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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를 구경한 후 부산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대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1호선의 끝에서 끝으로 가는 것이기에 졸다 일어나고 또 졸다 일어나길 반복했다.

 

엉덩이가 아파질 무렵 다대포해수욕장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안은 흡사 인천역에 내리는 풍경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부산지하철 1호선의 종착역에 도착했다. 4번 출구를 통해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갔다.

 
 

여기서 뉴욕까지는 얼마나 될까? 부산에서 전 세계의 주요 거리가 나온 방위표 위에 서서 코로나 이전의 자유로움을 생각해 보았다.

 
 
 

하늘엔 끊임없이 비행기가 착륙하는 게 보였다.

 
 

바다 쪽에서 내륙으로 빠르게 비행기가 진입하고 있었다,

 

해수욕장에 닿기 전 공원을 거닐었다. 바로 해수욕장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깔끔한 공원이 먼저 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이번 여행도 왠지 잘 마무리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좋은 기분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공원 끝에 오니 바다가 보였다. 넓은 백사장이 인상적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일까?! 해수욕장과 공원이 맞닿은 곳에 낮은 담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담 앞에는 바람에 쓸려온 것 같은 모래들이 쌓여 있었다.

 

해변이 넓고 길었다.

 
 

한참을 걸어야 했다. 모래가 단단해서 걷는 게 편했다. 점프도 해보았다.

 

해가 점점 지고 있었다. 2월의 마지막 날의 지는 해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졌다.

 

해운대처럼 시원시원하게 파도가 치지는 않았지만, 평온한 파도는 일몰과 잘 어울렸다.

 
 

잔잔한 파도 위는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 갔다.

 

조금 과장한다면 발리 짐바란이 생각났다. 짐바란같이 눈이 부실 정도의 강렬한 노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풍경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점점 서쪽으로 기울수록 한쪽엔 어둠이 다른 쪽은 황금빛으로 젖어 들었다.

 
 
 

해변을 거닐고 파도와 장난치고 실루엣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을 평생 잊지 않겠다는 듯 이 순간 이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날 같이.

 
 

저녁시간이 되어서 그런가 남쪽에서 북으로 비행기가 끊임없이 김해공항으로 착륙했다. 손에 잡히는 거리라면 얼마나 낭만적일까!

 
 

물이 더 빠지는 것일까? 물기로 인해 촉촉한 모래사장은 거울처럼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아빠는 이곳이 작은 우유니 사막같이 느껴지신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이젠 오히려 비현실적인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젖은 모래 위를 걸으니 쿠타의 해변도 생각났다. 아마 이와 비슷한 곳이 다 생각나나 보다.

 
 

이젠 제법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누군가 그려놓은 놀이판 위에서 잠시 아이가 되어 해보았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주 살짝 비가 내렸다. 빨간색 우산이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을 반으로 자른 모습이었다.

 

뒤로 돌아가니 반쪽 인간이 한발로 서있었다.

 

캠핑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이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

 

우린 육지의 물이 바다와 맞닿은 물길에 도착했다.

 

작은 돌 위에 오르기도 하고, 그리고 폴짝 돌 위에서 뛰어도 보았다.

 
 

오늘 이곳에 너무 잘 온 것 같았다. 왠지 이번 여행도 잘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해는 다 지고 아직 살짝 햇살의 기운만 아주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번 부산 여행도 이렇게 다 지나가고 있었다.

 
 

공원엔 어둠이 짙어지고 곳곳에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덧 공원의 가운데엔 화려하게 불이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조명에 취하다 보니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변해있었다.

 
 
 

조만간 일어날 일도 예상하지 못하고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신나게 놀면서 사진을 찍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 받았다. 해운대 보건소란다. 우리가 부산으로 오는 날 비행기 좌석 근처에 확진자가 있어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두 가지란다. 하나는 부산의 지정된 호텔에서 자비로 지내던가, 아니면 방역 택시를 타고 서울로 가서 집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부 자비로 해야 한다고 한다. 자비로 한다는 것이 조금 납득은 되지 않았다.

 

부산에서의 숙박은 너무 비싸고 그리고 노트북도 없기에 어찌어찌해서 방역 택시에 몸을 실었다. 자기격리대상자가 되어 제일 먼저 들은 생각은 어떻게 일을 하지였다. 아무튼 방역 택시를 타고 도망치듯 부산을 빠져나왔다.

 

밤새 달려 서울로 왔다. 금액은 대략 63-4만 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비싼 택시를 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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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뭔가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좋고 다녀온 여행 지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총 두 군데를 다녔다. 범어사와 다대포해수욕장이었다. 부산지하철 1호선 끝과 끝에 위치한 곳으로 여행 동선으로는 최악이지만 수도권 지하철에 익숙하다 보니 그렇게 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대포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해운대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자가격리 대상자라고 했다.

 

토요코인 호텔에 투숙하면 아침식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이점이 너무 좋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범어사로 향했다. 부산교대 말만 들어 보았지 지하철을 타고 지나본 적은 처음이었다.

 

지하를 나온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밖의 풍경을 보며 달렸다. 느낌은 흡사 오사카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범어사역에 내려 밖으로 나갔다.

 

버스를 타고 범어사까지 갈 수 있지만 우리는 걸어서 범어사로 갔다.

 
 

범어사로 가는 산책로가 있기에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러나 산책길 치고는 코스가 꽤 길었다.

 
 
 
 

날이 따스했다. 어제는 스산하고 으스스했지만 오늘은 벌써 봄이 된 것 같았다. 하루 사이에 겨울에서 봄이 되었다. 첫 코스부터 계단이라 힘들었다. 계단만 올랐을 뿐인데 벌써 등은 땀으로 젖었다.

 
 

계단을 오르니 완만한 경사를 가진 길이 나왔다.

 

삼나무인가? 길쭉하게 쭉쭉 뻗은 붉은색의 나무들은 시각적인 시원함을 선사했다.

 

외길이기에 그냥 쭉 따라 걸으면 되었다.

 
 
 

찬바람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돌아갈 땐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걷는 것도 좋고 기분도 상쾌했다.

 

생각도 못 한 풍경에 아빠나 나나 기분이 좋았다. 주말이라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산에서 이런 풍경을 볼 것이라고 생각을 못 했다. 부산하면 항상 바다, 해변만 생각하게 되는데 살짝 내륙으로 들어오니 또 다른 부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육 년 근 홍삼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나무가 길 한가운데서 자라고 있었다.

 

삼나무 숲을 나오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햇빛이 강했다. 이젠 겨울은 저 멀리 지나간 것 같았다.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니 저 멀리 절 입구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절 입구까지도 또 열심히 걸어야 했다. 지하철역 이름은 범어사역이지만 지하철역에서 절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절로 들어가는 길에는 벌써 봄이 찾아왔다.

 

회색빛 도시에 지친 마음은 분홍빛 꽃들을 보고 있으니 다시 생기를 찾는 것 같았다.

 
 
 

푸른 하늘과 분홍빛 그리고 흰 꽃을 벗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오르막을 올랐던 힘듦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봄꽃에 취하다 보니 걷는 걸음은 더디었다.

 

절 입구도 인상적이었다.

 

절 입구를 지나 뒤를 돌아보니 절 입구 뒤로 길게 뻗은 소나무가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계속 오르막이었다. 그러나 경사가 심하지 않아 천천히 걸으면 걸을만했다.

 

하나의 건물과 입구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맛에 절을 찾는 것이 아닐까.

 
 

규모가 꽤 큰 절인 것 같았다. 절을 방문한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절이 넓어서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처마 끝의 풍경은 바람이 불 때마다 딸랑딸랑 거렸다. 청아한 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갔다.

 

대웅전을 등지고 바라본 풍경의 꽤 멋있었다.

 
 

대웅전에 서서 경내를 바라보니 대웅전 안의 부처님의 시각으로 주위를 볼 수 있었다.

 

불교신도는 아니지만 부처님께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대웅전 옆에는 아치형 문이 인상적인 건물이 있었다.

 
 

단청도 다른 건물에 비해 더 화려한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지붕이 겹겹이 보이는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서로 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조화롭게 포개져 있었다.

 
 

절 안의 담장의 무늬마저 좋았다.

 
 

대웅전 앞 계단을 내려가는데 경사가 심하기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올라올 때와는 다른 길을 따라갔다.

 
 

우와! 이런 길도 있었다니! 거서 찍는 사진마다 화보가 되는 곳이었다.

 
 
 

수령이 몇 백 년이나 되는 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절 입구를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절 아래에서는 계속 관광객이 올라왔다.

 
 

갈등이란 등나무와 칡 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갈등이라 한다는 안내를 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왔으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천천히 걸어서 내려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내리막길이니 수월하기는 했지만 계속 걷다 보니 피곤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기에 범어사역 근처로 와서 커피 한 잔과 토스트 두 조각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몸속으로 당이 들어가니 피로가 풀리는 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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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자갈치 시장 역에 내렸다. 자갈치 시장은 여러 번 가 보았기에 이번엔 Biff 광장과 남포동 거리, 그리고 롯데백화점 광복점에 가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부산의 메인 여행지이자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았다.

 
 

Biff 광장의 가운데에는 영화배우들의 손 프린팅이 바닥에 있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 냄새를 맡으니 뱃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점심을 안 먹었기에 배가 더 심하게 꿈틀꿈틀 거렸다.

 

Biff 광장의 가운데서 인증숏을 찍었다. 나도 오랜만에 와봐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보다 그 명성은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더 이상 배고픔을 참지 못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부산의 날씨는 서울보다는 따뜻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 쌀쌀했다. 으슬으슬 추웠다. 그래서 따스한 국물이 당겼다. 갈비탕을 먹다 보니 아빠께서 냉면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추가로 냉면도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역시 뱃속이 비면 여행도 고행이 되는 것 같다. 먹고 나니 세상이 밝게 느껴졌다.

 

뱃속이 든든하니 또 걸을 힘이 생겼다. 비프광장을 벗어나니 골목길은 한산했다.

 

조명가게가 늘어선 길을 걸었다. 이쁜 조명들이 많았다.

 

영화에서 나온 그 국제시장. 예전의 명성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많은 상점들도 문이 닫혀 있었다.

 

국제시장을 나와 용두산 방면으로 걸었다. 오랜만에 들어 본 경양식. 어릴 적에는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생일날뿐 이었다. 지금이야 흔한 게 돈가스지만 말이다. 1966년이면 나보다 대략 20살이 많은 식당이었다.

 

걷다가 모자 파는 상점 앞에 멈춰 섰다. 모자에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문구들이 인상적이었다. 외국인들도 영어로 적힌 옷의 프린팅을 본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여행 중'이라고 적힌 모자를 구매했다.

 

옷 가게가 즐비한 거리를 걸었다.

 

사이즈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옷들이 없었으나 난 왜 그렇게 스웨터에 눈길이 가는지 모르겠다. 사이즈 맞는 게 있으면 하나 사고 싶은데 사이즈 없으면 상처받을까 두려워 눈으로 구경했다. 진짜 몇 킬로만 더 빼서 이쁜 스웨터를 사고 싶다.

 
 

걷다 보니 광복로 끝에 도착했다. 광복로 끝에는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있었다.

 

영도다리와 부산대교. 매번 두 다리의 이름이 헷갈린다. 맞은편 영도엔 요즘 20대, 30대에게 핫한 라발스 호텔이 보였다.

 

저번에 왔을 땐 롯데백화점이 공사 중이었는데 공사가 완료되었기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옥상에 가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으나 코로나 때문에 옥상정원을 이용할 수 없었다.

 
 

대신 옥상과 연결된 내부엔 다양한 조형물이 있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곳에도 영화배우들의 손 프린팅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떤 손이 아빠와 손크기가 같을까?

 
 

1000억을 벌기(?) 바라며 천억의자에 앉아 보았다. 단돈 1억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진열돼 고급스러운 소파 및 의자에 앉아 보았다. 가격표를 보는 순간 움찔했다.

 
 

다양한 콘셉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있었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저녁에 먹을 음식을 사서 다시 호텔로 갔다.

 
 

오랜만에 백화점에서 산 음식으로 입이 즐거웠다. 하루 종일 걷고 식사도 제대로 못해서 힘들기는 했지만 눈이 즐거웠던 하루였다. 내일은 어디를 가야 즐거울까? 지도를 보며 다음날 갈 곳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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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또는 사진으로만 보던 부산의 핫한 장소인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 내 여행 스타일은 주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을 다니는 편인데 이곳은 지하철을 이용한 후 버스나 한참을 도보로 가야 하는 곳이기에 처음엔 망설여졌다.

 

수도권에서는 우대권 패스를 사용하면 되지만 지방에 오면 이렇게 우대권 발급기를 이용해서 승차권을 발권할 수 있었다.

 

서면이 환승역이라 1호선과 2호선 어디를 가든지 편리했다. 감천문화마을 및 비석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이름부터 특이한 토성역에 내리면 되었다.

 

감천문화마을 및 비석마을로 가는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가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비석마을을 거쳐 감천문화마을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급한 게 없는 여행이었기에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갔다.

 
 

토성역을 나와서 계속 오르막을 올랐다. 부산은 참 오르막이 많은 것 같다. 바닷가 지역의 일부 평지를 제외하곤 전부 오르막이라 초반부터 숨이 헐떡거렸다.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길을 걸었다. 날씨만 좋았어도 한결 기분 좋게 걸을 것 같은데, 이날 날씨는 싸했다. 춥지도 그렇다고 덥지도 않다. 바람이 불면 추웠고 그리고 습해서 으슬으슬했다. 인도의 겨울 날씨를 연상시켰다.

 
 

날씨도 괴팍한데 동네 분위기도 묘했다. 끊임없는 오르막 그냥 버스 타고 편하게 갈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 정도 올라 뒤를 보았다. 부산의 구시가지가 조금씩 보였다. 나름 비석마을도 매스컴에 자주 나오는 곳인데 이렇게 관광객이 없다니. 관광객이 북적이지 않기에 누구보다 여유롭게 이곳을 즐길 수 있었지만 스산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

 
 

BTS의 팬클럽 이름과 같은 이곳은 아미동. 현대사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이곳의 다른 이름은 비석마을인데 예전 일본인의 묘지가 있던 곳으로 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슬픈 과거가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본 부산의 전경은 아프지 않았다. 대신 날이 요 모양이라 그런지 이곳의 분위기가 더욱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역사와 날씨가 몸과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래도 한 번쯤 와보고 싶었다.

 
 
 

아미동 비석마을을 지나면 감천문화마을이 나온다. 토성역에서 한참을 걸어서 올라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언덕을 오르는 버스조차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 주변을 바라보면 가끔 막다른 골목이 나오기도 벽이 나오기도 또한 예상하지 못한 멋진 풍경이 나오기도 했다. 내가 자란 80년대 90년대가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겨웠다. 내 기억의 80년대, 90년대에는 이런 길이 흔했던 것 같다. 어느 곳을 가도 이런 미로 같은 길을 찾기 쉬웠다. 하루 종일 친구와 놀던 골목길. 이런 감성을 잊고 이젠 너무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졌다. 한때 미술 공부를 하다 이런 골목길이 그리워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며 어릴 적 추억에 잠겨보기도 하고 사진을 보며 울기도 했다.

 

걷다 보니 티브이에서 보았던 그 집이 보였다. 진짜 비석 위에 집이 세워져 있었다. 할 말을 잊었다. 이렇게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이감과 함께 얼마나 절박함이 느껴졌다.

 
 

다시 골목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벅찬 좁은 골목이었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광장 같은 공간이 나왔고 다시 미로같이 좁은 공간이 나왔다. 우리 집의 창문이 맞은편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숨이 차기는 했지만 계속 오르막만 걷다 보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골목만 걷는다면 답답할 수 있지만 이곳에도 숨 쉴 곳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골목을 벗어나면 숨통이 트이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큰 길로 나와 감천문화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큰 길이라 해봤자 2차선의 좁은 도로이지만 이곳에서는 가장 넓은 공간의 길이였다.

 

고개를 넘으면 감천문화마을이 나왔다. 아미동 비석마을에서는 부산의 구시가지와 부산항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넘으니 아미동보다 활기찬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발열 체크도 하고 안심 콜로 전화를 해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미동은 쓸쓸했다면 부산의 핫플레이스답게 활기찼다.

 
 
 

곳곳이 감성을 자극하는 벽화와 색으로 되어 있었다.

 
 
 

감천문화마을까지 오는 길에 힘을 다 빼서 그런지 어디에 앉아 쉬고 싶었다. 날은 으스스한 게 계속 오르막을 걷다 보니 등은 젖어 있고 또 젖은 반팔이 마르면서 더 춥게 느껴졌다.

 
 

벽화도 아기자기하고 마을의 분위기도 활기차다 보니 다운되어 있던 우리도 힘은 들지만 힘듦을 잊을 수 있었다.

 
 

감성을 쿡쿡 자극한다고 해아 할까?! 좁은 골목마저도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아직까지는 사진으로 보던 마을의 모습 볼 수 없었지만 건물 사이로 힐끗힐끗 언덕 위의 알록달록한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80년대, 90년대의 모습에 2000년대의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또 촌스럽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엔 포지타노와 아말피가 있다면 한국에는 감천문화마을이 있었다.

 

골목을 걷다 마주한 시크한 고양이마저 아름답게 정겹게 보이는 곳이었다.

 

배가 고파서 빵을 사 먹을까 고민하다 사람이 많아서 군침만 삼켜야 했다.

 
 

사람이 줄 서 있는 곳을 발견했다. 뭐 이런 곳에서 줄까지 서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 선 사람들을 지나 아이 러브 감천이라는 문구 앞에서 인증숏을 남겼다.

 
 

배도 고프고 춥기에 오렌지색 건물이 인상적인 카페 파로로 들어갔다.

 

카페 창밖으로 감천문화마을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오니 따뜻한 게 몸이 노곤노곤 해지는 게 낮잠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카페 안에는 커피나무가 있었고 푸른색의 커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건물에 오렌지색으로 칠하니 건물이 감각적이고 특별하게 보였다.

 
 
 

사람들이 줄 서 있 던 곳은 이곳의 명물 어린 왕자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어린 왕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린 왕자가 바라보고 있는 감천문화마을이 우리가 사진으로 보던 그 풍경이었다.

 
 
 

이 풍경을 보니 연예인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다 실제로 보니 사진의 감동보다 백만 배는 더 컸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골목들. 어디를 꼭 가고 봐야겠다는 생각 없이 길이 있으면 걷고 없으면 다시 돌아가고,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길을 걸었다.

 
 

숨어 있는 야옹이와 잠시 인사도 하고 또 수많은 계단을 보며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며 이곳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을 따라 마을 아래로 걸어갔다.

 
 

누군가의 마당은 다른 집의 지붕이 되고, 집과 집들이 이어진 듯 떨어져 있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걷다 보면 빈 공터가 나왔고 이곳에서 아이들이 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꽃피웠을 것 같아 보였다.

 
 

어느 정도 마을을 내려와 우리가 왔던 길을 뒤돌아 보니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와는 다른 압도감으로 마을이 다가왔다.

 
 
 

진짜 많이 걸은 것 같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힘듦이었다.

 

누군가에게 이곳이 아픔의 기억이기도 하고 우리 같은 관광객에게는 이국적인 관광지였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곳에서 잠시지만 어릴 적 추억에 잠겨 볼 수 있었다.

 
 
 
 

별이 보일 만큼 가파른 언덕 계단 길이었다. 삶의 고단 힘이 길에서 느껴졌다. 왜 이 길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기억도 희미한 영화'엄마 없는 하늘 아래'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채봉 선생님의 '초승달과 밤배'가 생각났다.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아주머니 분께서 길에 서 계시기에 저기가 버스 타는 곳인가 생각했다가 가까이서 보니 가짜 사람이었다.

 
 
 

우리는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 타고 자갈치 시장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바로 감천문화마을에 왔다면 우와 이쁘네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두 개의 마을을 걷다 보니 잠시나마 추억여행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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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태풍때문에 실내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지만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꽤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여행이다 보니 실내에서만 시간을 보내니 살짝 따분했다. 저녁에 태풍이 일본으로 완전히 옮겨가서 잠깐 해운대를 다녀왔다. 부산에서 일본까지 꽤 가까운 거리라 태풍이 한반도를 빠져 나갔다고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언제 그렇게 날씨가 안좋았다는 듯이 화창했다. 오늘은 송도에 가서 케이블카를 탈 생각이었다. 송도는 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이라 자갈치 시장까지 간 후 버스로 이동을 하거나 자갈치 시장에서 걸어가야 했다.

 

서면역에서 환승을 하는데 완전 아빠 취향의 식물세상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이런 실내장식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도 공공장소에 이런 곳이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팍팍하고 텁텁한 지하공간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자갈치 시장역에서 내린 후 걸어서 송도 해상케이블카 타는 곳 까지 걸어 가기로 했다.

 

태풍이 지나간 후 너무 날이 화창했다. 날도 살짝 더웠다. 부산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장소면 전부 집들이 들어서 있는 것 같았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나왔을 법한 집들이 보였다. 지형의 특징을 잘 이용해 만든 집같아 보였다.

 

 

자갈치 시장역에서 송도 케이블카까지는 꽤 걸어야 했다.

 

어떤 아파트 옆에 있는 옹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집옆에 저렇게 가파르고 큰 벽이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 보였다.

 

너무 운동을 안해서 힘든건지 진짜 거리가 꽤 먼 것인지 구분이 안되지만 아무튼 케이블카에 도착하기 전에 에너지가 방전되어 버린 것 같다.

 

남항대교 밑에서 잠시 땀을 닦았다. 남항대교 맞은 편에는 영도의 흰여울 마을이 보였다. 남항대교 인도를 따라 영도섬까지 갈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남항대교를 따라 걸으면 아찔하면서도 추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항대교 앞에는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고, 케이블 카 매표소는 그 빌딩 앞에 있었다.

 

 

토요일이었지만 매표줄이 길지 않았다.

 

 

편도를 타나 왕복을 타나 가격 차이가 나지 않기에 크리스탈 케빈 왕복으로 표를 구매했다.

 

 

팜플렛을 보니 케이블카를 타고 스카이 파크로 가면 생각보다 볼거리가 꽤 많았다.

 

 

 

 

탑승을 위해 탑승장으로 갔다. 사진 찍을만한 스팟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 찍기 좋을 것 같았다.

 

일반 캐빈보다는 크리스탈 캐빈의 줄이 길었다. 열에 구점 오는 바닥이 보이는 크리스탈 캐빈을 이용했다.

 

 

 

일행단위로 줄이 줄어드니 금새 우리가 탈 순서가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인원수에 맞게 탑승한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일행 별로 탑승을 했다.

 

케이블카는 천천히 가는듯 하다 정거장을 출발하니 갑자기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케이블카에 둘만 타니 너무 편했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무게에 유리가 깨질까 걱정이 되어서 유리에 앉아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보다 많이 가벼운 아빠께서 용기를 내셔서 바닥 위에 앉으셨다. 나 사진을 찍기 위에 잠깐 유리 위에 서있는데도 다리가 후들 거렸다.

 

부산바다가 이렇게 옥빛이었나!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 보니 물빛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구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다른 케이블카보다 금방 반대쪽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붉은색의 절벽을 따라 잔도길이 놓여져 있었다. 붉은색과 아이보리색의 돌층이 비스듬히 누워 있어 누군가 산을 살짝 비틀어 놓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태풍때문에 케이블카가 운행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태풍이 분 다음날도 정상적으로 운행을 했었다.

 

 

케이블카에 내려서 밖으로 나갔다.

 

 

야외광장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룡들과 다양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도 조금씩 움직이는 공룡을 보시며 신기해 하셨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들도 있었다. 주말이라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온 가족들이 많았다.

 

 

냥이들도 날이 더운지 그늘에 늘어져 쉬고 있었다.

 

 

야외광장을 구경한 후 다시 스카이파크 안으로 들어와 3층으로 갔다.

 

케이블카에서 대마도가 보이나 보다. 예전에 고참들이 간간히 보히는 대마도를 보면서 너무 자주 보면 닳아서 안보인다고 적당히 보고 일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3층 옥상엔 어린왕자의 꿈이 펼쳐져 있었다. 어린왕자의 실사판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푸른 하늘 아래 노란색, 빨간색의 원색의 조형물들이 이공간을 더욱더 동화같이 만들어 주었다.

 

 

 

노란색의 조형물들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옥상이라 영도와 부산항이 한눈에 보였다.

 

 

옥상엔 옥상그네가 있었는데 유료였다. 무서워서 누가 탈까 생각했는데 젊은 한 커플이 그네로 가더니 그네를 탔다. 옆에서 그네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는 무서운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린왕자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해보기도 했다.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도 있었다.

 

나도 캐리어 끌고 자유롭게 공항으로 가서 어디든지 훨훨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놈의 코로나 때문에 어느 누구하나 자유로운 사람이 없으니 가슴만 아플 뿐이다.

 

 

이곳 맞은 편에 흰여울 마을이 보였다. 한번 더 가보고 싶었는데 아빠가 갔던 곳에 왜 또 가냐고 하여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귀여운 여우와 절친이 되어 사진을 찍었고, 어린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와 함께 인증 사진을 찍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잠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다리도 쉬고 사진도 정리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다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점심을 못 먹었기에 커피와 카야 토스트를 주문했다.

 

싱가포르에 가지는 못 하지만 카야 토스트를 먹으며 싱가포르를 추억할 수 있었다.

 

 

땀도 식히고 sns에 찍은 사진도 찍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런데 어떤 가족이 오더니 엄청 크게 대화를 하는 바람에 우리의 휴식이 끝나게 되었다.

 

 

스카이 파크에서 나와 용궁 구름다리로 갔다. 점심이 지난 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용궁구름다리에 갔는데 안전상의 이유로 통제를 한다고 해서 못들어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멀리서 본 후 용궁에 왔다는 인증샷만 남겼다.

 

용궁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만 용궁 구름다리에서 발길을 돌려 산책길을 따라 갔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그 위에 떠있는 배들이 그림같았다. 부산항으로 입항하기 위해 기다리는 배들을 보고 있으니 옛추억에 잠시 잠길 수 있었다. 모든게 정지된 것 같은 풍경에 한대의 배가 흰 물결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산책길에는 작은 출렁다리도 있었다.

 

 

이곳은 안남공원 숲길로 갈맷길의 일부였다.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니 119구조대가 들것으로 사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들것에 실린 사람얼굴이 보이지 않고 덮혀 있었다. 순간 오싹하고 싸한 느낌이 들었다. 절벽에서 사고가 났던 것인지. 119구조대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지 않고 길이 없는 비탈길을 따라 내려왔다. 기분 좋게 여행왔다 순간 긴장감이 내 몸을 감싸고 돌았다.

 

 

기분 좋은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갑자기 이곳이 무서워졌다.

 

풍경이 이쁜데 위험하다는 생각이 사진 찍는 것도 급 소심해졌다.

 

 

난 위험해서 바다쪽으로 안갔으면 좋겠는데 아빠는 바다쪽으로 가셔서 걱정이 되었다.

 

내가 쫄보라 그런지 갑자기 그런 장면을 보니 구조대가 들것을 들고가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의 지층은 특이하긴 특이했다. 나무껍질 같아보였고 만지면 나무껍질처럼 떨어져 나갔다. 기하학적인 무늬로 돌이 갈라진 모습이 그저 신기할 뿐 이었다.

 

다시 스카이 파크로 돌아와 송도베이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일반 캐빈보다 크리스탈 캐빈을 타니 내 눈이 드론의 카메라가 된 것 같이 보였다.

 

 

구간이 다른 케이블카에 비해 짧기에 지루할 쯤 되니 도착했다.

 

송도까지 왔는데 송도해수욕장을 빼고 그냥 가버리면 서운할 것 같아 송도 거북섬으로 갔다.

 

전설이 있는 섬같은데, 데크가 길게 바다 위로 놓여져 있었다.

 

 

 

 

보트를 타고 스릴을 즐기는 사람을 보며 내 찜찜한 마음도 다시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바다가 잔잔해서 오리배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송도해수욕장은 과거의 명성은 해운대와 광안리에게 내어주고 다시 영광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곤 같아 보였다. 예전에 부산의 해수욕장하면 송도였는데 지금은 전부 해운대에게 명성을 뺐기고 간간히 과거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자기는 건제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에는 버스를 타고 자갈치역까지 간 후 지하철을 타고 다시 해운대로 왔다. 추석 뒤 출근을 해야하기에 숙소로 들어가기 전 구 해운대역 앞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음날 결과가 문자로 왔는데 음성이었다. 이것도 검사라고 저녁 내내 가슴을 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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