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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와보고 싶다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였다. 그렇게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경주에 올 수 있었다. 황리단길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가본적은 없고, 왜 사람들이 경주에 열광하는지, 왜 경주로 여행가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경주에서 하루 지내게 되었고, 그래서 잠시나마 경주를 여행할 수 있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쌤이 수도권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경주로 내려오셔서 경주에 자리를 잡으셨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지만, 경주에 올일이 없었기에 SNS를 통해 간간히 소식만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황리단길에 숙소를 잡은 김에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서점을 방문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한 1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안고 소소밀밀이라는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소소밀밀리이라는 서점의 이름도 특이하지만, 서점앞에 있는 그림도 독특하게 다가왔다. 선생님의 딸이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하셨다. 어쩐지 뭔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봤을 때는 아주 꼬마였는데,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때는 20대 후반이였으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한 것 같았다. 서점 앞 마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안고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10여년이 지났지만 선생님은 나를 한번에 알아 보셨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머릿 속에서 이말 저말만 돌뿐,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사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작은 서점이지만, 실내가 깔끔했다. 선생님은 글을 쓰시고, 남편분은 그림을 그리신다. 왠지 두분의 감성이 서점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내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조용히 책을 고르는 손님께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내부 사진을 찍지 못했다. 경주에서의 우리의 일정이 너무 짧기에 잠깐 인사만 나누고 서점에서 나왔다. 오히려 내가 돈을 내고 책을 사와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며, 몇 권의 책을 챙겨주셨다. 서점의 상호도 이쁘고 그림도 이쁜 그림책이 있는 서점이였다.

서점에서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대릉원이였다. 서점에서 나와서 걸어가는데도, 잠깐의 만남에 대한 여운으로 아쉬움 마음이 남아서 발걸음이 무거웠다.

 대릉원은 수학여행 때 와본 것 이외에는 남아있는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더운날 땡볕에서 걸어야 했던 것이 싫었다. 그리고 항상 많은 학생들로 인해 정신없음만 남아 있었다. 어른은 3,000원이고 경로는 무료였다.

 어떻게 보면 들판에 언덕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릴적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발굴이 되기 전까지는 언덕이라고 생각하고 뒷동산이라고 생각하고 놀았다는 인터뷰를 본 것 같다. 그리고 넓은 잔디밭에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잊혀지지 않는 꽃이름이였다. 배롱배롱이러다 메롱메롱 할 것 같은 이름이였다.

 예전에는 미처 저 능의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빨리빨리 보고 빨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었다. 그러나 천천히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능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하게 느껴졌다.

 

 

 젊은 사람들의 사진 명소인가 보다 생각되는 긴 줄이 있었다. 세개의 능 사이에 서있는 나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더운 여름날 땡볕 아래서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SNS의 좋은점이자 나쁜점이랄까. 일상의 작의 부분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왠지 SNS에 나온 곳을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을 심어 주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나만의 여행이 아닌 보여주기 여행이 되어가는 것 같은 씁씁한 느낌도 들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빠는, 그냥 꽃과 함께 이쁜 사진을 찍고 싶어 하셨다. 한철 피는 꽃이고 언제 또 올지 모르기에 배롱나무꽃과 함께 화사하게 사진을 찍으셨다.

 푸른 정원에 피어있는 핑크빛의 배롱나무 꽃이 더욱더 두드러져 보였다.

 

 중부지방은 연일 계속되는 장마로 인해 태풍으로 인해 물난리가 났는데, 이곳은 비교적 화창했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대릉원의 자랑인 천마총에 들어가 보았다. 천마도가 발견되어 이름에 천마가 붙여졌고, 누구의 무덤인지 아직 알수 없기에 총이 붙여진 곳이 천마총이다. 예전에는 뭔가 음침하고 눅눅하고 뭔가 들어가기 싫은 곳이였는데, 방문했을 때는 깔끔한 인상을 받았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부장품이지만 뭔가 왕이 저렇게 뭍혀있었을거라는 상상이 들었다. 보지 못했던 과거이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했다. 상상을 하면서 뭔가 하나씩 알아가는 느낌이였다. 역시 역사 교육은 암기이기 이전에 이런 상상력을 동원해서 과거를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지 아닐까라는 생각이 해보았다.

 

 대릉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더운 날씨에 태백에서 경주까지 운전해서 온 피로감까지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쉬다 야경을 보러 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숙소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저 담을 훌쩍 넘어가면 바로 숙소가 나올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을 지나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이 조금 뜸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코로나가 극성이지만 이 당시에도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가네마네, 인터넷 상에도 요즘같은 시국에 휴가를 가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댓글과 찬성하는 댓글로 휴가를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이래저래 걱정이 되었었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간이 접촉을 줄이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맛집을 가고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뱃 속에 들어가면 다 비슷할거라는 생각에 조금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골목 안으로 들어와서 식당을 찾았다.

 더운 날씨에는 역시 달달한 막걸리가 최고인 것 같다. 막걸리와 쌈밥으로 이른 저녁을 해결했다.

 식당앞에 앉아서 잠시 쉬는데 뒷배경이 신라 기와인 수막새가 있었다. 수막새는 우리를 향해 단아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경주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경주의 느낌이 났다. 아니 만들어진 경주의 느낌이랄까! 경주의 많은 부분이 상업화 되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되니 젊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된 것 같다. 상업화로 인해 획일화 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러나 발길이 끊기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변화하는 모습이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경주의 느낌을 잃어간다고 아쉬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맞게 문화현상도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저녁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또 밖으로 나갔다. 여름 여행의 장점은 여행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조금 쉰 후 나갔더니 아직도 해가 남아 있었다. 하늘은 푸른하늘에서 주황빛 하늘로 조금씩 물들어 갔다.

 하늘의 해가 서쪽하늘로 지고 나니 한낮보다는 조금 날씨가 선선해졌다. 가게들은 조명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경주에 오면 꼭 봐야하는 곳 중 하나가 첨성대가 아닐까? 대릉원에서 걸어서 첨성대로 그리고 계림으로 그리고 동궁과 월지로 이어지는 관광코스는, 튼튼한 두다리만 있으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모든 관광지가 모여있었다.

 첨성대는 무료이기에 부담없이 산책삼아 가기 좋았다. 이곳이 비단벌레가 유명한 것일까? 거대 비단벌레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명을 받은 첨성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깔옷을 다르게 입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다양한 포즈로 첨성대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첨성대 꼭대기를 드는척 하며 시진찍고, 첨성대를 물병처럼 사진찍고 더 많은 아이디어가 생각났으면 좋으려만, 내 머릿 속에는 정형화된 몇 개의 포즈만 생각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바뀌기 때문에 때를 잘 맞춰서 찍어야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서서히 하늘이 어두워지고 첨성대의 조명은 더욱더 첨성대를 두드러지고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첨성대 옆으로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이였지만, 이쁜 꽃들로 인해 건조한 모래가 날리는 길에서 마음이 촉촉해 지는 것 같았다.

 첨성대의 한쪽에는 꽃의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조금더 일찍 왔으면, 지는 해와 함께 이쁜 꽃사진을 찍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밝았으면 아름다운 꽃을 담았을 텐데.

 꽃을 배경으로 첨성대를 담아 보았다.

 해가 져서 그런지 날이 참 선선했다. 꽃들과 들판을 보고 있으니, 마음 속까지 같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는 동궁과 월지보다는 요즘 핫하다는 월정교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계림을 거쳐 월정교로 가기로 했다.

 많은 인파가 월정교, 계림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조명을 받은 계림의 나무들이 신성하게 느껴졌다.

 실수로 계림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낮에는 와본 곳이였으나, 밤에 와보니 나무들이 또 다르게 느껴졌다. 나무의 정령이 있다면 이곳에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신성하게 느껴졌다.

 계림으로 들어가서 끝까지 가면 나가는 길이 있을까 생각하고 끝까지 가보았으나, 나가는 길이 없어서 다시 되돌아 나가야 했다. 해가진 후 계림은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길을 잃기 딱 좋은 것 같았다. 아무튼 겨우 출구를 찾아서 큰 길로 나올 수 있었다.

첨성대를 보고 계림을 거쳐 월정교에 오니, 왜그렇게 힘들었는지, 목도 마르고 해서 월정교 앞에 있는 으시시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사바하라는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해골장식과는 다르게 카페 안은 너무 편안했다.

 마감시간에 가까운 시간에 가서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잠시 시원한 에어콘 바람도 쐬고 찬음료도 마시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카페의 실내도 잘 꾸며 놓았지만, 날이 덥지 않으면 실외에서 차한잔을 마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소나무가 구비구비 자란 정원이 인상적이였다.

 발리의 해변에 있는 카페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월정교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불빛이 강에 비쳐진 모습은 더욱더 아름다웠다. 아! 이럴 땐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진다. 삼각대를 세워두고 찍으면 좋을텐데, 사진이 흔들리지 않게 찍기 위해 최대한 숨을 참고 촬영을 해야했다. 핸드폰 카메라는 확실히 한계점이 이럴 때 드러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많은 장비를 들고 다닐 자신은 없기에, 핸드폰카메라에 만족해야 했다.

물에 아른아른 피어나는 월정교의 조명 빛은 마음 속 깊이 콕콕 세겨졌다.

 이제 지치고 늦었기에 걸어서 숙소로 돌아 갔다. 경주는 걸어서 여행하기 좋은 몇 안되는 도시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 하루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일은 경주를 떠나 울산을 지나 부산으로 가는 일정이기에 또 다른 여행을 위해 에네지 충전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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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프로그램에서 개화기 양복을 입고 사진 찍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경주에서 뭐를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그때 그 사진관이라는 곳에서 흑백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우와당에서 걸어서 1분정도 거리에 사진관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살이 급격히 쪘기에 과연 맞는 옷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가보리고 했다. 사진관 입구에 아이들이 교련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교련복이 아이들에게 잘 어울렸다.

 문앞에서 망설이다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사진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관 안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벽면을 채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여행을 온 것 같았다. 마음 속으로는 맞는 옷이 있으면 좋을텐데 생각을 했다.

사진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관 안을 돌아다녔다. 오래된 흑백사진을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컬러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예전에 사진을 배운다고 필카에 흑백필름을 넣고 찍었던 기억이 났다.

 스튜디오 한켠에는 개화기 양복과 의상이 있었다. 주인분께서 너무 바쁘셔서 그냥 뭐가 있나 한번 훑어 보았다.

 현대적인 느낌과는 조금 다르지만 멋이 있어 보였다. 빨리 맞는 사이즈를 찾아서 입고 사진 찍고 싶었다. 양복을 입기에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난쟁이 신발도 챙겨서 신고 왔었다. 특히 멜빵을 메고 오랜만에 자켓을 걸치고 싶었다. 머리 속으로 온갓 상상의 날개를 혼자서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맞는 양복이 없었다. 개화기 양복이 슬림핏이라 그런지 양복자켓을 입으니 팔에 걸리고, 바지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나같은 통통한 사람에게는 개화기 양복은 무리였던 것 같다. 아무튼 낙담하고 있는데, 맞는 사이즈의 옷이 있다고 해서 입어 보았다. 교련복이었다. 그래도 이거라도 맞으니 다행이랄까?!

 아빠는 교련복을 오랜만에 입으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어랜애처럼 들뜨셨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아빠는 갑자기 학생 때가 생각난다면서, 기차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던 모습을 재현해 주셨다.

 경주라는 곳. 장소가 주는 느낌이랄까. 경주의 거리를 보고 있으면, 뭔가 시간여행을 하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현대인들인데, 분위기는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진관에는 작은 사물함이 있어서 옷을 갈아 입을 후 가방이나, 입었던 옷을 사물함에 보관할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우리 촬영일 때가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손님이 들어 오고 나갔다. 촬영은 스튜디오 안에 있는 촬영장소에서 진행되었다. 사진기사분께서 여러가지 포즈를 말해주면 그에 맞춰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올드 메모리를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을 이용해서 사진도 촬영을 했다.

 촬영이 끝나고 촬영된 사진을 확인할 때까지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옷을 입은 김에 사진관 앞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관 주인아주머니께서 사진을 찍어주시기도 했다. 나는 모자쓰는게 너무 어색해서 모자를 벗고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모자쓰고 선글래스를 착용하니 70년 군인같아 보였다.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의 팁으로 사진을 흑백으로 찍어 보니 컬러로 찍을 때와는 분위기가 확바뀌었다. 흑백의 느낌, 말로는 표현 못하겠지만 흑백의 느낌이 확 느껴졌다. 

 그래서 컬러로 다시 찍어 보니, 확실히 교련복에는 흑백이 더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오랜만에 흑백모드를. 아니 아마 처음으로 핸드폰 카메라의 흑백모드를 사용한 것 같다.

 대충대충 느낌만 살려서 찍어도 나름 퀄리티가 높게 느껴졌다.

 

 

 교련복을 입고 찍은 흑백사진이 우리가 입고 간 옷으로 갈아 입고 찍은 사진보다 나은 것 같았다. 스튜디오에 탈의실이 같이 있기 때문에 옷을 쉽게 갈아 입을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 사진이 나왔다. 이 사진 중 마음에 드는 사진 4장을 고르면 되었다. 다 비슷비슷해보이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중에 제일 나은 것을 찾아야 했다.

사진관에서는 의상도 대여했다. 개화기 의상을 입기 위해서는 최소 20키로는 빼고 가야할 것 같다. 우리는 원래 가족요금으로 받아야 하는데, 두명이라서 연인, 우정 요금인 3만원과 의상비 각각 5,000원식 40,000원을 지불했다.

사진은 학교다닐 때 자주 보던 똥색 봉투에 담아서 주었다. 각각 잘나온 것 같은 사진 4장이 담겨져 있었다. 가격은 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의 추억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인생의 위시리스트에서 하나의 항목을 지울 수 있었다. 가족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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