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숙소 침대에 잠시 누웠다 나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시간 정도 잠이 들어 버렸다. 잠깐의 낮잠이지만 새벽부터 시작된 여행의 피곤함을 어느 정도 없애 주었다.
아빠는 오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옷을 갈아입고 나오셨다. 분명히 인터넷으로 봤을 땐 엄청 이쁜 옷처럼 보였는데, 막상 입으니 애벌레 무늬와 비슷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벚꽃이 파스텔톤으로 흐드러지게 핀 곳에 원색의 옷을 입으니 인물이 두드러지게 나왔다. 숙소를 나와 보문관광단지 쪽으로 걸어가는데 이곳은 그냥 벚꽃세상이였다. 걷다 뒤돌아 보았을 때 벚꽃사이로 보이는 황룡원의 풍경이 일품이였다.
사진에서만 보던 이 벚꽃길을 걷고 있다니, 꿈같이 느껴졌다. 벚꽃을 보러 여의도도 못가고 진해도 못가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 경주로 몰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충분히 경주의 벚꽃은 아름다웠다. 강한 바람이 한번씩 불 때 마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여행자의 마음을 꽃비가 두둥실 설레게 했다.
초대형 천마도가 보여서 천마도가 있는 건물 앞으로 가보았다. 경주화백컨벤션센터로 현대적인 느낌이 경주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리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 저 앞에 보이는 천마도가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컨벤션센터 앞에 목련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단조로운듯 하면서 단아한 꽃이 너무 좋았다. 몇몇 성질급한 꽃들은 벌써 땅바닥에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화백컨벤션 센터라고 화배회의 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해 놓았는데, 난 솔직히 이런 조형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런 조형물을 세워야 할까? 너무 쌩뚱맞은 위치에 이렇게 놓여져 있는게 누구의 생각일지 궁금했다.
컨벤션센터 앞 횡단보도를 지나 스타벅스 있는 곳으로 갔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할까 잠시 고민했다가 들어가려고 줄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바로 포기했다.
스타벅스 앞 넓은 주차장은 관광객의 차로 빈자리가 없어 보였다.
주차장을 지나니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 나왔다. 직선으로 뻗은 길가에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벚꽃사진을 찍으며 걸어가기 좋았다.
경주월드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소리지르는 것에 따라 나도 그들과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주의 곳곳에 사람들이 그래도 많이 분산되어서 그런지 의외로 사람들이 없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사람들은 더 좋은 곳 어딘가 있지 않을까? 나는 이것도 이쁜 것 같은데, 다른 곳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경주에 몇 번을 온 것 같은데 이렇게 화사한 경주의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였다. 여름에 왔을 땐 푸른느낌에 쨍한 선명한 느낌이 좋았고, 겨울은 황량한 듯한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봄에 오니 뭔가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가을에 온적이 없는 것 같다. 나중엔 가을에 이곳은 어떤 느낌일지 와봐야겠다.
서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이렇게 여유롭게 꽃구경을 한지가 언제인지. 예전 벚꽃여행은 벚꽃구경이라기 보다는 사람구경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사람없는 벚꽃여행은 오랜만인 것 같다.
벚꽃길 끝에서 왼쪽으로는 경주월드 방면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있고, 오르쪽은 보문관광단지 방면으로 가는 길이였다. 우리는 왼쪽으로 난 징검다리를 건너서 경주월드를 끼고 보문호를 한바퀴 돌 생각이였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물이 깊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흐르는 강물이라 그런지 약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징검다리가 길어서 강 한가운데 왔을 땐 물이 덮쳐오는 상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그러나 징검다리 가운데로 가면 황룡원과 벚꽃 그리고 불국사가 있는 산까지 한눈에 들어 왔다.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로 와서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벚꽃길이 쭉 이어져 있는 것이 또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날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사진도 쨍하게 이쁘게 나올 것 같은데, 하늘에 밀가루를 뿌려 놓았는지 하루종일 뿌연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이제부터 계속 걸으며 이야기하고 또 힘들면 잠쉬 쉬었다가 또 걸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쪽보다는 보문관광단지쪽이 훨씬 더 벚꽃이 많이 펴서 더 아름다웠다.
이곳도 어떤 나무는 벚꽃을 활짝피우고 있었지만 약간 머리숱 없는 사람 머리 같아 보여서 방금 전 보았던 벚꽃 터널이 다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날이 후텁지근해서 덥게 느껴졌다. 또 옷을 벗으면 추울 것 같기도 하고 몸에서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중부지방 날씨에 익숙한 나는 그냥 감기 걸리는 것보다는 옷 입고 있는게 나을 것 같아서 땀을 흘려가며 그냥 걸었다.
화려하게 혼자 피어있는 꽃은 자신을 지나쳐 가지 말란 듯이 혼자서 샛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벚꽃이 핀 곳을 걷고 있으면 우중충한 날씨에 뿌옇게 되어 있던 내마음도 다시 분홍빛으로 화사하게 빛났다.
걷는 길 중간중간 화장실이 있기는 한데, 은근 뜸하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차도인데 다행히 호수주변을 걷고 있으면 차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아서 산책삼아 걷기너무 좋았다. 그러나 숙소에서 보문호의 중간지점인 보문 콜로세움까지는 대략 4키로미터 정도였다. 걸어서 갔기에 다시 걸었던 만큼 걸어야 하기에 괜히 걸어 왔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을 쓸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우산을 쓰지 않고 걸었다. 아빠는 비라면 치를 떠시는 분이라서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니 바로 개나리같이 노란 우산을 펼치셨다.
보문호의 끝자락에 있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 밑으로는 흘러넘친 보문호의 물들이 흐르고 있었다.
이 강을 쭉 따라가면 월정교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유리온실 같은 곳이 보였는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했다. 유리로 만든 건물이 멀리서 봐도 온실 같아 보였다. 한번 가볼까 아빠에게 여쭤 보았지만 너무 많이 걷는 것 같다고 커피숍 같은 곳에서 쉬자고 하셨다.
다리를 건너니 보문 콜로세움이 보였다.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내가 보는 각도가 너무 길가에서 바라봐서 그런가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모습보다는 극적인 감동이 덜했다.
여기까지 걸어서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기에 콜로세움 근처로 갔다. 나는 이곳이 숙소나 커피숖, 레스토랑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건물 안에 다양한 상가들이 입점해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지만 마른 자리를 찾아 잠시 앉았다 갔다. 나는 좋고 싫고의 느낌이 아닌 나도 이걸 보았다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여기 오기 전 너무 기대감이 컸던 것일까? 막상 보문 콜로세움을 보니 봤다 이상의 느낌 들지 않았다.
남들이 많이 사진찍는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 느낌이 덜한 것 인지, 다른 사람이 올린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리 옆에서 몇몇 커플은 점프샷도 찍고 다양한 포즈를 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감성이 메마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문 콜로세움 옆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난 오히려 스타벅스 건물의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원래는 스벅에서 테이크 아웃해서 밖에서 마시고 싶었으나, 아빠의 표정이 너무 좋아보이지 않아서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스벅에서 잠시 쉬러 들어갔다.
3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없어서 일단 마음이 놓였다. 자가격리 이후 어디에 가고는 싶지만 사람들 있는 곳에서 마스크를 잠시라도 벗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특히 QR코드 등 개인정보를 남기게 되면 또 재수없으면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말을 들을까봐 밥먹기도 무섭고 차 한잔 마시기도 무서웠다.
아빠는 계속해서 어디서 칼국수 한그릇이라도 먹고 가면 안되냐고 나에게 물어 보았다. 나는 솔직히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는게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아빠가 먹고 가자고 하면 먹고 갈 생각이였다. 아빠도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서는 더 이상 밥먹고 가자는 말을 하지 않으셨으나, 나중에 보문관광단지를 걸을 때쯤 짜증이 폭발하셨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는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테라스 안으로 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앞에는 호수가 보이고 조금 고개를 돌리면 보문 콜로세움이 보였다.
약간 땅콩주택같이 생긴 스타벅스는 건물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이제 또 4키로를 걸어가야 하기에 약간 한숨이 나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곳곳에 조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조명이 들어온 콜로세움은 조명이 없을 때보다 훨씬 더 멋지게 보였다. 역시 사람이나 건물이나 조명발이 중요한가 보다. 해가 지기 전에 찍은 사진들은 너무 밋밋해 보였는데, 조명을 받은 건물은 훨씬 더 입체적이고 로맨스 가득해 보였다.
조명빛으로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카페 앞을 지나갔다. 보문호 바로 옆에 있어서 보문호를 바라보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것 같았다. 꽤 유명한 곳인가 보다. 안에 사람이 많이 보였다.
강가에도 어둠이 찾아 오니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이때부터 사진 찍기 귀찮다고 그냥 가셨다. 나는 뒤에서 쫑쫑쫑 쫒아가며 열심히 사진을 계속 찍었다.
조명에 의해 분홍빛의 벚꽃은 자주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벚꽃 본연의 흰색인듯 분홍색인듯한 색이 좋은데, 조명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으시시한 분위기를 자아 냈다.
이쪽이 올 때 걷던 길보다 벚꽃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쉴 공간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색이 바뀌는 으시시한 분위기의 벚꽃길을 찍고 싶은데 아빠는 짜증이 나셨는지 계속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다.
벚꽃의 느낌이 반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명이 만들어 내는 묘한 분위기는 끌렸다.
그러나 파란색 조명은 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너무 차갑게 보이는 것이 다른 색을 사용했으면 어떠했을까?
역시 벚꽃을 보기 좋은 조명은 은은한 강렬하지 않은 조명빛이 아닐까? 조금씩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지 않으면 카메라와 옷이 젖을 수 있을 만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렌즈에도 빗방울이 떨어져서 사진을 찍기 위해 매번 렌즈를 닦아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말없이 앞으로 걷기만 하셨다. 내가 겨우 이거 찍고 가자고 해야 한장 찍고 그냥 또 앞으로 가버리셨다.
빗방울이 굵어질 수록 내 마음도 착찹했다. 대강 왜 화난지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번 여행올 때 아빠한테 우리 어디 가서 밥먹지 말고 최대한 사람들이랑 거리두고 다니자고 했었다. 아빠의 마음을 이해를 하면서도 또 자가격리를 할까봐 무서웠다. 솔직히 자가격리가 무서운 것이 아닌 자가격리 후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웠다. 자가격리를 잘했냐고 괜찮았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 비난을 먼저하기에 비난을 다시 듣는 것이 무서워졌다.
비도오고 마음도 편하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도 심란한 마음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비가 더욱더 많이 오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젖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왠지 지금의 내 모습과 내 마음 상태가 너무 처량해 보였다. 즐거워야할 여행이 한순간에 시궁창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뭔가 내리는 비처럼 기분도 다운이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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