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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폭포의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사려니 숲길이었다. 사려니인지 사려니인지 매번 헷갈리는 곳이다. 처음 사려니의 숲길은 가보게 된 것은 제주여행을 자주 간다는 지인의 추천 때문에 가보게 되었다. 2010년대 중반에는 제주 여행을 자주 오는 사람만이 아는 비밀 명소 같은 곳이었으나, 지금은 제주에 오면 누구나 오는 관광코스가 되어 버렸다. 

 
 

버스나 차를 타고 제주에서 남원읍 방면으로 갈 때 사려니 숲길(붉은 오름 입구) 앞을 지나게 된다. 숲길 앞 주차장은 항상 차들로 빼곡했다. 연휴라 그런지 사려니 숲길 쪽 주차장 뿐만 아니라 반대쪽 공터(사려니 숲길 주차장은 따로 있지 않고 차도 옆에 넓은 공터 같은 곳이 있어서 차들이 일렬로 주차함)에도 차들이 많이 차 있었다. 운이 좋으면 입구 근처에 주차를 할 수 있고 대부분 늦게 도착하면 입구 먼 곳에 주차를 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무장애 코스가 없었다.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는데, 멍석이 깔린 길을 걷는 맛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멍석이 깔린 길 옆으로 나무 덱을 설치해서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제주도는 어디를 가나 너무 더운 것 같다. 숲속에 오면 시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숲 속도 왜 그렇게 덮고 습한지 모르겠다. 시각적으로는 너무 시원한데 이곳도 정방폭포같이 끈적이고 더웠다. 더구나 너무 빽빽한 나무들 때문일까 바람마저 불지 않았다. 

 

사려니 숲길은 해가 쨍쨍한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방문하기 좋은 것 같다. 비가 부슬부슬 올 때는 제법 운치가 있는 곳이었던 기억이 난다. 원색의 우산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면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무 덱 이 설치되어 전에 비해 훨씬 걷기는 수월했다. 대신 산책한다는 느낌이 조금 사라진 것 같다. 

 

예전의 길은 그대로 두고 새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선호하는 길에 따라 걸으면 좋을 것 같다. 누구나 방문하고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예전의 고즈넉함은 약간 사라진 것 같다. 

 
 
 
 

갈색의 나무 사이에 낀 이끼에서 이곳이 얼마나 습한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느낌은 사뭇 대만 아리산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키가 큰 삼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평일에 온다면 사려니 숲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간 날이 연휴다 보니 사람이 많아서 분주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곳은 꼭 평일에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데크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앉아서 다리도 쉬며 숲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예전과 다르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속도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쉬면서 삼나무 숲을 느껴보았다. 날이 덥기는 했지만 맑은 공기가 내 몸속 가득 차 들어가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걸어가 볼까. 왠지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움이 남기에 습하고 더웠지만 조금 더 걷기로 했다. 

 
 

빼곡하게 심어진 삼나무 숲을 걷고 있으니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잡념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걷고 싶은 길이다. 사람이 없으면 꽤 무서울 것 같은 숲이지만 그래도 사람들 없는 조용한 아침이나 저녁에 걸어보고 싶다. 특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 제격인데 말이다. 

 
 
 

사려니 숲길 초입에서 시작된 숲은 숲속의 큰길을 만나며 끝났다.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조금 더 탐험을 해볼까. 우리는 큰길 맞은편에 있는 미로 숲길로 들어섰다. 

 

미로 숲길이 더 안쪽에 있다 보니 앞서 지났던 숲길보다는 더 한적했다. 

 
 

미로 숲길이 앞서 걸어온 숲길보다는 숲속 심연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숲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더 불지 않아서 더웠다. 습함과 더위만 없어도 좋겠는데 생각보다 숲속이 더 덥고 습했다. 

 

삼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어서 강한 햇살은 피할 수 있지만 끈적임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초여름이나 여름이 끝나는 가을에 오면 좋을 것 같았다. 8월의 제주도는 펄펄 끓는 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명한 관광지가 되다 보니 길도 잘 정비되어 있고 이것저것 조형물과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가 균일한 간격으로 심어졌기에 느껴지는 통일감. 동일한 수직 구도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이 숲속에 있으면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제주에 오기 전에 했던 고민이나 여행 후 맞이할 새로운 고민 등은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순간의 느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무를 솎아낸 것일까. 잘려나간 삼나무 기둥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 놓인 기둥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미로 숲길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갈수록 관광객이 적었다. 

 
 

햇살은 사선에서 조명을 비추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무로 만든 길이 아닌 멍석이 깔린 산책길을 걸어야 했다. 오히려 멍석이 깔린 길이 어색하고 거칠게 느껴졌다. 편안한 길을 조금 걸었다고 멍석을 밟는 것이 불편했다. 

 
 

어디까지 걸어야 할까. 길이 있으니 그냥 걸어 보았다. 어차피 이 숲의 끝과 끝은 거기서 거기니까. 그 끝을 모르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면 되기에 이 길의 끝을 궁금해하면서 길을 걸었다. 

 
 

우리가 걷던 길 옆에는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나무로 만든 길이 있었다. 

 

마스크를 끼니 안경에는 김이 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습하고 덥다. 땀인지 비를 맞은 것인지 구분이 안되게 땀이 흘렀다. 

 

계속 걷다 보니 계속 걸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다시 돌아갈까? 그래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그래도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좋을까. 몸이 조금씩 지치니 초심은 사라지고 마음속의 갈등만이 남았다. 

 
 
 
 

이 순간이 즐겁고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기억들도 다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제주도 어디에 가나 현무암을 쌓아 만든 돌담길. 이 섬에서는 흔한 돌이기에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며칠씩 제주에 있다 보면 저 돌들에 식상해서 쳐다도 안 보게 되는데 제주를 떠나면 가끔 저 돌담길도 그리울 때가 있다. 제주만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그러나 제주에서는 너무 흔한 것이 아닐까. 어떤 돌담에는 다육이가 자라기도 하고, 이곳의 돌담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와 돌이 녹색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색을 입고 있었다.

 
 

휴! 드디어 큰 길로 나왔다. 큰길로 나오니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뜨거운 햇빛까지. 그래도 직선으로 뻗은 길이기에 미로 숲길을 나와 돌아가는 길의 시간은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숲속 세계는 미지의 세상 같았다.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밖에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삼나무가 장벽이 되어 숲과 길의 경계를 만들었다. 

 
 
 

길이 평평하니 걷기는 좋았다. 처음 올 때는 힐링이니 제주 감성이니 뭐 이런 감성적인 말을 했다면 나가는 길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했다. 덥다! 빨리 차로 돌아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다. 

 

덥고 힘들지만 다리는 끊임없이 걷고 있고 내 눈은 사진 찍을 사물을 찾고 손가락은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숲으로 들어올 때는 숲을 즐기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면, 이제는 바쁜 사람처럼 휙휙 주변을 둘러보며 숲을 빠져나갔다. 

 
 

우리가 차를 세워둔 길가 공터에 도착했다. 길 양옆으로는 관광객의 렌터카가 줄줄이 비엔나처럼 줄을 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사려니 숲에 들어가 보니 기분이 산뜻하고 좋았으나 숲이라고 시원하지만은 않았다. 제주 곶자왈에서 느낀 더위를 사려니 숲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제주의 숲은 보기에 시원해 보이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습한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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