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에는 강원도 태백을 살면서 가장 많이 간 달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태백 집 공사가 시작된 후로 매주 태백에 갔다. 새벽에 일어나 출발을 했다. 겨울이라 아직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태백으로 향했다.
원주쯤 왔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저 앞에 놓여 있는 치악산을 몇 번을 넘었을까. 처음 태백에 갈 때는 이 길이 너무 어색했다. 그러나 이젠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치악휴게소에서 한번 쉰 후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달렸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 다시 고개를 오르는 고속도로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끌렸다.
서울에서 태백 가는 길의 절반은 국도를 타고 간다. 제천 IC를 나와 영월로 가는 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 나왔다. 급하게 내려갔다, 다시 오르는 길로 이 길에 접어들면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중앙선에서 분기된 태백선은 단선으로 동해까지 갔다. 지금이야 기차를 타면 서울에서 KTX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청량리를 출발해 원주, 제천을 거쳐 태백, 동해, 정동진을 지나 강릉에 도착했다. 탑승시간만 장장 6시간에 달했다. 예전엔 기차 편 수가 많았던 태백선은 지금은 하루에 4-5대 밖에 서울로 오는 기차밖에 남지 않았다. 더욱더 태백은 오지가 되어 버렸다.
이제 길은 정동쪽을 향해 뻗어 있었다. 강한 햇살에 눈이 아팠다.
12월이지만 이상하게 정선이며 태백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집을 수리하면서 은근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겨울 태백의 눈이었는데, 이번 겨울엔 눈이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1100미터 지점을 지나 터널을 나오면 태백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가기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추전역에 잠시 들렸다. 응달진 곳에는 눈이 내렸다 녹지 않아서 빙판의 오르막이었다.
승객용 기차역이 아니다 보니 기차역은 폐쇄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 올라와서 탈 손님도 없겠지만. 코로나 전에는 환상선 눈꽃열차 같은 관광열차를 타고 잠깐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역이었지만, 지금은 어쩌다 온 관광객이 찾는 그런 역이었다. 난 국민학교를 나왔으니, 국민학교일 때 학원 선생님의 고향이 동해라 동해 가는 기차를 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도 지나고, 기차가 뒤로 가는 경험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중앙선과 태백선, 영동선은 경부, 호남선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철도시설들을 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치악산을 지날 땐 루프식 철도를,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이고, 태백을 지나 통리 쪽으로 갈 때는 스위치백 철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요즘은 토목공사 기술이 좋아져 스위치백 철도는 사라지고 그 구간은 똬리굴 모양인 루프식 철도로 바뀌었다.
추전역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역이 아니지 않을까. 855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으로. 이곳까지 기차가 올라오기 위해선 얼마나 힘들까.
화장실을 가고 싶어 화장실로 향했으나 겨울철에는 동파 때문에 문을 잠가 두었다.
날이 좋으면 나무 아래 앉아 바람을 쐬며 가면 참 좋을 텐데. 이곳의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뒤로 보이는 곳이 아마 태백 바람의 언덕일 건 같았다. 가을에 저곳에서 보았던 노을은 아직도 살아 숨 쉬는데 벌써 몇 개월이 지나버렸다.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추전역을 지키고 있었다.
탄을 싩고다니던 노란 기차는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이곳이 석탄 산지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태백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아직도 탄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이곳이 얼마나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처음 태백 하면 탄광촌에 왜 가라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나에게 태백은 정동진 가는 길 새벽에 본 주황색 불빛 가득한 죽은 도시였다. 이곳에 자주 오다 보니 이제는 죽은 도시보다는 힐링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 큰길로 나갔다. 경사도 급한데 내리막길이니 자동적으로 온몸에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리모델링 중인 집에 왔다. 한 주 한 주 집의 모습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빠와 나의 큰 낙이었다. 귀신 나올 건 같은 집이 이렇게 변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창문 넘어 보이는 풍경은 그림 그 자체였다. 창문을 열면 주변에 아파트만 보이는 곳에 살다 보니 이곳에서는 창문을 통해 본 풍경만으로도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집 구경을 잠시하고 다시 서울로 가기에는 너무 아쉽기에 잠시 시간 보낼 곳을 찾아보았다.
최근 새로 개장한 곳이 있어서 동해로 향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나왔던 곳이라는 것이 끌렸다. 태백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 이곳은 석회석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는 길에 시멘트 공장을 볼 수 있었고, 무릉별유천지 이곳에도 채석장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차를 주차한 후 매표소로 걸어갔다. 주차요금이 적혀 있었으나 우리가 갔을 때까지는 주차료를 받지 않았었다.
예전에 채석장이 있던 곳으로 양옆에 큰 호수가 있었다.
채석 공장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만 인테리어를 한 것 같았다.
거친 외관과는 달리 꽤 감각적인 내부는 과거와 현대를 잇는 것 같았다.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 매표소로 갔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우리는 이곳에 우연히 왔기에 기본 입장권만 구매했는데, 다른 즐길 거리도 있기에 사전에 미리 생각을 하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채석장에서 사용하던 컴퓨터 같았는데 고대 유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직원에게 입장료를 보여준 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한쪽엔 채석장에서 사용된 차량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저 차들이 트랜스포머처럼 왠지 변신할 것 같아 보였다.
걷는 게 좋은 사람은 호수 주변을 걸어도 좋고, 우리처럼 코끼리열차를 타고 위에 올라가서 전경을 구경한 후 걸어서 내려오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무릉별유천지 열차를 타고 루지 타는 곳까지 갔다. 겨울이지만 동해는 날이 너무 따스해서 놀랬다.
같은 칸에 탄 승객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어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소심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괜히 아빠에게 신경질만 냈다.
열차는 루지 탑승장에서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이곳에 오니 두 개의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도 파랗고 호수도 파랬다. 하늘과 호수 누가 더 파란지 대결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래에서 봤을 때보다 위에서 바라보니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산에 나무와 풀이 자라면 또 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까?!
앉아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풍경을 느껴보았다.
집에서 가져간 카메라 렌즈가 40미리 단레즈라 카메라와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다. 저 산 너머에는 희미하게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솟아 오른 것이 아니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오프로드 루지 탑승장이 보였으나 탑승하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오프로드 루지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열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전망대 쪽으로 걸어서 갔다.
전망대 이름이 두미르 전망대인데 처음 보고는 두루미 전망대라고 읽었다. 왜 두루미 전망대일까 궁금했는데, 두루미가 아닌 두미르였다.
전망대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망대로 향했다. 동해는 겨울인데 왜 그렇게 따뜻한지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전망대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아래에서 보다 풍경이 더 좋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수록 풍경이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았다.
이젠 주변산과 내 시선이 거의 일직선이 되었다. 그리고 보라색의 안전펜스는 언밸런스 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 잘 어울렸다.
전망대에서 아래의 호수를 바라보니 호수가 아담하게 보였다.
이곳에 오르니 이곳 채석장의 규모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힘들다고 안 올라왔으면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며 후회를 했을 것이다.
주변 풍경도 너무 좋고 날씨도 따스한 게 봄날 같았다. 12월의 날씨라 믿기지 않았다.
전망대에는 철제 전망대가 있었다. 저게 무슨 모양이야 고민하다. 반대쪽에 가서야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철제 전망대를 지나면 이 산을 케이크처럼 잘라놓은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거친 단면의 돌들이 떨어질까 두렵기도 했지만 뭔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옆에서 보니 두미르전망대는 채석장에서 사용하던 불도저였다.
힘들게 이곳까지 왔으니 전망대에 올라보았다.
전망대 끝에 서니 아찔했다. 눈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대신 구조물 때문에 전망이 많이 가려졌다.
두미른 전망대에서 루지 타는 곳까지 다시 내려왔다. 그거 조금 올랐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열차를 타고 내려가지 않고 걸어서 호수까지 내려갔다.
열차를 타고 가면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걸으면서 느껴지는 풍경이 다르기에 걸어서 내려갔다.
호수가 두개로 나눠지는 지점에서 우린 오른쪽 큰 호수 쪽으로 갔다. 이제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라벤더 정원이 나왔다.
내년 여름엔 이곳이 라벤더로 가득 찰 것 같았다.
녹색의 라벤더 정원을 지나니 옥빛의 호수가 나왔다.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의 물빛보다 구채구의 물빛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옥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푸르게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며 참 좋을 텐데. 아무 준비 없이 왔기에 목이 말랐지만 마른 침만 삼킬 뿐이었다.
라벤더가 활짝 피면 라벤더를 배경으로 찍을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신 호수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대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배고픔을 달랠 뿐이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물빛이 다르게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은 아름다웠다.
호수 옆에는 거인의 휴식이라는 조형물이 있었다. 아랫부분은 콘크리트로 윗부분은 철재로 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그네가 있었다. 거인의 팔에 안기어 그네를 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폭신한 잔디에 앉아 사진도 찍어 보았다.
휑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 휑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미세먼지 가득한 세상에 살다 이토록 푸른 하늘을 보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카메라 렌즈만 잘 가져왔으면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을 것 같은데, 40미리로 찍으려니 답답함이 들기도 했다.
아빠와 나는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파 더 구경하는 것은 포기하고 차로 돌아갔다. 큰 기대를 하고 오지 않았는데 이국적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탔다. 동해바다가 보이는 옥계휴게소에 일부러 들렸다.
화장실에는 한국의 등대 16경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 중 3분의 2는 가본 것 같았다.
휴게소 뒤로 가면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휴게소가 몇 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이다.
잠시 들려서 짙푸른 바다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시간이 없어서 바다를 못 보고 간 여행자라면 이곳에서 잠시 바다를 느끼고 가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커피 한잔 마시며 풍경에 빠져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강릉을 지나 양양까지 가서 서울-양양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어쩌다 보니 강원도를 하루 만에 한 바퀴 돌게 되었다.
서울로 오는 길은 주말이라 역시나 막혔다. 그래도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다 볼 수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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