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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의 첫날은 숙소에서 쉬며 시간을 보냈다. 여름 여행이니 당연히 해변을 가야 하지 않을까. 원래는 제주여행의 대부분을 협재해수욕장에서 보내려고 했는데 숙소를 여행 출발 몇 주 전에 변경하면서 협재해수욕장에 한가로이 해수욕을 하는 상상을 접어야 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유명한 해수욕장을 찾아보니 30분 거리에 표선 해수욕장이 있었다. 아침에 산 귤 모자를 쓰고 표선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작년에는 함덕 해수욕장 바로 앞 숙소를 잡아서 매일 수영을 하러 갔는데, 이번에는 해수욕장은 표선 밖에 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표선 해수욕장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주차장이 곳곳에 있어서 주차하기가 수월했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다 지나쳐서 여름에만 잠깐 운영되는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물건을 비치 백에 주섬주섬 넣은 후 백사장으로 향했다. 

 

해변 주변에는 파라솔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래 놀지는 않을 예정이기에 파라솔은 빌리지 않았다. 가족단위 여행객은 파라솔을 빌려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뒤로 보이는 해변은 물이 너무 많이 빠져서 드넓은 흰모래를 드러냈다. 

 
 

이곳에도 진로 두꺼비가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마다 한 번씩 보는 것 같다. 해운대에서도 전에 봤었는데 이곳에서 두꺼비를 보니 반가웠다. 

 
 
 

어디에 짐을 두면 좋을까 생각하며 짐을 둘 장소를 물색했다. 물이 많이 빠져서 그냥 바위 위에 두어도 될 것 같았다. 해외를 여행하면 물건 분실 때문에 항상 신경 쓰였는데 그래도 우리나라는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믿고 카메라랑 차 키 등을 두고 바다로 향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수건 등으로 가려두기는 했지만. 

 
 

아빠는 전에 사용하던 바람이 새는 8자 튜브를 가지고 오셨다. 어쩐지 아무리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도 금방 튜브가 말랑거렸다. 

 

모래사장을 한참 걷다 튜브를 다시 놓고 와야 할 것 같아서 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물이 빠진 해수욕장은 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려면 한참 걸렸다. 사막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튜브를 두고 맨몸으로 다시 바다로 향했다. 모래사장의 모래는 울퉁불퉁했다. 파도와 바람이 만든 자연의 예술품을 발로 밟으며 걸었다. 

 
 
 

아빠의 눈에는 저런 해초들이 왜 그렇게 잘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백사장 한가운데 있는 미역줄기 비슷한 것을 주우셨다.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해초들은 아빠의 레이더에는 딱하고 걸렸다. 먹어도 될까 말까 고민을 하시다 내가 먹지 말라고 하셔서 바닥에 해초를 두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구름이 얇게 하늘에 깔려 있었으나 날이 더웠다. 연일 뉴스에서 연일 폭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았다고 나오는데 이곳은 비가 올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속에 들어가니 물이 미지근했다. 바다가 깊지 않아서 그런가 바닷물이 몸에 닿는데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밖에 있는 것보다 물속에 있는 것이 훨씬 좋았지만 말이다. 

 

서해, 동해, 남해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제주의 바다이다. 날이 좋았으면 에메랄드빛의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구름이 끼어서 바닷물이 살짝 탁하게 보였다. 

 
 

우리도 튜브가 있으면 둥둥 떠다니면서 놀았을 텐데 튜브가 없으니 살짝 재미가 떨어졌다. 다시 빌리러 가자니 튜브 빌리는 곳까지 걸어가기엔 너무 귀찮았다. 

 
 

튜브가 없지만 그래서 아빠는 개헤엄을 치며 수영을 하셨다. 나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어서 헤엄을 자유롭게 칠 수 없었다. 

 
 
 

파도가 세지 않아서 헤엄치고 놀기 좋았다. 

 

물도 생각보다 깊지 않아서 아이들이 놀기 좋을 것 같았다. 해상구조요원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관광객이 위험한 장소로 가면 호각을 불어 위험성을 알려주었다. 

 

바다 위에 밧줄로 선을 그어 놓았기에 수영을 하다 안전요원의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면 다시 되돌아갔다. 

 
 
 

바닷물도 잔잔하고 물도 그렇게 깊지 않기에 바다에서 수영을 하지만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물속이 크리스털처럼 투명하지는 않지만 물을 내려다보면 물속이 훤하게 보였다. 가끔 지나가는 작은 물고기 떼도 보였다. 

 
 
 

몸은 물속에 있어서 시원한데 머리는 끈적이고 더웠다. 이럴 줄 알았면 핸드폰을 방수팩에 넣어서 올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에서 특별히 하는 것은 없지만 그냥 퐁당퐁당 물에서 노는 것 자체가 재미가 있었다. 

 
 

아침에 산 귤 모자가 아빠에게 잘 어울렸다.

 

아빠가 수영을 하시다 힘들어하셔서 내가 손을 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집에 있는 새 튜브도 생각나고 또한 거대한 백조도 생각났다. 백조를 띄워놓고 둥둥 떠있으며 일광욕을 학고 싶었다. 

 
 

이곳에는 안전 줄이 두 줄이 쳐져 있었는데 낮 시간대에 물이 계속 빠져서 우리는 두 번째 안전라인까지 가야 물이 가슴 정도까지 왔다. 함덕, 이호테우 해변 등 생각보다 제주 해변의 물이 많이 빠졌다. 이곳도 물이 빠지는 시간에는 물이 생각보다 많이 빠져서 해안가에서 바다까지 한참을 걷고, 깊이도 낮았다. 

 
 

아빠는 또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해초를 찾으셨다. 아빠 눈에는 이런 해초가 눈에 왜 그렇게 잘 띄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해초를 들고 무당 흉내를 내셨다. 

 
 

또 먹어도 될까 말까 고민을 하시다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바다 쪽만 봐서 심심했다면 해안가를 보면 또 멋진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라산에 구름이 끼었다면 안 보였을 텐데, 이날은 한라산이 그림과 같이 그곳에 있었다. 

 
 
 

어느 정도 깊은 곳까지 오니 아빠는 키가 작은 편이라 조금 깊다고 느껴지셨고 나도 물이 가슴까지 찼다. 

 
 

물이 어느 정도 찬 부분에 오니 수영하기 수월했다. 

 
 
 

왜 그렇게 아빠 눈에는 이런 것만 보이는 것일까. 신기하다. 

 
 

안전요원분들이 교대로 물속에서 관광객이 선을 넘어가지 않도록 안전선 근처에서 지키고 계셨다. 몇 시간씩 물속에 저렇게 둥둥 떠있는 것도 심심할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야 그분들 때문에 안전함을 느낄 수 있지만.

 
 
 
 
 
 

모래를 집어서 만져보았다. 부드러웠다. 진흙 같은 느낌이랄까. 터키 커피를 마시고 나면 남는 아주 고운 커피가루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디서 또 흘러 들어온 해초일까. 아니면 방금 전 주웠던 그 해초일까. 

 
 

방파제 안쪽이지만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수상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원하게 바다를 질주하는 바나나 보트를 보니 나도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옆에 놀던 아이가 아빠의 실수로 공을 멀리 보내버렸다. 아이 아빠는 찾으러 가려고 했으나 안전요원이 가도 못 잡는다고 포기하라고 하였다. 아이는 아빠 탓이라며 아빠에게 계속 핀잔을 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공은 해안가로부터 멀어져 갔다. 

 
 

한 시간 정도 놀았을까. 물에서 노니 체력이 금방 소진되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1차 안전라인까지도 물속 깊이가 꽤 되었는데 1차 안전선의 물은 이제 무릎 정도 밖에 오지 않았다. 

 
 
 
 

물이 더 빠진 해변에서는 광활한 백사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주의 해변 특히 함덕, 표선은 물이 빠지면 백사장이 넓게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물 빠진 모래사장에 그늘막을 치고 쉬는 사람도 있고, 의자를 가져다 놓고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잔잔한 파도는 끊임없이 해안으로 밀려왔으나 물은 점점 뒤로 밀려나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사람들도 점점 해안선 먼 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속에 있다 물 밖으로 나오니 더웠다. 밀려오는 바닷물도 미지근했다.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밖에 있다 안으로 들어오니 살 것 같았다. 물속에만 있으면 천국 같았다. 

 

아침을 먹은 후 아무것도 안 먹고 물놀이만 했기에 배도 고프고 힘도 들었다. 

 
 

그래서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물기로 촉촉했던 모래사장은 물기가 증발되어 모래는 푸석거렸다. 열을 받아 모래는 따끈따끈했다. 

 

물결이 만든 모래의 흔적은 걸을 때마다 바닥의 울퉁불퉁함이 느껴졌다. 

 
 

모래 위에는 게가 만든 작은 구멍들이 많이 보였다. 지나가던 개를 잡아 손 위에 얹어 사진을 찍어 보았다. 모래색과 비슷해 게가 모래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짐을 찾은 후 몸을 씻기 위해 샤워장으로 갔다. 두 시간 정도 해변에서 놀았을까. 얼굴이 벌써 까맣게 탄 것 같았다. 여름에 제주까지 왔는데 해변에서 놀지 못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제주 여행 동안 해변에 1번 밖에 오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2022년 8월의 여름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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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금, 토, 일, 3일 동안의 여행은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숙소만 잡아놓고 온 여행이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해야 했다. 일요일인 오늘은 체크아웃이 있으니 해변에서 놀기는 힘들 것 같기에 관광할 만한 곳으로 동선을 계획해 보았다. 여름 휴가철이라 어디 가나 사람이 많은 것 같기에 망설여졌다. 아빠가 집에 갈 때 오징어를 사 가야 한다고 하시기에 오후엔 주문진을 들려서 서울로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문진으로 가는 방향에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곳이 정동진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장 최근에 정동진에 온 것은 아마 4년 전인 것 같다. 무릎 수술 날짜를 다 잡아 놓았는데, 갑자기 수술 날짜가 밀렸다. 계획에 없던 빈 시간이 생기니 마음이 붕 떠서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었다. 무릎 수술을 하면 최소 2달은 목발을 하고 다녀야 하기에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걷고 싶었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정동진에 오니 이곳은 얼마큼 변했을지 궁금했다. 여름 휴가철이라 사람이 많아서 주차가 걱정이 되었다. 주차장을 찾아 빙글빙글 돌아다니기 싫어서 유료이기는 하지만 정동진역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했다. 주차를 하고 차 밖으로 나오니 KTX-이음 열차가 정동진역에 정차하고 있었다. KTX와 산천이 다니던 길을 이음이 정차해 있으니 아직은 어색한 느낌이었다.

 

레일바이크 매표소가 정동진역 앞에 있었다. 생각보다 레일바이크가 비싸고 코스가 그렇게 긴 것 같지 않아서 레일바이크는 패스했다. 그리고 8월의 첫 주말은 너무 더웠다. 레일바이크를 타고나면 땀범벅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동해바다를 따라 타는 레일바이크의 풍경은 멋질 것만 같았다.

 

처음 정동진에 온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야간열차를 타고 왔었다. 그땐 구 역사를 이용했는데, 지금은 전 국민이 사랑하는 여행 명소답게 KTX 열차도 정차하는 역이기에 구 역사 옆에 신역사가 새로 만들어졌다.

 

주로 정동진은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이곳에 내려서 해가 뜰 때까지 승강장이나 대합실에서 기다리다 보니 기념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동진역만을 구경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기념 입장권을 구매했다.

 

매표창구에 가서 기념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정동진 온 기념으로 간직해도 좋을 것 같았다.

 

 

따로 입장권을 입구에서 확인하지는 않지만 직원분이 입장권을 사지 않고 입장을 하면 방송으로 입장권을 구매하고 입장하라고 방송을 했다. 신역사에서 구 역사 쪽으로 걸어갔다. 신역사에서 구 역사로 걸어가는 내내 10대 때, 20대 때의 추억들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플레이되었다. 현재의 정동진보다는 과거의 추억이 더 많은 곳이기에 현재와 과거를 비교해 가며 여행하는 맛이 좋았다.

 

과거에 비해 플랫폼이 세련되게 변해 있었다. 과거의 흔적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어 과거, 영동선의 간이역였이였던 그런 감성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지금은 이곳에 왔다는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한, 가벼운 관광지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면 꼰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이 정동진역이라는 비석뿐이었다. 과거에도 누리끼리한 비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더 색이 바랜 것 같았다. 현실의 모습과 과거의 기억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게 변해버려서 과거의 기억이 기억으로만 남아있으면 너무 슬픈 것 같았다.

 

레일바이크는 타보지 못했지만, 플랫폼에 전시해 놓은 레일바이크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타보는 재미를 대신해 보았다.

 

 

정동진역 플랫폼 옆으로 동해바다를 따라 레일바이크의 철로가 있었다.

 

정동진역은 기차를 타기 위한 승객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은 역이었다. 스피커를 통해 레일바이크를 탈 손님들을 레일바이크 탑승장으로 이동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방송이 나오니 어디선가 많은 사람들이 벌떼와 같이 레일바이크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텅 빈 레일바이크 철로에는 관광객들의 힘찬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레일바이크가 올 때마다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소리가 경쾌했다. 우리도 타볼 걸 그랬나! 보고만 있자니 부럽기도 아쉽기도 했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바람도 불지 않을까! 바닷가이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더 덥게 느껴졌다.

 

스피커에서 기차가 들어오니 조심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플랫폼으로 누리호 열차가 느리게 들어왔다.

 

기차는 잠시 동안 정동진역에 선 후 동해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기차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젠 세월이 흘렀기에 신형 누리호가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머릿속에는 이곳에 들어오던 통일호 열차의 모습이 선했다. 간이역이었기에 통일호나 비둘기호가 더 어울렸던 것 같다. 아주 느리게 바닷길을 따라 동해로 가기도 하고, 또 강릉으로 갔다. 이젠 차가 더 편해서 기차보다는 차를 타고 이곳에 오지만, 가끔은 기차를 타고 오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기차가 가고 나니 사람들도 역을 빠져나가고 조금 한적해졌다. 기차역에는 역시 기차가 있어야 사진도 이쁘고 역의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정동진역을 나와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으로 걸어갔다. 아마 요즘 사람들은 모를 것 같다. 왜 정동진에 모래시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때 대한민국 국민들의 빠른 귀가를 하게 만들었던 드라마가 '모래시계'였다. 지금이야 본방을 못 보면 다시 보기 서비스를 이용해서 보면 되기에 굳이 본방 사수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 당시는 본방사수를 못하면 언제 또 재방을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시대였다. 아무튼 모래시계에 나온 기차역이 2군데 있었다. 하나는 전라선의 압록역, 그리고 영동선의 정동진역이었다. 기억에는 여주인공이 정동진역에서 잡혀갔던 것 같다. 그 장면이 모든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간이역인 정동진역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정동진역에는 고현정 소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못 찾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정동진과 모래시계는 동급이 되었다. 정동진이 유명해진 후 몇 년 뒤에 정동진에 모래시계공원이 만들어졌다.

 

정동진역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으나 날이 너무 뜨거워서 짧은 거리도 멀게 느껴졌다.

 

 

우리는 땡볕을 겉고 있는데, 지붕이 있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모래시계 공원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는데 뒤에 레일바이크가 때 마침 지나갔다. 센스가 있으신 관광객이 지나가며 포즈도 취해주시고 가셨다.

 

매번 올 때마다 저 기차는 이곳에 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관심이 없었을 텐데 날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실내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을 쐬면 살 것 같았다.

 

 

 

이 기차는 시계 박물관으로 시계의 과거와 현재를 기차칸을 이동하며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시계라는 물건이 매일 접하다 보니 익숙하지만, 그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시계가 움직이는 원리 등과 다양한 시계를 이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일단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안이 너무 시원했다. 시계만 잔뜩 있다 보니 약간은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약간 무거운 분위기였다. 커다란 괘종시계를 보고 있으니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 박물관에는 여러 가지 시계가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끌던 것은 타이타닉 침몰 시간을 알려주는 회중시계였다. 타이타닉의 침몰 과정을 보았을 이 시계를 보고 있으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 시계만은 지금까지 남아서 타이타닉이 물속으로 사라지는 시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앞부분의 시계들은 고전적인 맛이 느껴지는 시계들이라면 뒤쪽으로 갈수록 현대적이고 심플한 시계들이었다. 기계의 작동원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 시계들도 있고,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진 작품들도 있었다.

 

시계를 통해 인간의 끊임없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시계도 있었다. 뒤 칸으로 갈수록 심플하고 가벼운 느낌이라 처음의 무거웠던 느낌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 기차의 마지막 칸에서 이곳을 다녀간 느낌을 적어보았다.

 

기차의 마지막 칸을 나오면 조금은 허술한 전망대로 가는 계단이 나왔다.

 

전망대에 오르니 모래시계 공원과 정동진이 시원하게 보였다.

 

정동진역 앞 해수욕장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피서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과거에 비해 해변 위의 파라솔은 많이 줄었겠지만 그래도 펼쳐진 파라솔을 통해 여름휴가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정동진 해변 끝에 위치한 썬크루즈호텔은 이제 큰 배와 작은 배 두척이 산 위에 놓여 있었다. 주말에 이용하기엔 부담스럽고 예약하기 힘든 호텔이지만 평일엔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우리도 4년 전 정동진에 왔을 때, 딱 한 번 저곳에서 하루를 지냈다. 다행히 그때가 평일이어서 주말 요금보다 저렴한 가격에 지낼 수 있었다.

 

 

 

시계 박물관을 나온 후 모래시계 공원의 모래시계와 해 시계를 보았다. 시계 박물관을 다녀와서 그런지 두 시계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모래시계는 1년에 한번 위아래의 위치를 바꾸기에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해 시계는 거의 정확한 것 같았다. 해 시계가 가리키는 위치에 30분을 더해야 핸드폰 시간과 일치했다.

 

 

박물관 관람 입장권을 제시하면 커피가 50% 할인이 되기에 박물관에 다시 들어가 커피 2잔을 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니 기분도 좋아지고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카페인의 힘을 얻어 다시 정동진역으로 되돌아갔다.

 

정동진 해변도 망상해수욕장처럼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찐 여름인 것 같았다.

 

주차해둔 차를 타기 위해 정동진역 주차장으로 갔다. 차는 햇빛에 달궈져 찜질방처럼 따뜻했다. 천연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빨간 기관차가 녹색의 컨테이너를 끌고 푸른 하늘을 벗 삼아 바닷길을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정동진을 나와서 주문진으로 향했다. 정동진에서 주문진은 강릉의 끝과 끝이었다. 보통은 7번 국도를 따라가는데 가는 길에 잠깐 샛길로 빠져서 갔다. 가다 보니 연꽃이 핀 마을이 보여서 잠시 차를 세웠다.

 

 

이렇게 이쁜 곳이 숨겨져 있었다니! 이렇게 이쁜데 사람들은 이곳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연꽃이 환하게 피어있었다. 그늘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연꽃이 너무 이쁘게 피어 있었다.

 

 

 

간간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를 세워 사진을 찍고 이곳을 떠났다. 우리도 더 있고 싶었으나, 날이 너무 더웠다. 우리도 빨리 사진을 찍고 이곳을 떠났다. 잠시 들린 곳이지만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주문진에서 금보다 비싸다는 마른 오징어를 샀다. 요즘 오징어가 잘 안 잡혀서 오징어가 금값이라고 했다. 마른 오징어를 실고 이제 서울로 향했다. 평소의 여행 패턴이라면 더 늦게 서울로 향했을 것 같은데 아빠와 나 둘 다 더위에 지쳐있어서 평소보다 빨리 서울로 향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인제 양양 터널까지는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날도 너무 좋았다. 국내 최대 길이인 11킬로미터의 터널을 지나고 나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터널을 나오니 비가 내렸다. 그리고 갑자기 차가 많아진 것 같았다.

 

내린천 휴게소에 들어가기 위해 휴게소 입구로 들어섰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밀렸다. 휴게소이기는 하지만 워낙 유명한 휴게소이다 보니 이곳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많았다.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가 주룩주룩 내렸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산안개가 자욱한 게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이 맛에 산을 여행하는 것 같다.

 

 

내린천 휴게소에 들려서 먹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점심을 먹지 않았기에 빨리 내린천 휴게소에서만 먹을 수 있는 황태구이정식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품절이어서 주문이 되지 않았다. 아! 이때의 절망감이란! 아무튼 내 사랑 돈까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떡볶이도 함께 주문했다.

 

 

부슬부슬 밖에는 비가 내리고 산안개가 자욱한데 창문마저 삼각형 모양으로 숲속 산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돈까스가 예상보다 훨씬 큰 왕돈까스였다. 보기만 해도 침이 입속에 고였다.

 

왕돈까스를 먹고 나니 에너지가 급속도로 충전되었다. 돈까스도 먹고 휴게소에서 페북에 사진도 올리며 정체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계속 휴게소에만 있을 수 없기에 적당한 시점에 휴게소에서 나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서울로 향했다. 거기에 비까지 오니 아빠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 보였다. 아무튼 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뿐이었다.

 

 

우리 앞을 지나가던 버스 뒤편에 한주 전에 탔던 완도-제주 페리인 실버 클라우드호 사진이 붙어있어서 나도 모르게 반가웠다. 그래도 제주 갈 때 한번 타봤다고 이렇게 완도에서 먼 강원도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주문진에서 오후 3시쯤 출발했는데 서울에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코로나 4단계로 여행도 이제는 더 쉬지 않은 것 같다. 해외는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주어진 조건에서 충실히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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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삼척 미인폭포를 본다고 약간의(?) 등산을 했더니 숙소로 돌아오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2박 3일 여행이라 시간이 왜 그렇게 촉박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냥 뭐 조금하면 몇 시간이 휘리릭 지나가 버렸다. 몸이 무거워 잠시 숙소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었다.

 

 

한두 시간 쉰 것 같다.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6시까지이기에 튜브를 챙기고, 방수팩에 폰을 넣었다. 저번 제주도 여행 때를 위해 구매한 케이스형 방수팩인데 뭔가 문제가 있는지 스멀스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물이 아주 티 나지 않게 들어왔다.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미련하게 또 똑같은 방수팩을 들고 왔다.

 

 

입구에서 QR코드를 찍고 손에 온도 체크용 스티커를 붙였다.

 

 

입구에서 해변까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 새하얀 모래가 태양빛을 받아서 따뜻했다. 그래도 우리가 온 시간이 더위가 한풀 꺾인 시간대여서 따스했지, 한낮에 왔으면 발바닥에 불이 나지 않았을까?

 

물속을 알 수 없기에 처음에 물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뉴스에서 너울성 파도로 사람들이 죽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는 계절이라 미지의 장소에서 처음 수영하는 마음이 떨렸다.

 

해안가에 무섭게 치던 파도와는 달리 물속에 들어오니 보기보다 바다가 깊지도 않고 파도도 심하지 않았다.

 

해보지 가보지 않은 것이기에 동해바다에서 수영한다는 것에 너무 겁을 먹은 것이 아니었을까.

 

전날 아빠가 주운 튜브에 몸을 실었다. 이 작은 튜브가 육중한 내 무게를 견뎌주는 것이 신기했다. 지방이 많아서 무게 대비 밀도가 낮아서 잘 뜨는 것이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먼바다에서 해안으로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왔다. 파도에 몸을 맡기다 보면 나는 어느새 저 멀리 해변으로 밀려갔다. 바다 위의 부표가 파도에 밀려가듯이.

 

 

우리는 파도에 밀려 파도가 데려다주는 곳으로 둥둥 떠다녔다. 간혹 차가운 바닷물이 우리 몸을 휘감고 지나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수평선 저곳까지 가고 싶지만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부표가 쳐진 곳, 아니 부근까지였다. 부표 근처로 가기 전 갑자기 물의 깊이가 깊어짐이 느껴졌다.

 

 

한낮의 태양빛이 한풀 꺾인 늦은 오후라, 8월의 첫 주였지만 물이 꽤 차가웠다. 시원함과 차가움의 중간이 맞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찬 바닷물이 유입될 땐 온몸을 싸한 기분이 훑고 지나는 것 같았다.

 

 

 

어떤 이들은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물고기 구경도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코로나 때문에 되도록이면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았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이리저리 다녔더니 물에 들어간 지 한 시간여 만에 방전이 되었다.

 

물 밖으로 나오려는데 바닷물이 해변을 친 후 빠져나가는 힘이 너무 강해서 힘없이 풀린 다리를 후들후들하게 흔들었다.

 

해변의 가장 자리에 앉아서 물의 힘을 느껴보았다.

 

 

역시 노는 것도 체력이 돼야 더 즐겁고 오래 놀 수 있는 것 같다. 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버리는지. 물에 발만 두 번 담갔을 뿐인데 주말여행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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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부산여행을 가는 바람에 또 블로그가 밀려 버렸다. 여행가서 여유롭게 블로그 작성하고 운동하고 차한잔 마시며 고상함을 떨고 싶었는데, 팔팔하게 생기가 넘칠 나이에 풀이 죽은 파처럼 숙소에만 들어오면 항상 널브러져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블로그를 써야지 써야지 하루에 몇 번을 다짐했지만, 결국엔 다짐만 하다 여행이 끝나버렸다.

 

삼척 미인폭포는 작년인 2020년 여름에 하이원 추추파크에 갔을 때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계속되는 장마로 인해 미인폭포로 가는 길이 위험해서 폭포로 가는 길이 통제되어 갈 수가 없었다. 미인폭포 주차장만 구경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엔 동해에서 삼척과 태백의 경계인 곳까지 가는 것이였다. 고개를 쳐 들어야 정상이 보이는 산들의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서 삼척으로 갔다. 동해에서 태백으로 가는 국도가 좋아서 그래도 아주 예전에 비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영동선 기찻길을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다. 가끔 3~4량의 객차를 달고 산길을 천천히 가는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겠다고 청량리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 갔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친구와 커피숍에서 놀다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서 야간열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기차가 만석이라 무궁화호 객차 입구 계단에 앉아 밤새 갔었다. 틈으로 들어오는 칼바람은 무지 추웠다. 그래서 마신 와인 한병이, 두병이 되고 세병이 되었다. 그리고 맥주까지 나중에 정동진역에 내릴 땐 짬뽕으로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팠다. 영동선 철길을 보고 있으니 20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이원 추추파크에서 출발한 관광열차가 옛영동선 철길을 따라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 구간은 전국에서 하나 밖에 없는 스위치백 철도 구간으로, 처음 스위치백을 접했을 때 너무 신기하면서 마음이 떨렸다. 드디어 기차가 뒤로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철덕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지금이야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하다 보니 스위치백 철도가 시시해 보이기도 하지만, 처음 접했을 때는 사뭇 BTS를 만나는 느낌과 비슷했다. 영동선철도가 이설되면서 기존의 철도를 이용해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구간이 길지는 않지만 스위치백 철도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동해에서 출발한 우리는 벌써 해발고도 700미터까지 올라왔다. 점점 위로 올라올 수록 귀가 멍멍했다. 미인폭포는 삼척과 태백의 경계에 있었다. 위치상으론 태백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행정구역은 삼척에 속해 있었다.

 

미인폭포 주차장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외진 곳에 있다보니 주차된 차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인스타에서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끊임없이 관광객이 오는 곳이였다.

 

미임폭포 입장료는 1000원이라고 적혀 있지만 누군가가 서서 강제로 징수하지는 않고 있었다.

 

강제로 입장료를 내는 곳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이 무사히 마무리 되기를 바라며 불전함에 2000원을 넣었다.

 

미인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산길을 계속 내려가야 했다. 그래서 미인 폭포를 보러가는 길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만, 미인폭포를 본 후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땀으로 샤워를 했다. 미인폭포를 보기 위해 산길을 내려가는 길에 나무사이로 하이원 추추파크가 보였다. 작년엔 저곳에서 일박을 했었다. 트레인 빌에서 하루를 지냈는데, 숙소가 너무 오래된 것을 빼고는 너무 좋았었다. 조금만 관리가 잘된다면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오래된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내려가는 길이라 편하기는 했지만,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멋진 풍경을 보러가는 길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내려갈 때는 숨도 안차고 편하게 내려갔지만, 올라올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종종 폭포를 본 후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다들 숨을 몰아쉬느라 힘들어 보였다. 이놈의 마스크가 더 숨쉬기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피아노의 건반 같이 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피아노 폭포를 볼 수 있었다. 웅장하게 떨어지는 폭포는 아니지만 은빛의 물줄기가 반짝이며 떨어지는 모습이 환상적이였다. 사뭇 물소리가 피아노 소리같이 느껴졌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갔다. 잘못해서 넘어지면 이 세상과 이별을 할 것 같아서 발을 헛딛지 않게 조심조심 걸었다.

 

중간에 절이 있었다. 이렇게 깊은 살골짜기에 절이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대한 절이 아니였다. 아주 작은 본당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진 속세의 번뇌를 잊기 위해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곳을 찾아 이곳에 절을 지은 것 같이 느껴졌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함으로 이 길이 시끌시끌해졌지만, 미인폭포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이곳은 얼마나 고요했을까?!

 

절을 지나니 숲사이로 미인폭포가 보였다. 사진으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푸른빛의 물은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리트비체에 처음 갔을 때 봤던 물빛이 생각났다. 푸른 물빛을 본적이 없기에,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본 푸른 물빛은 우리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 잡아 버렸다.

 

멀리서 봤을 때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면 얼마나 멋질지 기대가 되었다.

 

 

폭포를 보기 위해서 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폭포를 살짝 보고 나니 내려가는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다.

 

 

점점 폭포와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폭포의 물소리가 들렸다.

 

폭포를 보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뽀얀 우유빛 같기도 하고 물에 푸른 색소를 풀어 놓은 것 같아 보였다.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다. 진짜 언제 또 오겠냐는 생각으로 카메라의 버튼에서 손을 땔 수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진을 확인해 보니 완전 대실패였다. 측광을 잘못 맞춘 것인지 내가 원하는 그런 느낌의 색감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사진이 어떻게 찍히는지 알지도 못하기에 열심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이 내 뜻과는 달리 잘 찍히지 않아서 나중에는 폰을 꺼내서 폰으로 찍었다.

 

 

역시 사진기 보다 폰이 더 몽환적이고 뽀얀 색감을 잘 잡아 냈다. 인스타에서 보던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래! 이런 몽환적인 뽀얀 물의 색을 찍고 싶었다.

 

 

2000년 대에는 사진을 찍으면 현실적으로 찍는다고 해야 할까! 되도록이면 사실적인 느낌이 들게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게 2000년대의 유행하는 사진 스타일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은 다양한 필터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다 보니 사실적인 느낌보다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사진,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이 유행이 되어 버렸다. 나도 요즘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을 찍고 싶은데 예전 감성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지 이도저도 아닌 사진이 되어 버리곤 한다.

 

그래도 카메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카메라로 한컷을 찍고 핸드폰으로도 찍고 같은 사진을 두개의 장비로 번갈아 가며 찍었다.

 

한국에도 이런 물빛을 가진 곳이 있다는 것이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떨어지는 물빛은 일반적인 폭포와 비슷했다. 그러나 이 물이 모이니 푸른 빛을 띠었다.

 

푸른 물빛과는 대조적으로 절벽의 돌 빛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거대한 절벽을 보고 있으니 지구의 시간이 느껴졌다. 수백만년 전 이곳은 어떤 곳이였는지 상상해 보았다. 시간의 흐름이 만든 지층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푸른 물의 느낌은 어떤지 궁금했다. 뭔가 물을 만지면 비눗물을 만지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는 멋지지만 선뜻 물에 손을 담그는 것은 망설여졌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사진기를 조금 더 잘 다룰수 있었다면 더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2프로 부족한 사진을 보면서 만족과 불만족의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그냥 핸드폰으로 더 열심히 찍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폭포로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기에 중간중간 쉬면서 올라갔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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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맞이해서 엊그제 부산에 왔는데, 오늘 태풍 찬투가 부산지역을 통과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밖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우산을 쓰고 가도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졌다. 15년 만인가? 부산에서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보니 역시 태풍의 위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바람이 심하게 불기에 오늘은 영화관에서 '보이스'를 보고 신세계 센텀점 구경을 갔었다.

 

2021년 7월은 정말로 무더웠던 것 같다. 9월 중순이 넘어간 지금은 언제 날이 더웠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해졌지만, 7월과 8월 대한민국은 펄펄 끓는 것 같았다. 동해보양컨벤션호텔 온천장별관에서 나와 호텔에서 망상해수욕장으로 연결된 육교를 지나 망상해수욕장으로 갔다. 호텔에서 해수욕장까지 거리가 그렇게 멀지가 않은데 내 몸은 벌써 온몸에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땀을 흘리면 살이라도 빠져야 하는데, 땀을 흘린 만큼 더 먹어서 그런가 살은 빠지지 않고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대략 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지정된 출입구만을 이용해야 했다. 7월부터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의 급증으로 인해 많은 지역들이 지역확산을 막기 위해 이렇게 출입구에서 발열 체크 및 QR코드 또는 안심콜을 이용해 해수욕장 이용객을 관리하고 있었다.

 

아빠와 나는 늦은 시간, 거의 6시가 다 된 시간에 방문했기 때문에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발열 체크를 마치면 스티커를 붙여 주는데, 체온에 따라 색이 변하는 스티커였다.

 

오! 해수욕장이 너무 넓었다. 좌우 길이도 길지만, 출입구에서 해변까지 상당히 거리가 길었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사람들로 가득 찼을 텐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모래가 상당히 고왔다.

 

이 당시는 저녁 6시 이후엔 바다수영이 안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6시 이전의 물놀이를 즐기고 해수욕장을 떠나서 해수욕장이 한산했다.

 

 

해변에서 이렇게 노는 것은 안전요원이 뭐라고 하지 않으나, 물속에 들어가면 호루라기를 불며 물 밖으로 나오게 했다.

 

날이 너무 습하고 더워서 발이라도 물에 담그니 온몸이 짜릿하게 시원했다. 마음속으로는 풍덩 온몸을 내던지고 싶었지만, 안전요원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발만 물에 담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처럼 늦게 이곳에 온 관광객들은 아쉽지만 발만 물에 담그며 놀아야 했다. 밖에서 보기엔 깊어 보이는데 물속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한 번도 동해바다에서 해수욕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동해바다를 그렇게 많이 왔지만 한 번도 해수욕을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매번 동해에 올 때가 겨울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바다에서 계속해서 파도가 밀려왔다. 파도가 만든 작은 포말들은 바람을 타고 안개처럼 육지로 넘어왔다. 안경을 보니 작은 물방울들이 붙어 있었다.

 

파도가 해변을 칠 때보다 해변에서 나갈 때의 힘이 더 센 것 같았다. 은근 해변에 서있는 것이 힘들었다. 큰 파도가 칠 때마다 정신이 없었지만, 그 파도가 다시 바다로 나갈 땐 해변의 모래를 끌고 나갔다. 그 힘이 발목에 느껴졌다. 정신을 안 차리면 나도 같이 바다로 빨려 나갈 것 같았다.

 

누군가는 이 덥고 습한 날 해변을 달리고 있었다. 솔직히 부러웠다,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여러 번의 무릎 수술 후 달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해변을 달리던, 강가를 달리던 달리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질투심이 생겼다. 한창 잘 달릴 때는 15킬로 정도는 매일 달렸는데, 5번의 무릎 수술 후 의사선생님이 더 이상 무릎에 충격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달리기 같은 운동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수영을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수영장 근처도 못 가고 있다.

 

 

이렇게 파도가 센데 과연 내일 바다에서 놀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간혹 너울성 파도로 인해 사람들이 익사한다는 뉴스가 생각났기에 저런 파도에 나도 끌려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가 치지 않은 인도네시아 롬복의 길리 섬에서의 바다 수영이 그리워졌다.

 

 

 

수영은 하지 않았지만 해변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게 많이 되었다. 아빠랑 나는 둘 다 벌써 에너지가 방전되어 버렸다.

 

 

서쪽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동해바다는 조금씩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가 지난 지 한 달 반이 지나서 낮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해가 지는 시간은 7시가 넘었지만, 이제는 해가 조금 싸 짧아지는 게 느껴졌다.

 

 

여행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여행만 오면 평소보다 시간이 3배, 아니 4배는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아침에 서울을 출발해 오후에 동해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조금 놀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어 버렸다.

 

 

 

 

저녁을 먹기 위해 해수욕장을 떠나기 전 점프샷을 찍었다. 점프샷은 찍는 사람이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찍어야 점프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평소엔 쭈구려 앉는 자세를 하지 않는데, 이날은 나도 모르게 한쪽 다리를 접고, 다른 다리는 편 자세로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점프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어디선가 튜브를 주워오셨다. 코로나 이후로는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줍지 않게 되는데, 아빠는 튜브가 귀엽다며 숙소로 가져가신다고 하셨다. 다음날 나는 저 튜브를 가지고 물놀이를 했다. 하마같이 큰 성인이 어린이용 튜브를 가지고 노니 튜브가 버틸까 생각을 했지만, 생각보다 튜브가 내 몸무게를 잘 버텨 주었다.

 

 

해변에서 짧게 놀았지만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라 드넓은 망상해수욕장이 더 넓게 느껴졌다. 해수욕장을 걷던 중 모래 속에서 새싹을 피운 식물이 보였다. 이런 척박한 모래 속에서 어떻게 새싹을 피웠을까! 이 새싹이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흐른 후 가보면 그때도 과연 있을까?

 

 

이 해수욕장은 왜 그리도 넓은지 걸어도 걸어도 입구가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한창 사람이 많은 땐 이 넓은 모래사장이 파라솔로 덮여있을 상상을 해보았다. 장관일 것 같았다. 지금은 넓은 해변에 몇몇 사람만 볼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해수욕을 즐겼을까! 코로나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는 것 같았다.

 

수돗가에서 모래가 묻은 발과 튜브를 씻었다. 그리고 저녁에 먹을 프라이드치킨을 주문했다. 튀기는데 3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해수욕장 주변에 이국적인 느낌의 카페가 몇 군데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더 좋은 날로 저렴한 오늘의 커피부터 프리미엄 커피까지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었다.

 

금방 숙소에 가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라 커피만 두 잔 주문했다.

 

아기자가 한 소품들과 화분들이 아빠의 관심을 끌었다. 이 카페로 온 이유 중 하나는 화분에 이쁜 꽃들이 많아서였다.

 

 

2박 3일의 여행 중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 버린 것 이 아쉬웠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해 여행의 첫날은 해변에서 놀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은 날이었다.

 

 

카페에서 사진 찍고 이야기를 하느라 치킨을 픽업하러 갈 시간보다 조금 늦게 찾으러 갔다.

 

 

편의점에 들려 다음날 먹을 라면과 도시락을 산 후,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이럴 땐 별관 건물이 아닌 본관 건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조금 밖에 걷지 않았는데, 또 옷이 땀으로 젖어 버렸다.

 

동해 여행의 첫날 첫 끼는 멕시칸 치킨으로 했다. 비비큐나 KFC 같이 겉은 두껍고 바삭한 맛과는 달리 어릴 적 먹어본 치킨의 맛이 났다. 이러니 여행 오면 그렇게 많이 움직이고 돌아다녀도 살이 더 쪄서 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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