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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천역에 내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게 날씨가 습했다. 시원하지만 습한 느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그런 느낌이었다. 

 
 

역부근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기차 탑승 전까지 시간이 있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타고 온 관광열차는 또 한가득 손님을 싣고 분천역을 떠났나 보다. 북적이던 마을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동네의 댕댕이도 야옹이도 낯선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사납게 우리를 바라보진 않았다. 눈빛에서 쟤네는 뭐지라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비는 오는 둥 마는 둥. 그러나 기분 나쁜 비는 아니다. 

 

강가로 내려갔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잔잔한 강물은 아주 잔잔하게 일렁이듯이 보였다. 

 
 

강 건너의 나무도 이쁘고 이 조용함이 너무 좋았다.

 
 
 

강둑을 다시 올라 마을로 들어왔다. 크지 않은 마을. 기차역을 주변으로 생긴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밭은 곱게 갈려져 있었다. 추상미술의 한 장르를 보는 것 같았다. 붉은색의 양철지붕도 오랜만에 메마른 감성을 젓게 만들었다.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누군가에겐 향수를 일으키고 우리 같은 세대에게는 낯설지만 느껴보고 싶은 감성이다. 

 
 
 

마을은 크지 않기에 슬렁슬렁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느덧 다시 분천역에 도착해 있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싶은 카페도 보았다. 담에 오면 꼭 한번 들려야겠다. 그리고 역 앞에 있는 2층 건물도 꽤 인상적이었다. 

 

99세 이상만 기댈 수 있는 난간. 송해 할아버지가 오셔도 기댈 수 없기에. 이 안내판을 만든 사람의 센스가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사계절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었다. 초록 물결 사이에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산타가 조금은 어색했다. 

 

화본역이든 분천역이든 역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너무 좋다. 조용한 역 앞에서 편안하게 사진을 찍어 보았다. 

 

지금은 관광지 같은 느낌이 많이 드는 역이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하루에 기차가 몇 대 정차하지 않지만 여객업무를 보는 직원이 있었다.

 
 

역 내부는 아담한 게 아늑했다. 초여름이라 화목난로는 사용하지 않지만 분위기만큼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플랫폼 쪽으로 가면 스위스 풍의 건물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언제 생긴지 모르겠지만 기차역 옆에 분천 사진관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앉아 쉬면서 계속해서 나오는 영상을 보고 싶은데 너무 더웠다. 그래서 오래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고속도로도 없고 국도만 있는 곳. 그리고 기찻길도 단선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인 것만큼 이곳이 얼마나 오지인지 알 수 있었다. 

 
 

분천 사진관 옆에는 분천 산타우체국이 있었다. 오늘따라 평소에 못 보던 것들이 이상하게 많이 보였다.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런가 보다. 

 
 

우체국 안의 테마도 크리스마스였다. 아직 반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크리스마스를 이곳에서 미리 느껴 보았다. 

 
 

아이들이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 가운도 비치되어 있었다. 

 

큰 곰인형에 파묻혀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계절과 언밸런스한 것 같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반팔을 입고 성탄절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분천역은 눈이 내려야 제맛인 것 같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한 번 더 이곳에 오고 싶었다.

 

산안개가 자욱한 마을의 붉은색 지붕의 집들은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강릉까지 운행되는 동해 산타 열차는 플랫폼에서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백두대간 협곡 열차는 클래식한 맛이 있다면 동해 산타 열차는 산뜻한 느낌에서 젊은 감성이 물씬 느껴졌다. 이 기차를 타고 바다가 보이는 동해안까지 타고 가고 싶지만 우리는 철암역에서 내려야 했다. 

 
 

백두대간 열차는 주변 풍경을 조금 더 다이내믹하고 편하게 볼 수 있게 열차가 편성되고 운행되는 반면 동해 산타 열차는 일반열차와 같은 속도로 운행을 하면서 가족과 친구와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열차의 편의시설이 되어 있었다. 

 
 
 

아기자기한 산타 열차 몇 번 분천역에 놀러 왔다 지나가는 것만 봤는데 이제 드디어 탑승을 해보게 되었다. 

 

앙증맞은 산타와 같이 뽀뽀도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석 구성이 다양한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일반석은 2-2좌석으로 되어 있었다. 창문에는 감성을 쿡쿡 찌르는 다양한 글들이 적혀 있었는데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다면 이 기차는 기차여행을 하는 느낌을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화장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리고 목조 느낌이 나는 실내 분위기에서 아늑함이 느껴졌다. 

 
 

동해라는 곳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는데 태백에 자주 오면서부터 어느덧 가깝다고 느껴졌다. 

 
 

기차는 총 4량으로 짧았다. 그러나 각 객차마다 특징이 다르기에 각 객차의 묘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칸막이가 길게 쳐 있기에 답답함이 있지만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면이 좋은 칸도 있었다. 대신 좌석이 고정형이라 오랫동안 탑승하면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문으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고급스러움이 넘치는 좌석도 있었다. 의자가 고정이라 의자를 뒤로 밀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탁자에 맛있는 간식을 가득 얹어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면 좋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전날 과음으로 인해 말없이 잠에 빠져서 분천역을 출발했다. 

 

V-Train은 천천히 영동선에 있는 간이역을 정차하며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지만 동해 산타 열차는 빠른 속도로 운행되었다. 

 
 

내 좌석 옆 창문에 있는 문구가 은근 거슬렸다. 난 안 이쁜데 계속 뭔가 나한테 비꼬듯 너 예쁘면 다냐고 비꼬듯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앉아도 이런 자리에 앉았는지. 

 

V-Train은 빈 좌석이 없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이 열차는 손님이 손에 꼽힐 만큼 텅텅 비어서 강릉으로 가고 있었다. 

 

철암역에 가까워질 무렵 멀리 구문소가 보였다. 처음 봤을 때도 구문소는 신기했지만 매번 봐도 신기하고 뭔가 홀리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오면 올수록 매력적인 곳이 강원 남부가 아닐까. 그런데 수도권에서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다 보니 쉽게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다양한 관광자원을 누구나 누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접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아무튼 오면 올수록 매력이 많은 곳이 태백인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각각의 매력이 넘치는 열차를 타고 강원 남부와 경상북도 북부를 여행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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