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니 날이 너무 좋았다. 주말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으니 어디론가 나가고 싶었다. 아빠가 나에게 남미 여행을 갔다 오자고 하셨다. 난 어리둥절해서 왠 남미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토요일 오후 아빠와 함께 고양으로 떠났다.
고양으로 온 김에 잠시 청아공원을 들리기로 했다. 청아공원으로 가는 길 하늘의 구름이 슈퍼마리오 게임에 나오는 하늘과 같아 보였다. 이제 날이 많이 선선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한낮에는 여름의 뜨거움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하늘만은 가을이 성큼 우리 주변에 왔음을 알려주었다.
저번 달에도 청아공원에 왔었다. 왠지 꿈이 뒤숭숭하면 오고 싶어진다. 주말이라 그런지 추모객들이 많았다. 새로운 조형물도 생기고 하늘이 깨끗해서 그런지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청아공원에서는 항상 길게 있지 않는 것 같다. 오래 있으면 마음만 무거워지니 짧게 추모를 한 후 중남미문화원으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마음을 계속해서 설레게 했다.
중남미 문화원은 고양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동네 한 곳 판에 있기 때문에 왜 이런 곳에 이런 문화원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예전에는 이곳이 서울 외곽지역이라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지 않아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주차장의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 주차를 할 수 있었는데, 옆 차와 거의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 가까이 붙여서 주차를 해야 했다.
성인은 6,500원이고 경로는 1,000원 정도 할인을 해주었다.
중남미 문화원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돈키호테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입장권에서는 남미의 화려한 색채가 느껴지는 문양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입장권을 보고 있으니 남미 여행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붉은색 벽돌의 건물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었다. 남미로 여행을 떠나기 좋은 날이었다.
전시관이 두 개 정도 있고 나머지는 남미 느낌이 나는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내 팸플릿을 들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구경을 시작했다.
각각의 건물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문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비행기로 만 하루가 걸리는 남미이지만 이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페루의, 멕시코의, 아르헨티나의 어느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물관 안에는 남미에서 가져온(?) 작품들이 건물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남미를 한 달 동안 여행을 해보았기 때문인지 아빠와 남미 여행을 이야기하며 작품들을 구경했다.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건물 안에서 남미의 토속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남미 여행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히려 남미 여행을 하면서 보지 못했던 예술작품들을 이곳에 와서 더 많이 본 것 같았다. 아빠와 나는 여행을 가면 박물관을 잘 가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곳의 문화재나 예술작품들을 보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 오니 남미 여행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내가 현지에서 보았던 것, 풍경, 그곳의 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리며 왜 이런 작품들이 만들어졌는지 연관 지어 보았다.
박물관같이 딱딱하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 유리 벽 뒤로 보이는 작품들이 아닌 내 앞에 입체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작품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지하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도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하층에는 뭐가 더 있나 궁금해서 아래로 내려가 보았지만 지하 공간은 강당 같은 곳으로 지금은 활용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건물의 가운데 부분에는 천장에서 내려온 빛이 부드럽게 실내를 비추고 있었고 광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물관 밖에서도 남미의 향기가 느껴졌다. 날씨도 완벽했다.
두 번째 건물로 이동을 했다. 전에 갔던 건물을 토속 작품들이 위주였다면 이곳은 남미의 미술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전시관의 가운데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귀여운 작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강렬한 색감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보카가 생각 났다. 강렬한 색감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하공간에는 남미에서 만든 직물 작품들이 있었다. 이런 직물들은 특히 페루를 여행하면서 길거리에서 많이 본 것 같았다.
걷다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무늬들이 보였다. 페루 마추픽추에서 구매한 알파카 털로 만든 스웨터의 무늬와 비슷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날씬해서 겨울에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살이 너무 쪄서 아빠가 내 스웨터를 입고 다니신다. 그때 사면서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알파카 털로 만든 스웨터 가격을 보니 그때 더 사 왔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본 민속 작품들보다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이 나에게 더 끌렸다. 오히려 토속 작품보다는 그림이나 직물 작품을 통해서 남미의 느낌의 더 받을 수 있었다.
건물 안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난 오히려 정원을 걷는 것이 더 좋았다. 박물관 특유의 냄새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 밖이 더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맑은 하늘 아래 햇살을 받고 있으니 잠시나마 이곳이 남미가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곳에서만큼은 한국이 아닌 남미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정원에는 남미 토속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남미의 문화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끔은 원색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지만, 남미 문화를 이해한다면 이해가 되는 작품들이었다.
화장실 앞에 알파카인지 라마인지, 항상 헷갈리는 조형물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항상 알파카와 라마가 헷갈린다. 마추픽추에서 본 동물이 알파카인지 라마인지 아직도 아리송하다.
중남미 문화원이다 보니 멕시코부터 아르헨티나까지의 모든 문화를 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남미의 이미지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남미 하면 원색의 강렬함이 아닐까! 빨간색 문을 통과하면 정원이 넓게 펼쳐졌다.
앞에서 본 모습보다 뒤돌아 바라본 문의 모습이 훨씬 더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정원 한곳에 작은 교회당도 있었다. 실제로 미사를 드리는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마음이 저절로 경건해졌다.
차분한 분위기의 성당은 크지는 않지만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오랜만에 성당에 가본 것 같다.
성당을 나와 다시 정원을 걸었다. 남미 원주민들이 만들었을 것 같은 조각상이 보였다. 사람들이 정력에 관심이 많았는지 인체비례를 고려하지 않은 조각상의 그것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정원 안쪽에는 마야인지 잉카인지, 아무튼 남미에서 보았을 법한 벽화(?)가 있었다. 거대한 벽화 앞에 서 있으니 멕시코 칸쿤에서 보았던 멕시코 피라미드가 생각났다.
주술적인 느낌이 나는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정원 한 곳에는 작은 카페도 있었다.
카페에서는 멕시코 음식을 팔고 있었다. 퀘사디아를 먹을까 아람 브레를 먹을까 고민을 하다 아람 브레를 주문해 보았다.
실내에서도 먹을 수 있었지만 날이 너무 좋아서 밖에서 아람 브레와 커피를 먹었다. 눈을 통해 남미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맛을 통해 남미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야외이다 보니 모기가 너무 많아서 나중에 카페를 떠날 땐 다리를 계속 긁적거렸다.
큰 기대를 하고 온 곳은 아니었지만, 이곳을 걷고 있는 시간만큼은 남미 여행을 추억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특히 가장 좋았던 것은 마지막에 먹었던 커피와 멕시코 음식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항상 추억 속에 묻어 두어야 했던 추억들을 잠시나마 꺼내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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