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지나고 가을도 거의 끝무렵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여름휴가 후기에 눈길이 갔다. 더늦어지기 전에 빨리 올리고 싶었는데, 미얀마 발리 여행기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다른 것을 올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밀린 해외여행 후기가 많지만, 추억 파먹기 처럼 야금야금 먹으면 될 것 같은데, 하루에 한편 쓰면 왜 그렇게 블로그를 쳐다보기도 싫은지 모르겠다.
경주는 실로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 같다. 몇년 만에 가보는 것인지. 예전에는 수학여행으로 많이 갔던 곳이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로 모든 수학여행은 금지되다 보니, 딱히 경주에 갈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름 휴가때 계획을 세우다 보니, 이곳도 가고 싶고 저곳고 가고 싶어 막 계획에 넣다 보니 전국일주가 되어 버렸다. 경주에 가면 딱 하고 싶은게 두개였는데, 하나는 한옥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다. 왠지 경주에서는 한옥에서 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번째는 개화기 양복을 입고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살이 찌면서 맞는 옷이 없어서 대신 교련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태백에서 출발해서 산길을 굽이굽이 내려와서 드디어 고속도로로 들어왔다. 태백에서 경주까지는 지도상으로는 가까워보였지만, 신길을 타고 내려오는 구간이 길다보니 생각보다 경주까지 시간이 오래걸렸다. 고속전철이 지나길래 내 앞에 KTX야 지나가라 지나가라 주문을 계속해서 말했지만, 빈 철도만 쳐다 보았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오후가 되어서 경주에 도착했다. 사전에 주인분께 차를 가지고 갈거라고 말을해 두었더니 다행히 숙소 앞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시우와당은 주차공간이 협소해서 사전에 주인분께 연락해서 자차로 이동한다고 알려드려야 숙소 앞에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관광지에 있다보니, 좁은 골목길에 차를 운전해야 했다.
주인아저씨께서 설명을 해주시기 전에 차가운 식혜를 주셨다. 중부지방은 계속되는 장마로 우중충한 날의 연속인데, 남부지방은 폭염의 나날이였다. 그래서 차디찬 식혜를 마시니 갈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너무 늦게 도착하면 경주를 구경할 시간이 없기에 아빠도 최대한 쉬는 시간을 줄여서 운전을 하셨다. 그래서 급 피곤함이 밀려오는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2층이였다.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올라가기는 무리라고 생각되어, 하루만 있다 갈 예정이기에 필요한 물품만 가방에 챙겨갔다. 2층 방은 침대가 창가쪽에 있고, 한쪽에서는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문을 통해서 발코니로 나가는 길이 있었다.
나무가 주는 편안함이 너무 좋았다. 집안 곳곳에는 주인아주머니가 만드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은 소품에서 한국적인 미가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바쁜 여행보다는 느린 여행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냥 느리면 느린대로 하는 여행.
옷걸이도 나무로 되어있고, 수건도 뽀송뽀송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지내게 되면 항상 물품이 호텔에 비해 부족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까다로운 여성 손님의 눈에도 꽤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차한잔 마실 수 있게 차와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도 베트남산 다람쥐 모양이 그려있는 커피로 말이다.
창문을 열고 난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밖에 나가서 경주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왠지 하루종일 이곳에 편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도 갈끔했다. 화장실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리고 발코니로 나가봤다. 방 옆이 창고인것 같았다. 창고를 지나 밖으로 나가니 시우와당의 마당과 거리가 보였다. 그리고 캠핑용 의자 두개가 놓여져 있었다. 약간 장소가 비좁은 것 같지만, 비오는날 빗소리를 들으며 차한잔 마시면 운치 만점일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간 날을 연일 폭염이 일던 날이라 그런지, 시원한 실내가 그리워 빨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집들의 높이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곳곳에 수공예품이 놓여져 있었다. 블로그에서 읽기로는 주인아주머니께서 만드신 작품이라고 한다.
방키로 받기 때문에 분실에 유의해야 했다. 그리고 신발은 신발장에 놓아도 되고, 비가 올 경우에는 방안으로 신발을 들여 놓으라고 하셨다.
무릎이 좋지 않은 나에게 계단은 쥐약이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계단이라 짜증나기 보다는 왠지 더 정감어렸다. 그러나 오르고 내릴 때마다 항상 조심해야 했다.
특히 2층에서 바라본 황리단길의 풍경과 기와의 모습 저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까지, 고즈넉한 분위기에 내 마음마저 같이 차분해 지는 것 같았다. 거리 속은 관광객의 빠른 걸음과 사람들의 소리로 정신이 없지만, 숙소앞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모든 것이 평안해 보였다.
1층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잠시 밖에 나갔다가 숙소로와서 우와한 시간을 보냈다. 날은 덥지만 뜨거운 커피를 내려서 발코니로 나갔다.
바람이 살짝 부는 가을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아저씨왈, 그냥 발코니에서 흡연을 하라고 하셨다. 어차피 2층은 우리밖에 사용하지 않아서 괜찮다고 하셨다.
저녁이 되니 주변 건물에 불이 들어 왔다. 높은 건물이 없기에 2층도 높은 건물에 속하는 것 같았다. 은은한 조명을 밝힌 주변 건물들을 보고 있으니, 눈이 편안했다. 마음도 같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았다.
숙소 앞에 유명한 찻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하루종일 길건너에 있는 찻집을 보기만 했지 가보지는 못했다. 왔다갔다 하며 힐끔힐끔 쳐다 보니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약간 날이 흐렸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아침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리로 이사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이 오지 않은 길에는 적막감이 들었지만, 나만의 길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하루종일 붐빌 길이지만 이른 아침이라 나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은 마당 앞에 있는 별관에서 먹었다. 미리 밑반찬은 준비가 되어있었다.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니 주인아저씨께서 차를 가져다 주셨다. 밤새 찬 에어콘바람을 쐐면서 잤더니, 따뜻한 차를 마시니 몸속이 쏴르르 따뜻해졌다.
이것저것 메뉴가 더 나왔다. 그리고 쌀밥과 미역국까지 금새 한상 가득해졌다. 음식이 보기도 좋고 맛깔스러웠다.
오랜만에 잘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해준 집밥을 오랜만에 먹은 것 같았다. 잊고 있었던 엄마의 밥이 생각났다.
후식으로 식혜와 커피까지, 뭔가 푸짐하게 대접받은 느낌이 들었다.
숙소를 체크아웃하기 전 창밖을 내다 보았다. 이제 점점 관광객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부산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아쉽기는 했지만 발길을 서둘러야 했다.
주인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같이 사진 한장을 찍었다. 시골집에 놀러왔다 다시 집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오히려 잊고 지내려고 노력했던 감정들이 밀려 나오는 것 같았다. 관광객이 떠나간 경주의 밤도 좋았고, 관광객이 오기 전의 황리단길의 분위기도 너무 인상깊었다. 언젠가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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