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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가는 비행 편은 다음날이지만 오전 비행 편이라 이날이 제주여행의 마지막 날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날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 봄이니 꽃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곳이면 좋으련만 아직 5월의 제주는 녹음이 우거지고는 있지만 그렇다 할 꽃을 볼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또 열심히 벼락치기 공부하듯 전날 저녁에 마지막 날 갈 곳을 찾아보았다. 블로거들의 도움을 받아 보롬왓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보롬왓은 바람이 머무는 곳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생소했다. 처음에는 '보롬 왓'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롬왓'이었다. 왠지 왓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태국의 사원들이 생각났다.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곳이라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했다.

 

작은 농장쯤으로 생각하고 온 곳인데 돌아다니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그중 반은 카페의 빈백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지만. 입구에 들어서니 화사한 꽃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꽃의 화사함에 기분도 쨍해지고 눈도 시원했다.

 
 

꽃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이곳을 지나면 또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입구에서부터 설렘이 가득했다.

 
 

온실 이곳저곳에 포토 스폿이 있어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인스타 갬성이 물씬 느껴졌다. 완전 인스타용 사진을 찍기 딱 좋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보롬왓의 사계를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 꽃이 피느냐에 따라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볼 수 있는 풍경이 달라졌다.

 
 

남성들의 가슴보다는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꽃들의 배치들이 마음에 들었다.

 
 

또 다른 온실로 오니 하늘에서 풀들이 땅으로 커튼처럼 뻗어 있었다. 이런 식물을 식물원 등에서 화분에 담긴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이것을 이렇게 길게 배치하니 또 다르게 보였다. 풀숲을 지나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하늘에 둥둥 매달린 화분들이 동화 속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안에서 찍는 사진도 멋지지만 뒤에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고 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제대로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없어서 옆쪽에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에서 풀들이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온실에는 수국이 가득했다. 5월의 제주는 아직 노지에는 수국이 만발하지 않아서 이렇게 온실에서나 수국을 볼 수 있었다. 6월이 되면 제주 곳곳에서 수국을 볼 수 있는데 그때는 시간이 되지 않기에 아직 조금 이르지만 수국에 흠뻑 빠져 볼 수 있었다.

 
 
 

휴애리에서 수국을 실컷 보고 와서 별로 감흥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꽃은 보면 볼수록 또다시 빠져드는 것 같다.

 
 
 

휴애리의 수국은 엄청난 규모의 수국이 주는 압도감이 있다면 이곳은 가정에서 키운 것 같은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졌다. 가정집 화단에 심어 놓은 것 같은 수수함이라고 해야 할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곳저곳 포토 스폿이 있어서 갬성 가득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역시 이런 곳에서는 원피스에 챙이 있는 밀짚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이 이쁜 것 같다. 아무리 아빠와 내가 화사함 가득한 곳에서 이쁘게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요즘 MZ 세대들이 찍는 사진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을 많이 봤는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서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수국 세상을 지나니 또 다른 식물의 세상이 나타났다. 꽃병에는 보라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보라 유채꽃을 바라보았다. 노란 유채꽃은 익숙하지만 처음 보는 보랏빛 유채꽃이 신기했다.

 
 
 
 
 

규모가 크지는 앉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실내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즐거움을 주었다. 이곳은 전반적으로 화려하거나 강렬하지는 않았다. 대신 은은하게 우리가 이곳에 스며드는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그다음 온실은 초록세상이었다. 작은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어찌 이렇게 푸른지. 마음까지 같이 초록빛으로 맑아졌다.

 
 
 
 

초록빛 가득한 온실 옆에는 꽃 가게도 있었다. 딱딱한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나에게는 이곳은 천국같이 느껴졌다. 무미건조한 서류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도 힘겹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우리들. 영화 연풍연가의 대사가 생각났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가끔 이런 곳에서 이런 자연과 함께 지내며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은 한군데 밖에 없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온실이 끝나는 부분에 나오는 보롬왓 카페에 가야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화장실로 가는 길에 있는 창문 넘어 보이는 보롬왓의 풍경이 너무 좋았다. 대신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화장실이 많이 붐볐다.

 

카페 밖으로 나갈까 점심시간이 되기도 했고 더위에 지치기도 해서 잠시 카페에서 쉬어 갔다. 의자에 앉아서 쉬고 싶었는데 들판이 보이는 의자 자리는 전부 차서 빈백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오히려 의자보다 빈백이 놓인 곳이 생각해 보니 훨씬 더 좋았다.

 

통창문을 통해 보이는 보라 유채밭과 오름. 그냥 편하게 누워서 앉아서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카페 곳곳도 식물로 데커레이션 되어 있기에 식물원에 와있는 착각이 들었다.

 

카페에 왔으니 예의상 커피는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보름 커피와 보롬 라테, 그리고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파서 스콘과 딸기가 듬뿍 들어간 빵도 같이 주문했다. 이렇게 4개를 주문하니 거의 3만원 가까이 나왔다. 이럴 거면 점심을 사 먹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나오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주문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대신 멋진 풍경을 보며 마시는 커피는 꿀맛 같았다. 풍경 때문인지 커피가 원래 맛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다.

 
 
 

빈백에 누워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잡생각이 저 구름을 따라 하늘 높이 사라졌다. 진짜 멍하게 누워있을 수 있었다.

 
 

아빠도 처음에는 뭐 이런 의자가 있냐 뭐 투덜거리셨는데 점점 빈백의 편안함에 빠져드셨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보라 유채와 오름. 그림 같아 보이는 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니 시간 가는지 모르고 우리는 카페에 있었다.

 
 

멍 때리는 것이 유행인 요즘. 불멍이니 물멍이니 멍 때리며 잡생각을 없애는 것이 현대인들의 휴식인데 이곳에서는 오름을 바라보며 오름멍을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멍을 때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멍하니 하늘을 보며 누워본 것 같다.

 
 

이제 충분히 쉬고 멍도 때렸으니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실내에 있다 밖으로 나오니 더웠다. 그러나 이곳의 이름이 바람이 부는 곳 아닌가. 들판을 가로질러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조금 식혀주었다.

 
 
 
 

보랏빛을 띠는 이 꽃은 라벤더가 아닌 보라 유채였다. 온실에서도 봤지만 밖에 나오면 넓게 펼쳐져 피어있는 보라 유채를 볼 수 있었다.

 

 
 

핸드폰으로 찍으면 연보랏빛으로 찍히는데 사진기로 찍으면 핑크와 보라색의 중간 빛으로 찍혔다.

 
 
 

보랏빛과 푸른빛의 콜라보. 아빠는 노란색 티를 입고 계셔서 사진이 꽤 괜찮게 찍혔다.

 
 

꽃이 더 풍성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내가 자세를 낮추어 사진을 찍어 보았다. 사진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다. 자세를 낮추어 사진을 찍으니 더 꽃이 많아 보이고 이곳이 더 넓게 보였다. 또 다른 시각으로 이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움직이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누군가가 날린 비눗방울이 보라 유채 위를 날아다녔다. 비눗방울이 떠져서 시아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도 모르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진을 몇 장을 찍은 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처음 본 보라 유채. 이 꽃이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기에 아쉽지 않게 수많은 컷을 찍은 것 같다.

 

보라 유채 옆에는 열무 꽃밭이 있었다. 처음에는 잡초가 무성한 밭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열무라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 본 열무 꽃과 열무밭. 열무에서 나는 알싸한 향이 코끝을 시리게 하는 매운 향기가 났다.

 

알싸한 열무 냄새가 좋았다. 제주의 습한 공기와 코끝을 알싸하게 만드는 냄새. 우리의 발밑에 우리가 아는 그 열무가 자란다니 신기할 뿐이었다.

 
 
 
 
 
 

열무밭이 끝나면 또다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

 
 
 
 

바람이 불면 메마른 흙바닥의 흙이 날리기는 했지만 바람에서 흙의 냄새가 났다. 그늘이 없는 땡볕이기에 구름이 살짝 낀 오늘 같은 날이 방문하기 좋은 것 같다.

 
 

빈 공터에는 또 어떤 식물을 키울까 궁금했다. 또 어떤 식물들이 빈 공터에 심어질까.

 
 

넓지는 않지만 청보리가 자라고 있었다. 아직 이곳의 청보리는 익지 않아서 파란 물결을 이루었다.

 

돌담길 한편에는 화이트 핑크 샐릭스(버드나무의 일종)가 심어져 있었다. 하안 색과 핑크빛을 가지고 있기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렇게 돌담길에 기대어 사진을 찍어도 분위기가 좋았다.

 

잎의 끝은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하얗게 눈이 내린 것처럼 보였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멀리서 전신 샷을 찍는 것보다 주므로 사진을 찍는 것이 더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나무의 끝만 색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멀리서 보면 나무에 꽃이 활짝 핀 것 같이 보였다.

 
 
 
 
 

블로거들이 올린 사진들을 보고 온 곳 있다. 처음에는 입장료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을 들었었다. 그런데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작은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리고 핑크빛 나무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작은 계단 같은 것도 있었다.

 

깡통 열차는 열심히 아이들을 태우고 보롬왓을 돌고 있었다.

 
 
 

거의 이곳에서 3시간을 넘게 있었던 것 같다. 커피숍의 빈백에 누워 한 시간 넘게 있었으니 구경하는 데는 2시간 정도 있었지만.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직은 5월이지만 제주의 날씨는 더웠다. 넓은 들판을 걷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이 느껴졌다. 카페 앞 벤치에는 빈자리가 많아졌다. 바쁜 여행객들은 또 바쁘게 빠르게 사진을 찍고 이곳을 떠났다. 한 번의 큰 물살이 지난 것 같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 없이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만족감이 컸다.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특히 카페의 통창문을 통해 본 풍경은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각나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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