뭔가 사람들도 세련되고 차분한게 콜카타라는 도시가 좋았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 앞에 있는 호수에 비친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의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아마 이것도 타지마할을 따라서 만들지 않았을까? 타지마할의 물에 비친 모습을 보고 오지는 못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이 물에 비친 모습을 보며 타지마할을 떠올렸다.

 

퇴근시간이 된 것일까? 빌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낮 동안도 활기찼던 거리가 더욱더 활기차졌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홀 맞은 편에 세인트 폴스 대성당이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찾아보니 영국 런던에 있는 성당과 같은 이름이였다. 그만큼 영국인들이 이곳을 식민지 기지로 삼고 자신들의 문화를 인도에 심어 놓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힌두교 나라에서 보는 성당이라 생소했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보기 위해 이곳에 방문하고 있었다. 성당 옆쪽에 플래너터리엄(천체과학관)이 있었다. 따로 입장료가 있는 것 같아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과학관 앞에 있는 화단의 꽃들이 너무 이뻤다.

 

 

캘커타의 둘째날은 택시를 타고 아주 조금 멀리 가보았다. 택시로 20~30분 거리에 있는 보태니컬 가든이였다. 특이한 나무들도 볼 수 있고, 일단 사람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이 너무 좋았다. 콜카타 시내를 걷다보면 노란색의 택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번쯤 타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택시를 타면 시간은 1970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캘커타의 겨울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택시를 타면 더웠다. 에어컨이 없는 택시는 달려야 밖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올드한 맛에 한 번은 타볼만 한 것 같았다. 여름에 탔으면 어떠했을지 상상을 해보았다.

보태니컬 가든에서 찍은 사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겨우 핸드폰에서 찾은 사진을 이것 하나뿐이였다.

A. Howrah Bridge Howrah Bridge, Howrah, West Bengal 700001 인도

B. 빅토리아 메모리얼 Victoria Memorial Hall, 1, Queens Way, Maidan, Kolkata, West Bengal 700071 인도

C. Botanical Garden Road Botanical Garden Rd, Howrah, West Bengal 711103 인도

D. 인도 서부 벵골 캘커타 Maidan Cathedral Rd, Maidan, Kolkata, West Bengal 700071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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