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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즐링 어디선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홍차의 한 종류로서 쌉싸름하고 강한 맛 때문에 아침에 마시기는 부담스럽지만, 진한 향이 너무 마음에 드는 홍차이다. 바라나시에서 다즐링으로 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바라나시에서 12간 넘게 열차가 연착되었고, 또 기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이틀만에 우리를 다즐링으로 가는 관문인 뉴잘파구이 역에 내려 주었다. 우리는 낮에 이역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한밤중에 기차를 내리니 다황스러웠다.

 

 

다즐링은 네팔과 미얀마, 부탄이 맞닿은 곳에 위치한 고산지대로 다즐링에서 히말라야 산맥의 높고 웅장한 산들을 볼 수 있었다. 대신 뉴잘파구이에서 다시 지프를 타고 4시간 가까이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밤에 도착해서 가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낮에 이동하기로 결정을 했다. 기차에서 만난 인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기차역 근처에 하루 숙박비 1만원 이내의 저렴한 숙소에서 지낼 수 있었다. 흔들리던 기차만 이틀 가까이 탔더니 쿠션이 좋지 않은 침대에 누우니 아직도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가는 길이 힘든데 과연 다즐링을 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즐링으로 가는 관문까지 왔는데,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다즐링으로 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지프를 이용해 3~4시간만에 다즐링에 도착하는 방법과 다즐링으로 가는 7시간 이상 소요되는 꼬마기차가 있었다. 꼬마기차도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기차에 화장실이 없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에 지프를 타고 다즐링으로 갔다. 근데 지프에 짐짝처럼 찌그려져 가야하기에 이것도 쉽지 않았다.

 

3~4시간 정도 걸려서 드디어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는 다즐링에 도착했다. 숙소를 정하지 못해서 돌아다니며 숙소를 찾았다. 그리고 광장 근처에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 그런지 쌀쌀했다. 밤이되면 춥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빠는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정신없지 않아서 그래도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시내 몰에 도미노 피자가 있기에 인도 피자는 맛이 어떤지 궁금해서 피자를 주문했다. 간만에 음식에 대한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한국보다 가격도 저렴해서 두판 세판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즐링에 온다면 꼭 봐야 하는 것은, 아마도 다즐링 꼬마 기차가 아닐까?

 

다즐링 역은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차역이 맞나 싶을 정도의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기차역에서 보는 전망은 기차역의 외관 정도는 무시해도 될만큼 멋졌다.

 

기차를 타러 오는 사람도 있고 기차역을 구경오는 우리같은 관광객도 많았다. 다즐링의 집들은 산에 모여 있기에 다즐링 어디를 가나 달동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곳을 가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좁은 협궤, 협궤열차의 궤간보다 더 좁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이용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철도가 놓여져 있었다.

 

연기를 뿜으며 기차가 플랫홈으로 들어왔다. 이곳을 출발해 저 산아래 마을까지 운행되는 기차였다. 한번쯤 탄 후 한정거장이나 두정거장쯤 가서 내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기차가 들어오니 손님들이 하나둘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 보면 엄청 비효율적인 교통수단 같지만, 나같이 이런 기차의 모습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또 각 마을을 연결해주는 발의 역할을 아직도 하고 있기에 이 기차가 지금까지도 운행되고 있지 않을까? 기차역의 역명이 적힌 팻말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런던 지하철 마크와 같은 모양이였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를 오랜시간에 걸쳐 받았던 나라이기 때문에 아직도 이런 팻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갈듯말듯 연기만 계속 피웠다. 기차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기관사 아저씨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안가고 계속 기적소리만 내고 기차에서는 연기만 흘러 나왔다.

 

 

오후시간이 되면 히말라야 산맥의 구름이 걷히면서 산봉우리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렇게 보여도 저 산들의 높이가 대략 7000~8000미터 정도 되는 산들이였다. 멀리 있어서 그런가 그 높이가 어림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산 정상은 하얗게 덮여 있는 것을 보니 높기는 높은 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에 관심을 조금 끄고 주변을 둘러보니 기차는 기적소리를 내며 다즐링역을 천천히 출발했다. 사람의 걷는 속도보다는 조금 빠른 속도로 기차는 산밑 마을로 향했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광장이 나왔다. 이곳은 산동네다 보니 이렇게 넓은 광장을 생각보다 보기 힘들었다.

 

여행책자를 보니 이곳에 티벳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동네를 걸어다니다 보면 인도사람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다양한 수공예품도 길거리에서 팔고 있었는데, 이것도 인도풍보다는 티벳이나 고산민족들이 만드는 수공예품의 느낌이 많이 났다.

 

 

다른 인도와는 다르게 골목도 조용하고 깨끗했다. 이곳도 지프차가 많이 모여있고, 작은 버스가 다니는 시내같은 곳에 나가면 정신이 약간 없기는 하지만, 델리나 바라나시처럼 정신이 나갈 정도의 복잡함은 아니였다.

 

걷다 보니 이렇게 놀고 있는 성질 사나운 원숭이들도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티벳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이곳이 인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도 티벳사람들처럼 인너피스, 마음이 편아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즐링에 있으면서 짜증이 거의 나지 않았다. 델리나 바라나시에서는 날카로운 경적소리와 시끌거림, 끊임없는 사기로 인해 나름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3일간은 마음이 편했다.

 

티벳은 가보지 못했지만 이곳, 티벳사람들의 마을을 돌면서 티벳이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스모그로 인해 칙칙한 하늘만 보다 이곳에 오니 드디어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해가 질 때가 되면 히말라야 산맥이 만년설은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이 산들은 얼마나 많이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며 지는 해를 보았을까? 나는 고작 이곳에서 보는 첫번째 석양인데 이렇게 감동을 받는데, 저 산들은 얼마나 많이 자연의 풍경을 보면서 감동을 했을지 궁금했다.

 

 

산의 밤은 빨리 찾아 왔다. 햇살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어둠이 찾아 오면 또 다른 느낌으로 길거리는 활력을 찾았다. 일을 마친 사람들, 관광객들은 저녁시간을 보내기 위해 상점이 즐비한 거리로 나왔다.

 

 

첫날이라 그런지 아직은 이런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하루종일 이동했기 때문인지, 고산지역인지 모르겠지만, 컨디션이 엉망진창이였다. 그러나 그냥 오늘밤을 그냥 흘러보내기는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에 아빠와 함께 해가 져가는 거리를 하릴없이 거닐었다.

 

 

밤거리가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할 수록 하늘은 더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다즐링의 밤은 추웠다.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추울 것이라고, 한국의 추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추위라 밤잠을 설쳤다. 그래서 아침일찍 일어났다. 광장에는 개들이 일광욕을 하느라 광장 한가운데 누워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나와서 길거리에서 무건을 팔고 있었다. 밤에는 추웠지만, 아침의 다즐링은 상쾌했다. 가을날 아침같은 상쾌함이였다.

 

 

숙소에서 나와 숙소 근처에 있는 전망대에서 보았을 때는 구름에 가려서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는 카첸중카가 보이지 않았는데, 마을을 한바퀴 돌고 다시 오니 구름이 산을 넘어 가버렸다.

 

다즐링에 있으며 다시 산밑의 도시로 다시 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가기는 해야하기에 어쩔 수 없지만,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이런 자유와 조용함, 깨끗한 공기 등을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아침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숙소라 산책을 나왔을 때 카페에 가서 조식을 먹었다. 이곳은 수도시설이 그렇게 좋지 않은 곳이라 아침에 숙소 욕실에서 씻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뜨거운 물은 왜 그렇게 자주 끊기는지, 만족스럽게 샤워를 하는 것이 아닌 언제 또 뜨거운 물이 끊길지 모르기에 마음을 졸이며 샤워를 했다. 그래도 다른 모든 것이 마음에 들기에 하나정도 단점은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다즐링에 왔으니 차밭은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여행책자를 보고 차밭까지 걸어 가기로 했다. 우리 숙소보다 더 아래쪽 광장인데, 이곳은 살짝 시끌벅적 거렸지만, 정신이 혼미할 정도는 아니였다. 이곳에서 다즐링 곳곳으로 가는 마을 버스가 운행되는 것 같았다. 여행자들이나 현지인들도 산밑 도시로 갈 때는 주고 지프를 이용해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았다.

 

 

광장을 벗어나니 또 조용했다. 바람소리만 종종 들리고, 가끔 개 짓는 소리도 들리고, 아주 가끔 사람의 목소리도 들렸다. 개들도 귀찮은지 개짓는 소리도 많이 듣지는 못했다.

 

여기서부터 차밭입니다라는 팻말은 없었다. 그냥 걷다보니 차밭이 시작되었다.

 

 

차밭은 마을이 위치한 곳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었다.

 

나중에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조금 힘들 것 같다는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래도 날씬해서 오르막 길을 걸어 다녔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녹차와 삼나무(?)는 땔 수 없는 관계인 것인가? 삼나무가 아닐 수 있지만 말이다.

 

 

 

 

 

걷다보니 책에 나오는 녹차농장이 나왔다. 여러군데의 플랜테이션이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기 편한 곳에 위치한 플랜테이션으로 갔다. 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이 나와서 다즐링 홍차에 대해 영어로 빠르게 설명를 해주었다. 몇몇 부분은 미쳐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부분 내가 알고 있던 내용들이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나오는 길에 선물할 다즐링 홍차를 몇 통 구매했다.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구매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었다. 다즐링에 와서 구매한 다즐링 홍차, 뭔가 의미가 있게 느껴졌다.

 

차재배지를 구경한 후 산길을 따라 내려가서 히말라야 동물원 및 등산 협회에 도착했다.

 

다양한 동물들이 있지는 않지만, 이런 산골 안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신기했다.

 

곰도 보고 고산에 사는 동물들도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히말라야 등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역사관같은 곳도 있었다. 등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멀리서 히말라야 산맥을 보고 있으면, 저런 곳을 나도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렇지만 난 역시 멀리서 보는 것이 더 만족스럽긴하다. 이곳에서 동물도 구경하고 히말라야의 산들을 등반하기 위한 장비 등을 볼 수 있었다.

 

차밭을 구경하고 히말라야 동물원으로 올 때는 내리막 길이라 수월하게 왔으나, 다시 돌아가는 길은 계속되는 오르막길이였다. 역시 현대인들은 운동부족인가 보다. 힘들지 않은 오르막 길인데 헉헉 거리기만 한다. 그래도 뭔가 뿌듯한 하루였다.

 

저녁은 인도식 카레를 먹었다. 난 탈리가 맛있고 좋은데 아빠는 보시더니 손이 안가신다고 하셨다. 아마 아빠에게 인도여행은 음식과의 전쟁같았다.

 

 

식사 후 야식거리를 사기 위해 밤거리로 나왔다. 밤공기가 정말 찼다. 가방에서 작은 담요를 꺼내서 인도사람들처럼 겉에 두르고 나왔다.

 

 

오랜만에 본 장작난로였다. 다즐링의 숙박시설은 진짜 열악하다, 그러나 인도같지 않기에, 특별한 인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에 이런 불편함 정도는 견딜만 했다. 밖에 나갔다 왔더니 주인 아저씨께서 몸을 녹이고 들어가라고 하셨다. 도시에서와는 다른 사람간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뭔가 따스함이 느껴졌다.

 

다즐링에서의 마지막날이다. 더 있고 싶지만, 일정이 너무 빡빡하게 세웠다. 인도 여행은 진짜 찐으로 한달, 두달 잡아서 와야하는데, 우리에게는 고작 3주 정도의 시간 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고 싶은 곳은 왜 그렇게 많은지, 가고 싶은 곳만 뽑았는데도 이동시간 때문에 북인도의 일부밖에 여행을 하지 못했다.

 

이곳의 개들은 사람들의 성향을 닮은 것일까? 옆으로 지나가도 경계하지 않는다. 개를 무서워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개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 히말라야 산맥이였다. 며칠동안 보다 보니 이제는 친근한 풍경이 되었다. 이곳에 온지 이제 삼일째, 아침마다 동네 한바퀴를 돌면 손에 잡힐 것 같은 산맥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아쉬웠다. 조금 알 것 같으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여행자란 익숙해지면 떠나는 존재들인 것 같다.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였다. 머리는 사진을 그만 찍으라고 아우성 치지만 손은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풍경을 찍었다.

 

티벳사람들이 하듯이 우리 여행의 안전을 빌며 저 통을 한바퀴 돌렸다. 돌리면서 당연히 부자되게 해달라고도 빌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숙소에 둔 후 뉴잘파구이로 가는 지프를 탈 때까지 시간이 비어서 차한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풍경 좋은 카페를 찾아다녔다.

 

 

 

 

다즐링이 다 보이는 이 카페에 앉아 차한잔 마시며 다즐링 여행을 생각해 보았다. 첫날, 둘쨋날, 오늘, 이렇게 삼일을 이곳에 있었다. 뉴잘파구이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꼬불꼬불한 길이며, 숙소의 한기, 또 잊지 못한 카첸중카의 모습까지 인도지만 인도 같지 않은 이곳에서의 3일은 꿈꾼 것 같았다. 다시 산아래 도시로 내려가면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이제 지프를 타고 3시간에서 4시간 가까이 뉴잘파구이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아빠 옆에 엄청 덩치가 큰 아줌마가 앉아서 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아빠가 아줌마에게 짓눌려서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힘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뉴잘파구이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 이동해서 콜카타(캘커타)로 이동을 했다. 이제 여행의 후반부라 인도에 익숙해 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인도여행은 쉽지 않았다.

A. Darjeeling Joy Ride 인도 734101 서부 벵골 다르질링 림부가언

B. Happy Valley Tea Estate 해피 밸리 티 에스타테 Lebong Cart Rd, Chauk Bazaar, Near, Darjeeling, West Bengal 734101 인도

C. Kanchenjunga View Point (Behind Mahakal Mandir) Mall Rd, Upper Bhutia Busty, Darjeeling, West Bengal 734101 인도

D. Himalayan Mountaineering Institute 인도 734101 서부 벵골 다르질링 자와하르 파밧

E. Darjeeling Mall 인도 734101 서부 벵골 다르질링 차욱 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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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에서 타지마할을 본 후 다시 델리로 돌아온 후, 야간열차를 타고 인도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바라나시로 향했다. 친구들과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 한정된 시간에 여행을 해야했기 때문에 고르고 고른 곳이 바라나시였다. 그래도 갠지스강은 한번 보고 가야 인도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델리-바라나시 구간은 여행자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구간이라 항상 표를 구하기 힘든 구간이였다. 친구들과 왔을 때는 2012년 여름이였다. 델리-바라나시 구간열차 중 빨리 가는 열차는 일단 외국인 표는 매진이였다. 그래서 뉴델리 출발이 아닌 올드델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여름 인도의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는데, 에어콘이 되는 열차칸은 벌써 다 매진이라서 선풍기가 달린 칸을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그것도 겨우 구한 것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대략 11시간이 걸리나, 연착이 잦은 겨울에는 11시간이 아닌 24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도 3~4시간 정도 연착되어 바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는 침대칸 열차이지만 선풍기만 달린 칸이였지만, 이번에는 에어컨이 달린 열차 칸을 탈 수 있었다. 인도의 열차는 설국열차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신분에 따라 재력에 따라 같은 기차도 칸이 무수히 많이 나뉘어 졌다. 맨 하층민이나 가난한 사람이 타는 기차칸은 몇 시간을 나무의자에 앉아서 가야하고, 그리고 침대칸도 등급이 나눠져 있어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친구들과 같이 탔던 침대칸이지만 선풍기만 달린 창문을 열 수 있는 칸이 있고, 그 상위 단계는 아빠와 내가 탄 것 같은 에어컨이 들어오지만 여럿이 같이 같은 칸을 이용하는 열차 칸이 있다. 그리고 돈이 더 많은 상류층 사람들은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1등석 싱글룸같이 생긴 기차칸을 이용했다. 아무튼 한 기차 안에 부유층부터 가난한 사람까지, 설국열차처럼 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행이랄까?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가는 기차표 값은 한화로 3만원 정도로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돈이 아니였다.바라나시에서 다즐링으로 가는 길목인 뉴잘파이구이로 가는 기차에서 다양한 인도 중류층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아빠는 엄청 피곤해 보이셨다. 기차에서 잠을 좀 청하기는 했지만 편하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는 숙박예약이라는 것을 하고 다니지 않았다. 첫날 첫도시만 숙소를 예약하고 나머지 숙소는 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찾아 보았는데, 인도여행 이후 여행은 미리 한국에서 되도록이면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을 떠났다. 인도여행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인도여행 이후 여행스타일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바라나시 숙소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때 지냈던 시바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딱히 아는 곳이 그곳 밖에 없었고, 그때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숙소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아빠와 함께 방문했을 때도 같은 숙소로 정했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했다. 특히 날씨가 적응이 안되었다. 여름에는 진짜 이곳은 미친듯이 습하고 더웠다. 그런데 겨울에는 으스스하게 춥고 습했다. 그래서 그런지 컨디선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북인도 어디가나 겨울엔 스모그가 심한 것 같다. 이곳도 강가에 위치해 있다보니 하루종일 강가의 안개와 오토릭샤에서 나오는 매연, 난반으로 인한 매연까지 합쳐져 뿌연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길을 걷다 한국어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뉴델리에서도 종종 길거리에 소가 서 있는 경우를 보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는 걷다 보면 서있는 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서있는 소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쫒아내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들도 오토릭샤들도 소를 피해서 갈 뿐이였다. 소들은 걷다 쓰레기 통이나 쓰레기장에 떨어져 있는 야채같은 것을 주워먹었다.

 

 

아빠는 정신없는 이곳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것 같아 보이셨다. 델리도 정신이 없지만 이곳은 지옥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비규환이였다. 특히 강가 오게 되면 오만감정이 교차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쉬지 않고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있고, 산사람은 똑 먹고 살기 위해 죽은 사람 옆에서 밥을 먹고 대화를 이어간다.

 

사는게 뭔가라는 질문을 나도 모르게 해보게 되는 곳이였다. 인도인들은 이곳에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하고 다하는데, 우리가 이 물에 피부가 닿으면 피부병으로 고생한다고 하기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갠지스 강은 그렇게 폭이 넓은 강은 아니나, 왠지 보고 있으면 드넓은 평원을 달리는 강이라 그런지 한없이 넓고 크게 느껴졌다.

 

다즐링을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바라나시역으로 릭샤를 타고 갔다. 그런데 릭샤꾼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 몸무게 반밖에 안되는 분이 정신없는 거리에서 열심히 패달을 밟는데, 왠지 짠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주기로한 돈보다 더 드렸다. 대부분 외국인들에게 사기치는 릭샤꾼이나 오토릭샤꾼이 많은데, 그렇지 않았기에 왠지 마음이 더 갔다.

 

 

바라나시에는 두개의 기차역이 있다. 하나는 시내에 있고 다른 하나는 오토릭샤로 30~4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자신이 타고자 하는 기차나, 내리고자 하는 기차가 어느 역에 정차하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뉴잘파구이로 가는 기차는 시내에 있는 바라나시역에서 출발하지 않고,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서 출발했다. 시내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없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일찍 기차역으로 떠나야 했다.

 

바라나시의 밤은 낮과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침, 저녁 안개가 자욱한 이곳은, 밤이 되면 길거리의 주황색의 조명이 더욱더 도시를 신비스럽게 만든다.

 

 

낮만큼 밤엔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는 곳은 왁자지껄했다. 해가 지고 나니 급격히 날이 쌀쌀해 졌다. 두껍게 옷을 입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얇게 입기도 애매한 날씨이다. 으슬으슬 감기에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힌디어로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으니 그냥 멀리 서서 바라만 보았다. 낮이나 밤이나 화장장은 쉴세 없이 운영되는 모양이다. 강가에서는 늦은 저녁이었지만, 화장터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뭔가 화장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희비가 교차되는 느낌이다. 지금 이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아빠에게 인도여행은 매순간이 도전이였다. 일단 음식이 잘 안맞기에 먹는 것도 곤욕이였고,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더 쳐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스모그는 한국에 와서 한동안 아빠를 힘들게 했었다. 아빠는 인도 커리가 똥같아 보인다면 항상 드시기를 꺼려하셨다. 그래도 최대한 색이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커리를 주문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먹는 인도 커리이지만,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비쥬얼적인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일출을 보고 싶어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왔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에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강가로 나오니 아침부터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침엔 쌀쌀한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점심, 저녁 다른 모습을 갠지스강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날 산 인도풍의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니, 우리도 뭔가 이 문화에 젖어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인도여행을 하면서 막 입기 좋은 옷 같았다. 그리고 이런 옷 하나는 입고 다녀야, 인도여행을 쫌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나는 사이즈가 없어서 아빠만 구매하셨다.

 

정말 바라나시의 길은 미로 같다. 우리 숙소도 골목에 있는데, 어떻게 처음에 친구들과 찾아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로같은 골목을 걷고 있는 것도 바라나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또 다른 길을 찾다 보면 결국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나왔다.

 

 

나는 바라나시에서 오래있고 싶었지만, 아빠는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하셨다. 일단 날씨가 너무 습하고 춥기에 좀 더 좋은 날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3일째 되던 날 우린 다즐링으로 떠났다. 그런데 바라나시는 우리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바라나시 외곽에서 뉴잘파구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서 갔다. 그런데 기차전광판에 딜레이 6라고 적혀있어서, 6분 정도 연착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기차는 6시간 연착이라는 표시였다. 하릴없이 기차역 주변을 돌아다니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연착되는 것을 알았으면 아예 숙소에서 늦게 나오면 되는데, 기차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6시간 정도면 견디면 되었기에 버틸만 했다. 그런데 전광판의 숫자는 결국 14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정오전에 기차를 탑승할 예정이였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열몇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2일동안 기차를 타고 갔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델리에서 탑승했는데, 집이 미얀마 국경이라고 한다. 이상태로 가면 집에 가는데 1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2일만에 아주 늦은 시간에 뉴잘파구이에 도착을 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다즐링으로 바로 가기 무서웠다. 또 산길을 짚차로 3시간에서 4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차역 주변에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아침에 수많은 비둘기 때의 소리에 잠이 깨기는 했지만, 이틀만에 흔들림 없이 자서 그런지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A. 바라나시 융티온 레일웨이 스테이션 maa surge balika intermediate collage, Railwayganj Colony, Varanasi, Uttar Pradesh 221002 인도

B. Shiva Guest House Munshi ghat, Varanasi, Uttar Pradesh 221001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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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저녁에 도착해서 정신이 혼미하고, 둘째날은 잠깐 델리 시내를 다녔을 뿐인데 인도인들에게 기까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빠가 가장 기대했던 타지마할을 가기 위해 전날 뉴델리역 외국인 전용창구에서 기차표를 예약했다. 외국인 전용창구로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나야 이번이 두번째 인도 여행이니 뉴델리역 외국인 전용창구가 어디있는지 알기에 우리에게 사기 치려는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갈 수 있었지만, 처음 왔다면 아마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며 사기치는 아저씨들의 말을 믿었을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대단한게 어디가 사기이고 어디가 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 진짜 구라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그들의 거짓말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였다.

 

 

 

뉴델리에서 아그라까지는 특급열차로 2시간 거리였다. 기차는 뉴델리에서 출발하는 열차라 플랫홈에 정시에 기차가 도착을 했다. 아그라까지 가는 기차표는 항상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구간이라 성수기에는 표를 구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 및 날짜에 표를 살 수 있었다. 뉴델리역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고 정신이 없다. 플랫홈에서는 계속 힌디어와 영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도 시끌시끌하고,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갑자기 그때 그 느낌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기차의 종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장 정거장 수가 적은 기차라는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인도에서 여러번 기차를 탔지만 이것만큼 좋았던 기차는 없었던 것 같다. 리클라이닝이 되는 의자라는 것을 볼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이렇게 에어콘이 나오고 리클라이닝 되는 좌석은 최고급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기차는 정시에 출발을 했다.

 

 

앉아 있으니 아침 식사도 나왔다. 짜이나 차, 그리고 샌드위치인지 오믈렛인지 아무튼 조식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는데 이렇게 공짜로 음식을 주니 기분이 좋았다. 아빠도 타지마할을 볼 생각을 하시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다. 인도에 온 이유의 90퍼센트 이상이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기차가 잘 달리다 한동안 달리지 않고 정차해 있었다. 기차역도 아니고 그냥 철길 위에서 말이다. 물어보니 안개가 심해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2시간 거리를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원래는 오전 8시 무렵에 도착해야 하는데 오전 10시가 넘어서 아그라 칸트역에 도착했다. 인도인들은 일상이라는 듯이 별 불만없이 기차에서 내렸다. 연착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만 왠지 마음이 조급해 보였다.

 

아그라 칸트역에 내리니 기차역 앞에는 진짜 수많은 오토릭샤 운전하와 릭샤 운전사들이 초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여행객들을 유혹했다. 일단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올바른 판단이 불가능 해서 착해보이는 릭샤꾼에게 타지마할까지 얼마냐고 물어 본 후 자전거 뒤에 앉았다. 지금이야 내가 살이 너무쪄서 아빠와 함께 앉을 수 없지만 그때만 해도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해서 릭샤꾼 뒷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가냘픈 릭샤꾼이 뒤에서 보니 너무 힘들어 보여서 괜히 내돈내고 타는데 눈치가 보였다. 릭샤꾼은 타지마할에 도착해서 우리에게 한국의 지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한국돈이 있으면 한국 지폐를 기념으로 줄 수 없냐고 물어봐서 천원을 주려고 하니, 다른 색깔로 달라고 해서 순간 당황했다. 이것도 사기인가 우리는 50루피에 팁으로 한국돈 1,000원을 주면 대략 100루피 한화로 2,000원을 준거닌까 괘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뭔가 뒤를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웃고 있지만 뒤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이때부터 사람의 친절함 뒤에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아서 뭔가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타지마할은 입장료를 사서 안에 바로 들어가면 짜잔하고 타지마할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입장권을 사고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안으로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입장료가 인도여행하면서 다닌 유적지 중 가장 비쌌다. 대략 1000루피 정도로 그당시 환률로 하면 대략 인당 2만원 정도였다. 대신 인도 현지인들은 몇백원 정도로 외국인은 약간 호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인도여행에서 타지마할은 뺄 수 없으니 울며겨자 먹기로 표를 살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인도정부도 미안한지, 외국인은 물한병과 봉지하나를 주었다. 타지마할 안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히 비닐봉지를 선물로 주었다.

 

뉴델리도 초미세먼지와 스모그가 심하지만 아그라는 강가에 있는 도시라 그런지 오전 내내 앞이 안 보일만큼 하늘이 뿌했다.

 

이곳을 지나면 타지마할이 짜잔하고 나타나야 했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건물을 지나 타지마할을 보러갔다.

 

어!? 그런데 타지마할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많은 블로그에서 문을 지나면 타지마할이 나를 반길 것이라고 했는데, 분수대 끝에 분명히 있어야 할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보기 위해 한국에서 왔는데라는 별별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타지마할 쪽으로 걸어가니 타지마할의 윤곽이 드러났다. 너무 극심한 스모그로 인해서 바로 앞에 있는 타지마할이 보이지 않았다. 진짜 겨울엔 스모그와의 전쟁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수대 앞에 예전에 영국의 다이애나 왕비가 타지마할을 방문했을 때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찍었다는 의자가 있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는 타지마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짜 가까이 가야 타지마할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료를 살 때 받은 비닐봉투에 신발을 넣고 타지마할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미얀마 여행 때는 사원에 들어가려면 양말까지 벗어야 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곳은 양말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대리석 바닥을 신발없이 밟고 다니니 기분이 찝찝하기도 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였다.

 

멀리서 봤을 땐 흰 대리석의 느낌이였으나, 세월의 영향 때문일까, 대리석은 누런색을 띠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 웅장해서 건물에 약간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으로 본 타지마할의 모습은 그렇게 크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타지마할을 보게 된다면 그 규모에서 먼저 놀라게 될 것 이다.

 

정오에 가까워질 수록 스모그는 많이 사라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타지마할의 모습을 아침보다는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입장료가 비싼데 너무 빨리 나가면 너무 돈이 아까울 것 같아서 타지마할을 나가지 못하고 계속 봤던 곳을 또보고 또 보았다. 타지마할을 보면서 진짜 이곳은 평생 한번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평생 한번 밖에 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장소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타지마할 같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과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일단 가는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기에 다시 여행을 계획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젊을 때 아니면 체력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운 곳들이기에 젊을 때, 기운있을 때 딱 한번이면 족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광객도 많아졌다. 점점 스모그가 거치게 되니 사진에서 보던 타지마할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생각했던 타지마할은 이 분수대에서 멋지게 사진을 찍는 것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 타지마할을 상상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빠가 빨간색의 특이한 모자를 쓰고 다니셔서 그런지 사람들이 한번씩 모자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타지마할이 안보인다고 그냥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남들이 다하는 타지마할로 할 수 있는 착시효과 사진을 찍어 보았다.

 

몇 시간 동안 타지마할 앞에 있으면서 타지마할을 질리도록 보고 온 것 같다.

 

정오가 지나 오후 한시쯤 되었을까 완전히 타지마할의 모습을 영접할 수 있었다.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여기서 비비적 거리지 않고 다른데로 갔으면 이런 모습을 놓쳤을 것 같다.

 

타지마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밖에 나가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장소로 이동을 위해 타지마할과 작별의 인사를 하고 타지마할 밖으로 나왔다.

 

정신이 다시 혼미해지는 것 같다. 지나만가도 이사람 저사람이 우리에게 호객행위를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서 알게된 점은 세워져 있는 오토릭샤나 릭샤를 타기보다는 지나가는 빈 오토릭샤나 릭샤를 타는게 사기도 덜 맞고 저렴한 것 같았다.

 

무섭게 달려드는 삐끼아저씨들을 피해 길가로 나와 오토릭샤를 잡아 탔다. 다음 목적지는 타지마할을 본 후 꼭 간다고 하는 아그라성이였다. 델리는 그래도 대도시라 그런지 인도를 걷거나 상점이 많아서 볼거리가 많아서 걸어다닐만 했다. 종종 횡단보도가 없어서 힘들 때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데 이곳은 구글 지도만 보고 왔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었다.

오토릭샤는 동남아 여행하며 타는 뚝뚝이 같은 것으로 운전석 뒤에 앉는데 전에 친구들과 왔을 땐 성인 남자 3명정도 까지 끼어서 탈 수 있었다. 저렴하고 인도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교통수단이지만, 약간 목숨은 내 놓고 타고 다니는 느낌이였다.

 

 

타지마할 만큼 많은 방문자들로 북적이는 장소였다. 붉은색으로 된 성이 인상적이였다. 타지마할과 대조되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는 정신없었지만, 성안으로 들어오니 역시 다시 평화가 찾아 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올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멘탈을 구하는 비용을 입장료로 대신한 것 같다. 아무튼 인도여행의 3일차 였지만, 적응이 잘 안되는 것 같다. 해외나오면 집생각이 잘 안나는데, 인도여행을 하는 내내 집이 그리웠다. 그래도 남은 일정이 있으니 정신 잘 잡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아그라주변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기에 스모그만 아니였다면 풍경이 죽여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성을 만들어 무엇을 했을까?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났기에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겠지만, 과거에는 더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았을까? 알라딘에 나오는 그런 풍경이였을까? 성의 전망대(?)에 서서 사람의 유한함과 권력의 무상함 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루종일 아침에 기차에서 먹은 오믈렛인지 샌드위치 같은 것이 전부였다. 아그라성을 구경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런데 식당을 찾기 힘들었다. 괜히 길거리 음식 먹었다가 장염에 걸리면 안될 것 같아서 구글지도에서 메인 쇼핑거리를 찾아 가보았다. 그런데 주말이라 그런가 문을 다 닫았다. 여기서 피자나 먹고 가려고 했다. 문연 상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차역으로 빨리 돌아갔다. 기차역에 가서 예약된 기차보다 빠른 기차가 있으면 델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모든 기차가 연착되어서 언제 기차가 올지 모른다고 한다. 다행히 기차역 안에 스낵코너가 있어서 점심겸 저녁을 대충 먹었다. 우리는 원래 오후 5인가 6시 기차를 타고 뉴델리로 돌아오면 저녁 8~9시 사이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그라 칸트역에서 6~7시간을 기다린 것 같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뉴델리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 기차마저 연착이 되어 새벽 4시 무렵에 뉴델리 역에 도착을 했다. 인도에서 계획이란 무의미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착되었다고 그 누구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인도여행에서 아그라는 뺄 수 없는 필수적인 장소이다. 대부분 당일치기고 타지마할을 보고 오려고 한다. 그런데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빼버려야 하는 여행지이기도 한다. 전에 친구와 1주일 북인도 여행을 할 때 타지마할을 가고 싶었지만, 우리 일정상 타지마할은 비행기 타는 마지막 날 밖에 시간이 되지 않았다. 비행기가 자정에 탑승이라 낮에 타지마할을 보고 오고 싶었지만, 역무원이 기차가 연착되면 비행기 시간에 못 돌아 올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타지마할을 포기했다. 가끔 친구와 만나면 그때 타지마할을 보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이야기 한다. 한국과 같이 생각한다면 두시간 거리에 있는 타지마할을 당일치기로 충분히 가능할 것 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곳은 인도이다. 인도여행의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계획은 단지 계획일 뿐이라는 것을 인도여행을 통해 매일매일 배우게 되었다.

A. Agra Railway Station Agra-Bikaner Road, Railway Station Colony, Agra, Uttar Pradesh 282001 인도

B. Agra Cantt Railway Station 인도 282001 우타르 프라데시 아그라 이드가 콜로니 아그라 캔트

C. Taj Mahal 인도 282001 우타르 프라데시 아그라 타즈간즈 포레스트 콜로니 다르마퓨리

D. Agra Fort 인도 282003 우타르 프라데시 아그라 라카간즈 아그라 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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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 갔던 여행기를 마무리 하려고 봤더니, 마지막 여행지에 대한 정리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미리 정리해둔 2015년 1월에 다녀온 인도여행기 부터 포스팅하려고 한다. 인도여행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때 사진을 많이 찍은 것 같은데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2015년까지는 갤럭시 시리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예전 핸드폰에 사진이 많을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아이폰으로 갈아 탔다. 아이폰을 사용한 이후에는 아이클라우드를 사용해서 사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는 편이다. 가끔 2015년 이전 여행 사진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 진다. 빨리 싸이월드가 복구되어야 아주 오래전 다녀온 사진들을 만날 수 있질 않을까?

처음에 아빠는 인도여행을 간다는 것에 엄청 들떠 계셨다. 우리는 동방항공을 이용해 상하이에서 몇 시간 경유한 후 델리로 이동했다. 나는 인도여행이 처음이 아니였다. 아빠랑 같이 여행가기 두해전 친구들과 10일간 인도 북부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남자 셋이 홍콩에서 너무 놀았는지 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 사기를 당하고 숙박 사기도 당하고, 친구는 남아있는 돈마저 소매치기를 당하고, 직장인 3명 여행이 이래저래 사기를 당하다 보니 빈곤한 여행으로 여행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때 그 느낌을 종종 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그래도 30대 초반이였으니 그것마저 재미가 있었던 시기였다. 아무튼 친구들과의 인도여행 후 한번 더 인도가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계속 바람을 넣었다.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도 있고, 갠지스강도 있고, 우리가 보는 세상, 여행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감언이설로 계속 말하니 결국엔 아빠도 인도여행을 가기로 하셨다. 그렇게 해서 기분 좋게 델리행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다행이랄까 델리 공항에서 뉴델리까지는 공항전철이 운행되고 있어서 공항에서 택시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 아빠는 델리공항에 내렸을 때 공항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다며, 인도 너무 좋은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공항전철 타고 뉴델리역까지 올 때까지 싱글벙글이셨다. 그런데 뉴델리역에 내려서 숙소가 있는 빠하르간지까지 오는 길은 아빠에게 지옥이였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조식을 먹고, 숙소 근처에 있는 여행자의 거리인 빠하르간지에서 커피한잔 마시며 어디를 갈지 생각해 보았다. 아빠는 이때부터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20여일 가까이 웃지를 않으셨다. 타지마할 볼 때만 빼고는 내내 찡그린 표정을 유지하셨다.

 

나는 어디를 갈까 엄청 고민이 되었다. 어디를 가던지 쉽지 않을게 뻔하기 때문이였다. 솔직히 인도여행은 나에게도 쉽지 않은 여행이였다. 처음에 왔을 땐 친구들과 같이 왔기에 내가 신경안쓰면 친구들이 하닌까라는 생각이 있기에 그냥 편하게 미친놈들같이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뭔가 모를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먹는 것도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첫 여행에서는 아무거나 사먹다가 셋다 장염에 걸렸다. 우리는 그게 장염인지도 모르고 계속 배가 아프네 정도만 생각했었다. 그런 경험이 있다보니 최대한 돈을 더 주더라도 위생적인 곳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뉴델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레드포트를 보기 위해 왔다. 길거리는 지옥같이 정신없고 미칠 것 같고, 이게 게임이면 목숨이라도 많지 하나인 목숨을 담보 잡아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지하철만 타면 뭔가 차분하고 조용했다. 지하철이 그렇게 싼 교통수단이 아니라고 들은 적은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이곳이 델리 맞아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좋았다. 홍콩지하철과 비슷한 느낌이였다.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내려서 정신을 쏘옥 빼놓는 거리를 지나 레드포트에 왔다. 친구들이랑 왔을 땐 입장료가 부족해서 이 앞에서 사진만 찍은 것으로 만족했었다.

 

 

인도에서는 사기가 사기같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250루피를 내야 했다. 우리 돈으로 대략 4,000원으로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현지인들은 무료이거나 10루피 정도로 우리는 현지인들보다 대략 20배가 넘게 돈을 더 내야 했다. 인도의 관광지는 대부분 외국인요금과 내국인 요금이 따로 되어 있다. 뭔가 사기당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너희들은 부자닌까 더 돈내고 들어와야지라는 그런 분위기라 기분은 살짝 나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 사기의 최고봉은 아마 타지마할이 아닐까 생각된다. 타지마할은 몇 만원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현지인은 100원 정도 내면 입장이 가능했다.

 

정신없는 길거리와는 달리 역시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 왔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은 뭔가 질서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인도의 오래된 건물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화려한 문화를 이룬 나라가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길거리에서 듣던 빵빵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4,000원을 내고 마음의 평화를 잠시 얻은 것 같았다.

 

 

밖의 날씨가 흐린 것이 아닌, 초미세먼지와 스모그로 인해 하늘이 맑게 보이지 않았다. 목이 가끔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일상화 되었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하면 마스크를 쓰고 다녀도 아무런 눈치를 받지 않지만, 2015년 인도에서는 흰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엔 너무나 주변의 시선이 무서웠다.

 

여름의 델리날씨는 미친듯이 덥고 습했다. 겨울의 델리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시기이기에 미세먼지는 전세계 1등을 달리고 있었다. 지금은 베트남의 하노이가 겨울철 미세먼지 최악의 도시 1등이지만 그 당시에는 인도 뉴델리가 1등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하루종일 목에 가래가 낀 것 같이 답답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 전에 갔던 여름만 생각하다 보니 미세먼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여름에는 워낙 비가 자주 내리다 보니 미세먼지나 스모그를 생각도 못했는데, 겨울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은 것도 있겠지만, 진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전세계 인구수 2위라는 것이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지하철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섰을 때도 사람들 사이에 깔려서 죽는줄 알았다.

 

아빠는 레드포트 안에서 돌아다니실 때는 그런대로 표정이 좋으셨다. 그런데 다시 밖으로 나오니 표정이 안좋아지셨다. 아마 주변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와 오토릭샤의 경적음이 사람의 혼을 빼놓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갔을 때가 겨울이라 어떤 사람들은 모포같이 생긴 것을 두르고 다녔다. 종종 저녁에 걸어다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간달프 같아 보였다.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였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숙소로 돌아 왔다. 숙소가 있는 파하르간지에서 레드포트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도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정신이 업었다. 혼이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숙소 침대에 누워있는데 계속 귀에서 크락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소리는 한국에 돌아오고도 며칠 더 귓가를 맴돌았다. 숙소에 들어오닌 나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파하르간지 주변만 저녁 무렵에 더 돌기로 하고 첫날의 일정을 그냥 접어 버렸다.

 

둘쨋날은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뉴델리에서 2시간 떨어져 있는 아그라를 다녀왔다. 그런데 기차 연착으로 새벽에 떠나서 다음날 새벽에 숙소에 도착했다. 인도 기차 연착은 악명이 높았다. 그래도 여름에는 연착이 심하지 않은 편인데 겨울에는 연착은 기본이였다. 바라나시에서 다즐링을 가기 위해 뉴잘파이구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연착이 12시간 정도 된적도 있었다. 타지마할을 보고 와서 오전내내 잠을 자고 늦게 밖으로 나왔다. 이날은 인도 시내 몇몇 군데를 본 후 밤기차를 타고 인도인들의 영적 고향인 바라나시로 이동할 예정이였다.

 

 

꿉뚭미나리는 뉴델리 외곽에 있는 곳으로 공항에 까까운 곳이였다. 뉴델리역에서 엘로우 라인을 타고 30분가량을 이동한 후 말비야 나가르(Malviya Ngar)역에서 내린 후 오토릭샤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면 되었다. 우리는 오토릭샤꾼들이 사기를 치는 것이 너무 싫어서 3키로 정도를 걸어서 왔는데, 걸어가면서 목숨을 몇번 잃을 뻔 했다. 길을 건너야 하는데, 건널목이 없었다. 그래서 요령껏 무단횡단을 해야하는데, 그 도로는 차들이 시속 70~80으로 달리는 도로였다. 사람이 지나가도 절대 서주거나 하지 않았다. 눈치껏 알아서 건너가야 했다. 아무튼 괜히 걸었다는 후회를 하면서 꿉뚭미나리에 도착했다.

 

 

커다란 기둥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관광지 앞은 어디가나 삐끼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오토릭샤꾼들이 호객행위를 했다. 그래도 관광지에 들어오면 호객행위가 없어서 너무 좋았다.

 

 

예전에는 저 기둥인지 굴뚝인지가 무슨역할을 했는지 여행책자를 보고서 알 수 있었는데, 다시 사진을 보니 그냥 엄청 큰 굴뚝같아 보이기만 한다.

 

 

 

세월이 흘러서 세밀한 장식들이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도 곳곳에서 정밀하게 조각한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

 

 

4대문화의 발상지인 나라이고, 한때 거대한 제국을 가졌던 인도의 옛문화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란 참 얼마나 역사 속에서 한순간을 스쳐지나가는지,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뉴델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에 올까말까 망설였었다. 오는 과정에서 목숨을 조금 걸어야 하는 점이 조금 부담스럽지만, 쾌적한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보였던 델리의 모습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유적지 안에만 들어오면 이곳이 인도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레드포트는 잘 까꿔진 유적지인 반면에 이곳은 반쯤 가꿔진 그런 느낌이 들지만 뭔가 가꿔지지 않은 모습은 내 상상력을 동원해서 유적을 바라봐야 하기에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빠를 웃게 만드는 것은 항상 식물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식물들이 힘들고 정신없는 인도여행에서 아빠를 유일하게 웃게 만드는 것이였다.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관광지를 따라 여행을 했다. 날이 정말 좋은 날인데, 미세먼지 때문에 사진도 뿌옇게 나왔다. 가까이 보이는 건물들도 희미하게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와 스모그가 너무 심했다. 이렇게 한달 가까이 인도를 여행하고 난 후 한국에 돌아와서 아빠는 일년정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며 병원에 다니셨다. 나도 아마 이때 천식이 급 안좋아진 것 같다. 여행할 때는 그냥 날이 안좋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사진으 보니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디아 게이트 근처로 관공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도 무슨행사가 있는지 인디아 게이트로 가는 길을 막아 놔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 날만 화창해도 멋져 보였을 것 같은데, 날이 너무 이상했다. 해가 분명히 떠 있는데, 희미한 흔적만 보이는 것이 있는듯 없는듯 묘한 날씨였다.

 

 

숙소에서 조식을 먹다 만난 한국인 유학생 부부가 알려준 코넛플레이스 근처의 남인도 음식점으로 갔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아빠는 입맛에 안맞으신다며 별로라고 하셨다. 일단 커리가 우리가 먹는 카레와는 느낌이 다르기에 아빠 입장에서는 응가색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셔서 먹기 힘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식사를 하시는 인도분들이 손으로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니 식욕이 사라져서 갑자기 배가 부른 느낌이 드셨다고 하셨다. 아무튼 아빠에게도 인도는 충격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인도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쯤 되면 전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될 수 있을 만큼 여행에 있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인도 여행은 여행레벨에서 최상급에 속하기에 인도여행을 마치면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A. Red Fort 인도 110006 델리 뉴델리 챈드니 초크 랄 킬라

B. Qutub Minar 인도 110030 델리 뉴델리 메라우리 세스 사라이

C. India Gate Rajpath, India Gate, New Delhi, Delhi 110001 인도

D. 인도 델리 뉴델리 파하르간즈 인도 델리 뉴델리 파하르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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