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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봄이 왔다. 코로나가 생긴 이후 세 번째 맞이하는 봄이다. 이번 봄을 그냥 보내기 싫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일본으로 벚꽃을 보러 갔었다. 이제는 국내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것 같다.

 

지나가는 봄이 아쉬워 1박2일로 봄나들이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남부 지방에는 벌써 벚꽃이 활짝 폈다고 하기에 우리는 토요일 새벽 전라도로 향했다.

 

새벽 2~3시쯤 집에서 떠난 것 같다. 봄나들이 여행객이 많을 것 같아서 남들이 자는 시간에 출발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새벽에 출발했다. 이렇게 일찍 여행을 시작하면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이번 여행은 남도 벚꽃 여행으로 구례를 거쳐 하동 벚꽃길을 지나 창원으로 이동해서 벚꽃을 보는 것이다. 구례에 도착해서 살짝 갈등이 되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산수유마을을 아주 살짝 본 후 하동으로 이동하고 싶어졌다.

 

일교차가 심한 내륙이라 봄 안개가 살짝 끼어서 몽환적이었다.

 
 
 

산수유마을에 도착했다. 예년에는 산수유가 만개한 시기에 와서 주차할 곳이 없어서 길가에 주차를 했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온 것 때문인지 아니면 꽃의 절정이 지나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관광객이 없기에 마을은 조용했다. 우리의 방문이 주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행동하나 대화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일주일에서 이 주일 정도, 산수유꽃의 절정이 지난 때에 이곳을 방문했지만 아직은 나무마다 노란 산수유 꽃이 매달려 있었다.

 
 
 

노란 꽃이 하늘에서 봄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아침 햇살을 받은 꽃은 아름다웠다.

 
 
 

개나리의 노란색과는 또 다른 느낌의 노란색 꽃. 하늘에서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봄이지만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장시간 운전을 하고 와서 졸리고 몸이 무겁게 느껴졌으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상쾌한 공기가 무거운 몸을 조금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싱그러운 공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높지 않은 담장엔 봄꽃이 활짝 피었다. 남도는 벌써 봄꽃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개울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며 마을 앞을 흘렀다. 징검다리를 보니 아빠는 동심으로 돌아가신 것 같았다.

 

관광지에서는 항상 사람에 치이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하늘도 보이고 물에 비친 산도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차가운 물에 손도 담가 보았다. 낮에는 초여름처럼 더웠지만 아침에 모든 것이 차가웠다. 찬물에 손을 담그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맑은 시내는 아름다운 봄날을 머금고 있었다. 물속에 물감을 풀어 놓았나 보다. 자연이 만든 또 다른 자연의 작품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 같았다.

 
 
 
 
 

개울을 건너 산수유가 휘늘어진 길을 걸었다. 벚꽃길과는 다른 노란 산수유 꽃길.

 
 

절정을 지났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할뻔했다. 산수유마을을 들린 이유 중 하나는 하동 벚꽃길을 가기에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잠시 들렸는데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많이 아쉬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수유 꽃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렀다.

 

산수유나무 뒤로 보이는 산에는 안개가 걸려 있었다.

 
 
 

산 너머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니 노란빛의 꽃은 개나리꽃과 같이 진한 노란색을 띠었다.

 

햇살에 비친 꽃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멀리서 주므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산책길이 노란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느 누가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아름답게 찍히는 풍경이었다.

 
 
 
 

아침의 몽환적인 느낌. 봄날 아침의 차가움과 꽃이 만발한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었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새롭고 신선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감정이었다. 봄날, 사계절 중 가장 짧은 시기이기에 이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몇 분, 몇 시간을 보기 위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하기에 매 순간이 소중했다.

 
 

그리고 해가 산 위로 조금씩 떠오를 때마다 우리가 보는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샛노란 색으로 바뀌어 갔다. 빛이 만들어낸 예술이었다.

 
 
 

희미한 노란색이 점점 짙은 노란색으로. 잠시 스쳐 지나갔다면 색이 변화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았을까.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몇몇 관광객도 볼 수 있었다.

 
 
 

이제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아서 가던 길을 돌아갔다.

 
 
 

널따란 바위에 앉아서 사진도 찍었다.

 
 
 

바위 위에 앉으니 바위가 아직은 차가웠다.

 
 
 

아빠는 널따란 바위에 누워 사진도 찍어 보았다. 사람이 없다 보니 이런 여유로운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한 템포 늦게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엔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짝 늦게 이곳에 방문해서 좋은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붉은 벽돌 앞의 산수유 꽃은 회화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마을 길을 걸어서 차로 돌아가는 길. 집집마다 티브이 소리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좋은 소리였다. 어릴 적 시골에 갔을 때 들을 수 있었던 정겨운 소리였다.

 
 
 

낮은 담장 위로 핀 붉은 꽃.

 

담장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이젠 사진을 그만 찍고 싶었는데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사진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수유 꽃을 보며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풀리면 또다시 해외로 나갈 수 있겠지만 2022년 봄날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마을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우리가 한 시간 전 걸어서 들어왔던 그 길로 다시 돌아왔다.

 
 
 

차를 주차한 곳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도로에는 군내버스가 다니고 조금씩 관광객이 산수유 마을로 오고 있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는 아침 햇살을 받아서 조금씩 따스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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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에는 강원도 태백을 살면서 가장 많이 간 달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태백 집 공사가 시작된 후로 매주 태백에 갔다. 새벽에 일어나 출발을 했다. 겨울이라 아직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태백으로 향했다.

 
 

원주쯤 왔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저 앞에 놓여 있는 치악산을 몇 번을 넘었을까. 처음 태백에 갈 때는 이 길이 너무 어색했다. 그러나 이젠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치악휴게소에서 한번 쉰 후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달렸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 다시 고개를 오르는 고속도로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끌렸다.

 

서울에서 태백 가는 길의 절반은 국도를 타고 간다. 제천 IC를 나와 영월로 가는 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 나왔다. 급하게 내려갔다, 다시 오르는 길로 이 길에 접어들면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중앙선에서 분기된 태백선은 단선으로 동해까지 갔다. 지금이야 기차를 타면 서울에서 KTX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청량리를 출발해 원주, 제천을 거쳐 태백, 동해, 정동진을 지나 강릉에 도착했다. 탑승시간만 장장 6시간에 달했다. 예전엔 기차 편 수가 많았던 태백선은 지금은 하루에 4-5대 밖에 서울로 오는 기차밖에 남지 않았다. 더욱더 태백은 오지가 되어 버렸다.

 
 

이제 길은 정동쪽을 향해 뻗어 있었다. 강한 햇살에 눈이 아팠다.

 

12월이지만 이상하게 정선이며 태백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집을 수리하면서 은근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겨울 태백의 눈이었는데, 이번 겨울엔 눈이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1100미터 지점을 지나 터널을 나오면 태백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가기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추전역에 잠시 들렸다. 응달진 곳에는 눈이 내렸다 녹지 않아서 빙판의 오르막이었다.

 

승객용 기차역이 아니다 보니 기차역은 폐쇄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 올라와서 탈 손님도 없겠지만. 코로나 전에는 환상선 눈꽃열차 같은 관광열차를 타고 잠깐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역이었지만, 지금은 어쩌다 온 관광객이 찾는 그런 역이었다. 난 국민학교를 나왔으니, 국민학교일 때 학원 선생님의 고향이 동해라 동해 가는 기차를 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도 지나고, 기차가 뒤로 가는 경험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중앙선과 태백선, 영동선은 경부, 호남선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철도시설들을 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치악산을 지날 땐 루프식 철도를,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이고, 태백을 지나 통리 쪽으로 갈 때는 스위치백 철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요즘은 토목공사 기술이 좋아져 스위치백 철도는 사라지고 그 구간은 똬리굴 모양인 루프식 철도로 바뀌었다.

 
 

추전역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역이 아니지 않을까. 855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으로. 이곳까지 기차가 올라오기 위해선 얼마나 힘들까.

 

화장실을 가고 싶어 화장실로 향했으나 겨울철에는 동파 때문에 문을 잠가 두었다.

 

날이 좋으면 나무 아래 앉아 바람을 쐬며 가면 참 좋을 텐데. 이곳의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뒤로 보이는 곳이 아마 태백 바람의 언덕일 건 같았다. 가을에 저곳에서 보았던 노을은 아직도 살아 숨 쉬는데 벌써 몇 개월이 지나버렸다.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추전역을 지키고 있었다.

 

탄을 싩고다니던 노란 기차는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이곳이 석탄 산지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태백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아직도 탄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이곳이 얼마나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처음 태백 하면 탄광촌에 왜 가라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나에게 태백은 정동진 가는 길 새벽에 본 주황색 불빛 가득한 죽은 도시였다. 이곳에 자주 오다 보니 이제는 죽은 도시보다는 힐링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 큰길로 나갔다. 경사도 급한데 내리막길이니 자동적으로 온몸에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리모델링 중인 집에 왔다. 한 주 한 주 집의 모습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빠와 나의 큰 낙이었다. 귀신 나올 건 같은 집이 이렇게 변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창문 넘어 보이는 풍경은 그림 그 자체였다. 창문을 열면 주변에 아파트만 보이는 곳에 살다 보니 이곳에서는 창문을 통해 본 풍경만으로도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집 구경을 잠시하고 다시 서울로 가기에는 너무 아쉽기에 잠시 시간 보낼 곳을 찾아보았다.

 
 

최근 새로 개장한 곳이 있어서 동해로 향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나왔던 곳이라는 것이 끌렸다. 태백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 이곳은 석회석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는 길에 시멘트 공장을 볼 수 있었고, 무릉별유천지 이곳에도 채석장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차를 주차한 후 매표소로 걸어갔다. 주차요금이 적혀 있었으나 우리가 갔을 때까지는 주차료를 받지 않았었다.

 
 

예전에 채석장이 있던 곳으로 양옆에 큰 호수가 있었다.

 
 

채석 공장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만 인테리어를 한 것 같았다.

 
 

거친 외관과는 달리 꽤 감각적인 내부는 과거와 현대를 잇는 것 같았다.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 매표소로 갔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우리는 이곳에 우연히 왔기에 기본 입장권만 구매했는데, 다른 즐길 거리도 있기에 사전에 미리 생각을 하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채석장에서 사용하던 컴퓨터 같았는데 고대 유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직원에게 입장료를 보여준 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한쪽엔 채석장에서 사용된 차량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저 차들이 트랜스포머처럼 왠지 변신할 것 같아 보였다.

 

걷는 게 좋은 사람은 호수 주변을 걸어도 좋고, 우리처럼 코끼리열차를 타고 위에 올라가서 전경을 구경한 후 걸어서 내려오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무릉별유천지 열차를 타고 루지 타는 곳까지 갔다. 겨울이지만 동해는 날이 너무 따스해서 놀랬다.

 

같은 칸에 탄 승객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어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소심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괜히 아빠에게 신경질만 냈다.

 
 

열차는 루지 탑승장에서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이곳에 오니 두 개의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도 파랗고 호수도 파랬다. 하늘과 호수 누가 더 파란지 대결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래에서 봤을 때보다 위에서 바라보니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산에 나무와 풀이 자라면 또 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까?!

 

앉아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풍경을 느껴보았다.

 

집에서 가져간 카메라 렌즈가 40미리 단레즈라 카메라와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다. 저 산 너머에는 희미하게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솟아 오른 것이 아니가라는 착각이 들었다.

 
 
 

오프로드 루지 탑승장이 보였으나 탑승하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오프로드 루지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열차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전망대 쪽으로 걸어서 갔다.

 

전망대 이름이 두미르 전망대인데 처음 보고는 두루미 전망대라고 읽었다. 왜 두루미 전망대일까 궁금했는데, 두루미가 아닌 두미르였다.

 

전망대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망대로 향했다. 동해는 겨울인데 왜 그렇게 따뜻한지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전망대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아래에서 보다 풍경이 더 좋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수록 풍경이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았다.

 

이젠 주변산과 내 시선이 거의 일직선이 되었다. 그리고 보라색의 안전펜스는 언밸런스 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 잘 어울렸다.

 

전망대에서 아래의 호수를 바라보니 호수가 아담하게 보였다.

 

이곳에 오르니 이곳 채석장의 규모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힘들다고 안 올라왔으면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며 후회를 했을 것이다.

 
 

주변 풍경도 너무 좋고 날씨도 따스한 게 봄날 같았다. 12월의 날씨라 믿기지 않았다.

 

전망대에는 철제 전망대가 있었다. 저게 무슨 모양이야 고민하다. 반대쪽에 가서야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철제 전망대를 지나면 이 산을 케이크처럼 잘라놓은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거친 단면의 돌들이 떨어질까 두렵기도 했지만 뭔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옆에서 보니 두미르전망대는 채석장에서 사용하던 불도저였다.

 

힘들게 이곳까지 왔으니 전망대에 올라보았다.

 
 

전망대 끝에 서니 아찔했다. 눈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대신 구조물 때문에 전망이 많이 가려졌다.

 
 
 

두미른 전망대에서 루지 타는 곳까지 다시 내려왔다. 그거 조금 올랐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열차를 타고 내려가지 않고 걸어서 호수까지 내려갔다.

 
 

열차를 타고 가면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걸으면서 느껴지는 풍경이 다르기에 걸어서 내려갔다.

 

호수가 두개로 나눠지는 지점에서 우린 오른쪽 큰 호수 쪽으로 갔다. 이제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라벤더 정원이 나왔다.

 
 

내년 여름엔 이곳이 라벤더로 가득 찰 것 같았다.

 

녹색의 라벤더 정원을 지나니 옥빛의 호수가 나왔다.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의 물빛보다 구채구의 물빛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옥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푸르게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며 참 좋을 텐데. 아무 준비 없이 왔기에 목이 말랐지만 마른 침만 삼킬 뿐이었다.

 
 

라벤더가 활짝 피면 라벤더를 배경으로 찍을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신 호수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대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배고픔을 달랠 뿐이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물빛이 다르게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은 아름다웠다.

 

호수 옆에는 거인의 휴식이라는 조형물이 있었다. 아랫부분은 콘크리트로 윗부분은 철재로 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그네가 있었다. 거인의 팔에 안기어 그네를 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폭신한 잔디에 앉아 사진도 찍어 보았다.

 
 

휑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 휑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미세먼지 가득한 세상에 살다 이토록 푸른 하늘을 보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카메라 렌즈만 잘 가져왔으면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을 것 같은데, 40미리로 찍으려니 답답함이 들기도 했다.

 

아빠와 나는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파 더 구경하는 것은 포기하고 차로 돌아갔다. 큰 기대를 하고 오지 않았는데 이국적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탔다. 동해바다가 보이는 옥계휴게소에 일부러 들렸다.

 

화장실에는 한국의 등대 16경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 중 3분의 2는 가본 것 같았다.

 

휴게소 뒤로 가면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휴게소가 몇 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이다.

 
 

잠시 들려서 짙푸른 바다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시간이 없어서 바다를 못 보고 간 여행자라면 이곳에서 잠시 바다를 느끼고 가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커피 한잔 마시며 풍경에 빠져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강릉을 지나 양양까지 가서 서울-양양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어쩌다 보니 강원도를 하루 만에 한 바퀴 돌게 되었다.

 
 

서울로 오는 길은 주말이라 역시나 막혔다. 그래도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다 볼 수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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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매주 태백에 가는 것 같다. 또 새벽같이 일어나 차가 막히기 전 고속도로를 달렸다. 태백의 오래된 사택을 세를 주고 있었는데 사시던 분이 돌아가셔서 우리가 수리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얼떨결에 집을 리모델링을 하는데 집 공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서 매주 토요일 4시간이나 걸려 태백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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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차량이 많아지기 전에 수도권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동쪽으로 향했다.

 
 

이날은 안개가 자욱했다. 한두번 다니는 길이 아니지만 매번 갈 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다.

 

중앙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차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치악산을 지나 제천으로 가는 길 이곳은 이제 완연히 겨울이었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지는 길. 이 길을 달리고 있으면 가슴 설레게 좋았다. 이 길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다.

 
 

이젠 고속도로를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100킬로미터를 더 가야했다. 제천에서 태백까지는 고속도로가 없기에 산골짜기로 난 국도를 따라 태백으로 갔다.

 

국도를 따라가면 해를 바라보고 가야하기 때문에 항상 눈을 찡그리고 가야 했는데 이날은 날이 좋지 않아서 눈이 부시지 않았다.

정선에서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1100미터 고지를 지나면 바로 태백이 나왔다.

 
 

리모델링 중인 집을 보았다. 이 집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4시간을 달려왔다. 전 주보다 어느 정도 공사가 많이 진행된 것 같았다. 이제 예전 집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다음 주에는 또 무엇이 바뀔지 궁금했다.

 
 

잠깐 집을 구경한 후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 싫어서 집근처에 있는 오로라 파크로 향했다. 집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인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수도권에 살면서 63 빌딩을 매번 보기는 했지만 안 가본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차를 주차한 후 오로라 파크로 걸어갔다,

 

오로라 파크는 예전 통리역에 있었다. 통리역이 폐역이 되면서 철도 관련 관광지로 탈바꿈 하였다.

 
 

오로라 파크에서 세계 유명역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예전에 운행했 던 역이기에 통리역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철로가 나왔다. 기차를 타고 여행 가는 기분이 잠시 들었다. 지금은 기차가 운행되지 않는 역이라 뭔가 쓸쓸함도 느껴졌다.

 

기존 선로를 이용해 방문객이 체험해 볼 수 있는 핸드카가 있었다.

 
 

핸들을 열심히 위아래로 누르면 기차가 앞으로 움직였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선로에는 기관차가 있었다. 선로 위에 서서 기관차와 같이 사진도 찍었다.

 

다른 선로에는 레일바이크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이 기관차에 올라가 사진을 찍기에 우리도 똑같이 사진을 찍어 보았다. 일반적인 기관차 도색과 다른 산뜻한 하늘색의 기관차였다.

 

실제로 운행을 하는 기관차인지 궁금했다.

 
 

겨울이긴 했지만 관광객이 너무 없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까지는 그래도 차를 타고 올만한 거리인데 태백은 사람들이 멀다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어딜 가도 생각보다 항상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관광지가 여유롭기도 했다. 태백이 탄광의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기에 태백에 간다고 하면 거기 가면 뭐 볼 거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왜 이름이 오로라 파크인지 궁금했다. 내 생각엔 세계 기차여행이 더 나을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곳의 기본 테마가 철도인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들어간 역은 스위스에 있는 클라이네 샤이데크역이었다.

 

들어가면 스위스의 알프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역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상관에서 본 스위스 철도였다. 실제 스위스 산악열차를 타고 알프스에 오르는 것 같았다. 너무 리얼하긴 했지만 영상을 보고 나니 살짝 멀미가 왔다. 아빠랑 나는 영상을 본 후 밖에 나오니 어지러워서 한동안 고생했다. 그래도 이곳의 역 중에 가장 인상적인 역이었다.

 
 

영상을 한번 본 후 또 한번 봤다. 스위스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코로나만 아니면 이번 겨울엔 또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라도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https://youtu.be/F22S259jm-4

 
 

두 번째로 간 곳은 미국에 있는 파이크스 피크역이었다.

 

미국 서부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끊어진 철길 그림 위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미국에서 기차를 타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은 리얼함이 떨어지긴 했지만 서부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 괜찮은 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라 파크라 역과 역사이를 이동할 때 별과 관련된 정보들도 얻을 수 있었다. 내 별자리인 사자자리만 사진 찍어 보았다.

 
 

세 번째로 간 곳은 일본의 노베야마역이었다.

 

별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는 역이라고 한다. 별자리, 별에 대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다.

 

가끔 오로라 파크 옆을 지날 때 보이던 높은 전망대를 볼 수 있었다. 드디어 그 높은 전망대에 오를 수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 전망대 옆 건물에 들어가 보았다. 카페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연탄 모양의 빵을 팔고 있었다. 사 먹어 보고 싶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다음에 또 오기로 했다.

 
 

카페를 지나면 가상의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체험관이 있었다.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오로라를 직접 보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본 가상의 오로라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면 별자리에 불이 들어왔다. 나중에 태백 바람의 언덕에 올라 은하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갔다.

 

전망대에 오르니 동쪽으론 삼척이 보였다. 그리고 주황색 지붕이 인상적이 추추파크도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서쪽으론 통리 시내가 보였다.

 

오전엔 날이 좋지 않았는데 오로라 파크를 구경하는 사이 날이 많이 좋아져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네 번째로 간 곳은 중국의 탕구라역이었다.

 

중국의 티베트로 가기 위해서 타야 하는 철도로,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은 기차 안에서 고산병에 시달린다고 한다. 한 번쯤 타보고 싶은 철도이다. 그런데 고산병은 무섭기만 하다.

 
 

기차를 타고 고원지역을 달리는 상상을 해보았다. 코로나가 끝나면 꼭 한번 타보고 싶은 기차이지만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겪은 고산병 때문인지 선뜻 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다 없어지도 한다.

 

마지막역은 호주의 쿠란다 역이었다. 열대의 느낌 가득한 역은 열대우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주 멜버른에서 탔던 퍼핑빌리 기차가 떠올랐다. 이렇게 전 세계 가볼 역이 많은데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인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처음 오로라 파크에 왔을 땐 미세 먼지 때문에 하늘이 뿌했는데 다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미니 처음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오로라 파크에 온 김에 태후 공원까지 가보았다.

 

철길을 따라 태후 공원으로 걸어갔다.

 
 
 

철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 좋았다. 평소엔 걸을 수 없는 곳이기에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걸으니 태후 공원이 나왔다.

 

공원 가운데 송송 커플이 키스하고 있는 동상이 있었다. 지금은 서로 남남이 되었지만 드라마 속에서 아직까지 연인이니.

 
 

뒤에 그리스 풍의 건물이 있었다.

 

뒤에 있는 아파트가 안 나오게 잘 찍으면 나름 그리스에 온 것 같이 보였다.

 
 
 

약간 허접한 세트장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드라마가 방영된 지 한참이 지났기에 찾는 이는 많이 없어 보였다.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 동사무소가 보였다. 태백시의 모토는 산소도시인가 보다. 확실히 수도권보다는 공기가 좋기는 한 것 같다. 힐링 명소로 태백이 좀 유명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백을 출발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제천쯤 왔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이 노랬다. 확실히 공기는 태백이 깨끗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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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라 하루가 금세 지나가 버렸다. 이럴 땐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하는데 오히려 이렇게 놀러 나오면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아침은 대충 호텔에서 전날 사 온 간단한 음식으로 해결한 후 체크아웃을 했다. 전주 라한호텔의 좋은 점은 체크아웃을 하고도 오후 3시까지 호텔 주차장에 주차를 해도 주차비가 청구되지 않는 점이었다.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사람들이 한옥마을로 모여들었다. 길가엔 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대로 옆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샛노란 길거리를 보고 있으니 왜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는지 알 수 있었다.

 

중부지방은 날이 이제는 많이 쌀쌀해졌지만 이곳은 따뜻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아침부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데이션 ND 필터를 장착하고 사진을 찍으니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더 빨갛게 나왔다. 이래서 카메라 필터를 사는 것 같았다.

 
 

밤과 다른 낮의 한옥마을은 생기가 넘쳤다. 저녁엔 은은한 조명이 길거리를 밝혀주었지만 낮에는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길거리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두꺼운 외투가 번거롭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코로나만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이 2021년의 지나가는 가을 느끼기 위해 이곳으로 왔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풍으로 유명한 곳은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본 것 같은데 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은 그중 최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 다음 카페 모임 때문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반추하며 경기전으로 향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젊은 연인들끼리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주 어릴 적 유치원 장기자랑 시간에 한복을 입어본 후로 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전통복장이라고 말을 하지만 나부터 한복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짧은 이벤트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복을 입고 추억을 남기는 모습을 보니 우리 때와는 트렌드가 또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전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를 구매했다. 당연히 아빠는 65세 이상이기에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셨다.

 
 

경기전에 들어서니 오래된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역사를 이곳의 세월을 나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저번에 산 펜탁스 미러리스 카메라를 아빠에게 드렸다. 기종이 너무 오래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제법 사진이 잘 나왔다. 사진촬영용 소품으로 옆에 메고 다니니 가을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도 필터를 처음 사용하는 것이라 아직까지는 많이 어색했다. 가끔은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게 편하기는 하지만 사진 찍는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핸드폰 카메라로 십 년 사진을 찍다가 다시 DSLR로 돌아왔다.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구닥다리 같고, 트렌드에 맞는 사진을 찍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찰칵할 때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필름카메라도 집에 있기에 사용하고 싶지만 필름 가격도 너무 비싸졌기에 필름 카메라까지는 손이 가지 않았다.

 
 

이곳에서 결혼 웨딩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이 보였다. 이곳에서 찍은 웨딩사진은 어떻게 나올까? 평생 남는 사진이니 둘 다 이쁘게 나왔으면 했다. 예전에 부산에 사는 친구가 집 뒤에 있는 청사포 철길에서 웨딩사진을 찍은 것을 보았는데 그때 익숙한 청사포 철길이지만 웨딩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특별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성질 급한 단풍들은 벌써 땅으로 떨어져 낙엽이 되어 있었다.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눈으로 보는 재미도 있고 소리로 듣는 재미도 너무 좋았다.

 
 
 

가을 날이라고 하기엔 포근했다. 나는 오히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특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카메라의 셔터 버튼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은 아주 짧은 찰나이기에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에서는 낙엽비가 내렸다. 봄날 벚꽃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낙엽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에 넋을 놓고 있었다.

 
 
 

파란 하늘을 수놓은 노랗고 빨간 나무들은 여행자의 가슴을 더욱더 설레게 만들었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으니 황홀했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이 되지 않았다. 그냥 아름답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이 나에게 슬로 모션처럼 다가왔다.

 
 
 

지붕 위에 떨어진 낙엽들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옥은 참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환경을 압도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감에 따라 느낄 수 있었다.

 

경기전 메인 공간에서 전통음악이 흘러나왔다. 무슨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 같았다. 의복을 갖추지 않아서 어색하기는 했지만, 눈을 감고 들어보면 이 공간과 어울리는 소리였다.

 
 

이 공간은 무엇을 했던 곳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아빠와 나 둘 다 학구적이진 않기에 이곳이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안내판을 읽어 보지는 않았다. 그냥 이 공간의 느낌이 좋았다.

 
 
 

경기전 넘어 전동성당이 보였다. 보수 공사 중이라 전동성당은 철재 구조물로 아름다운 모습을 감추졌다. 다음에 오면 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위안을 삼아 보았지만 고풍스러운 성당을 보고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어디를 가든지 아름다운 사진이 찍혔다. 누가 아무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아름다운 사진을 선사했다.

 
 

한옥의 담장은 담장 너머로 보일 듯 말 듯 한 높이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담이 낮지만 개인의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했다. 관계지향성을 중시 여기는 한국 사회에 맞는 딱 적당한 높이의 담장이였다. 담장에선 위압감보다는 정겨움이 느껴졌다. 현대인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담장일 수 있을 것 같다. 사생활이 중시되는 세상에서는 부담스러운 높이이지만 말이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세상과 담장 안으로 보이는 세상. 공간을 둘로 나누고 있지만 서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매력은 어디까지 일까?! 둘러보는 내내 힘들기는 했지만 수려한 풍광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주말을 맞이해서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이곳만은 경건하고 조용했다. 밖의 북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경기전 안에는 조선왕조의 어진을 모신 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은 쓰윽 하고 스치듯이 지나갔다.

 
 
 
 

두 시간 정도 경기전에 있었던 것 같다. 설렁설렁 보면 30분도 안 걸리는 크기이지만 이곳의 풍경에 흠뻑 빠져 사진을 찍다 보니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경기전에 들어가기 전보다 한옥마을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길거리는 관광객들로 활기를 띠었다.

 

몇 년 전 아빠와 함께 전주 한옥마을에 왔을 때 들렸던 찻집 앞을 지나갔다. 겨울과 가을 느낌의 온도차는 확연히 났다.

 
 

친구들끼리 한복을 맞춰 입은 20대들은 한 명씩 차가 없는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된다면 벽화마을까지 걸어가 보고 싶었으나 급 피로감이 밀려왔다.

 

전망이 좋은 카페가 보였다. 저런 곳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상상을 해보았다.

 

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라한호텔. 한옥마을에서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춘 호텔이 아닐까.

 
 

숙소 앞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세우기 충분히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 입구는 처음인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성당까지는 걸어서 올라가지는 않았다.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 가을의 정점을 전주에서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걷다 보니 배가 너무 고팠다.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기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배가 너무 고프기에 호텔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았다.

 

육회 비빔밥을 주문했다. 육회 비빔밥과 함께 나온 고기는 허기진 배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뱃속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후다닥 밥을 먹고 식당을 나섰다. 뱃속에 음식물이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호텔 뒤편의 길을 따라 점심 먹기 전 보았던 전망 좋은 카페로 갔다.

 

소방대원 분들께서 소방훈련을 하시기에 옆에서 지켜보다 소방대원 분이 한번 해보겠냐고 그래서 대원분들의 도움을 받아 길거리에 물도 한번 쏘아 보았다. 대원분들께서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이곳은 목재 건물들이 많아서 이렇게 주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전망이라는 카페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카페로 올라갔다.

 

대통령께서도 방문하신 카페인가 보다. 계산대 앞에 사진이 놓여 있었다.

 
 

커피 빈 종류도 다양했다. 난 그냥 심플하게 주문하는 것이 좋은데, 아무튼 선택권이 넓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귀찮긴 하지만 좋은 것 같기는 하다.

 
 

커피만 마시기 심심하니 케이크도 하나같이 주문했다. 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옥마을의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왜 남의 자리가 더 탐이 날까? 우리 자리도 풍경이 멋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자리가 더 멋져 보였다.

 
 
 

한옥마을에서 어찌어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오후 3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서울로 올라가기엔 시간이 이르기에 한옥마을에서 나가서 어디로 갈까 생각을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아름다운 곳인 한옥마을이지만 가을의 한옥마을은 최고인 것 같다. 내년 가을을 기약하며 한옥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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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서 전주까지 국도를 이용해서 갔다. 그런데 어?! 어디선가 본듯한 풍경이 나왔다. 네비를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돌려보니 용택쌤댁 근처였다. 네비가 알려준 길을 보니 전주로 가는 고속화 국도를 타기 위해 선생님댁 근처 IC를 이용해야 했다.

 
 

이번엔 쌤댁에 안들리고 가려고 했는데, 내가 또 아빠에게 장화신은 고양이 눈빛을 하며 가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아빠도 가는 길이니 그냥 아주 잠깐만 들렸다 가자고 하셨다.

 
 

진묑아을은 여러번 방문했지만, 몇 년 사이 오늘이 3번째 방문이었다. 오늘은 쌤을 뵐 수 있을까? 어?! 뭔가 집이 바뀐 것 같았다. 예전의 허름한 모습은 사라지고 집을 새로 지으신 것 같았다. 구조는 이전의 것과 같지만 새 집이라 그런지 깔끔했다. 특히 선생님의 서재가 너무 멋졌다. 나도 저런 서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서재에 있는 책의 반의 반도 읽지 않았지만 말이다.

 

가을 꽃들이 담장 사이에 돌틈 사이에 피어 있으니 집이 더욱더 화사하게 느껴졌다.

 
 

기존의 집은 기존 집대로 새로지은 집은 새로 지은 집대로 운치가 넘쳤다.

 

선생님 시골집 뒤쪽에 거주하시는 공간이 따로 계시는.것 같았다. 블로그나 인스타 등에 이곳에 와서 우연히 용택쌤과 만났다는 글과 사진을 보았는데 오늘 나에게 그런 운은 없었다.

 

마당 옆에는 통창문이 인상적인 김용택 선생님의 작은 학교가 있었다. 비오는 날 통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은 어떨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저절로 시가 씌지고 노래가 나올 것 같았다.

 
 
 

산뜻한 마당과 집 그리고 돌담의 꽃들까지 그 옛날의 정취는 사그라들었지만 깔끔한 이 모습도 너무 좋았다.

 
 

우리가 나오면 왠지 선생님께서 어디선가 나오실 것 같아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걸어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 보았다.

 

이곳은 내가 처음왔던 2000년 초반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마을의 큰 나무 두그루도 20년 동안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그루는 선생님께서 심으셨다고 하셨다.

 

20년 전에는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그런 곳이라면 이제는 관광지가 되었다. 한자로는 장산마을이고 원래 우리말로는 진뫼 또는 진메 마을이라고 한다. 장산, 어디서 많이 들어 봤다 생각했더니 부산에도 장산이 있어서 두 곳이 헷갈렸다.

 

선생님 댁 앞은 작은 강이 하나 흐르고 있는데 이름은 섬진강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빠는 한강처럼 넓을 것이라 생각하셨나보다. 강의 크기를 보시곤 실망을 하셨다. 난 크지도 작지도 않는 이곳이 너무 좋았다.

 

여러번 온 곳이지만 처음 온 것 같이 신선했다.

 
 

저 징검다리는 본적이 없는데 새로 놓인 자리일까?

 
 

줌을 땡겨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오! 생각보나 사진이 꽤 잘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유유히 흐르는 물, 그리고 강과 마을. 나에게 고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도시에서 자랐기에 고향이 없는 대부분의 MZ세대에게는 고향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저산을 넘으면 순창이 나왔다. 선생님 댁은 임실이지만 순창에 더 가깝기에 선생님께서도 순창으로 다니셨다고 하신다. 가을이 완연한 섬진강은 처음이었다. 물도 적당히 흐르고 하늘도 파랗고 들과 산은 은은하게 빛났다.

 

강가에 핀 갈대 앞 징검다리를 건너니 정지용의 향수가 떠올랐다.

 
 
 

가끔 한번씩 오고 싶은 곳이지만 서울에서 오려면 큰맘을 먹고 와야기에 최대한 마음 속에 많이 담아두고 가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바라 보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용택쌤을 우연히 만나뵙고 싶다, 십년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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