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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기분 좋게 또 걷기 시작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었지만 너무 잘 먹어서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날이 왜 그렇게 더운지 아직 여름의 문턱도 들어서지 않았는데 등은 벌써부터 땀으로 흥건했다.

 

날이 덥기는 했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조금 식혀주었다. 봉추반점 옆에 있는 우도 성당. 단층의 성당 건물이 아담하고 성당의 뜰은 평온했다. 해안은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고 복잡한 반면 우도의 내륙은 조용했다.

 

성당이 아기자기하고 친근한 느낌을 느낄 수 있지만 마음만은 경건하고 한 번 더 내 마음을 가지런하게 가다듬었다.

 

걸으며 가끔씩 지도를 보기는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그냥 큰 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올 테니까.

 
 

길가의 돌담을 따라 자라는 꽃과 나무들.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자라는 길가의 생명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봄이 왔기에 또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본 작은 시골학교. 수도권의 딱딱한 학교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연휴라 오늘은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는 텅 빈 학교이지만 이곳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메마른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수많은 학생들이 어쩌면 조금 불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바다가 있고 들판이 있는 이곳이 아이들에게는 천국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시속 30킬로미터를 이곳에서도 준수해야 했다.

 

마을을 나오니 다시 넓게 들판이 펼쳐졌다. 전날 가파도에서 이런 들판을 실컷 보고 와서 감흥이 없을 것이라 생각이 되었는데 이곳은 우도이니 우도만의 들판을 보고 있으니 또 가슴이 살랑살랑 설레었다.

 
 

급할 게 없었다. 아직까지는 배 시간도 많이 남았기에 천천히 걸었다. 우리 옆을 지나가는 관광객이 탄 카트가 종종 부럽기는 했지만.

 
 
 

농부들은 바빠 보였다. 빈 밭에는 트랙터가 바쁘게 밭을 갈고 있었다. 현무암은 저렇게 검은데 땅은 또 왜 그리도 황톳빛 인지.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땅을 농부는 한해 농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많은 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만이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대신 바람의 소리만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늘 하나 없어서 한여름은 조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5월이 이 길을 걷기 딱 좋은 시점이 아닐까.

 
 
 

이제 저 멀리 바다가 손톱만큼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길의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뼛속까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간절했다.

 

조금씩 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의 멋, 제주스러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제주의 돌담길에서 제주스러움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수평선. 섬 하나 없이 끝없이 펼쳐진 길에서 나는 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노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 한 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저런 곳에 한 달 정도 아니 일 년 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또는 자전거를 타며 여유롭게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 접어드니 사람 사는 향기가 났다. 지붕이 낮은 제주의 가옥들. 지붕을 알록달록하게 칠해서 거리의 벽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을에서도 돌담은 집과 집의 경계를 지어주고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며 또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은 집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레드 카펫보다 멋진 꽃길이 집으로 이어져 있었다.

 

무채색의 돌담 사이 핀 핑크빛의 꽃길은 동화 속 어딘가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빠는 부러운 듯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바라만 보셨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보였다. 어릴 적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제주의 바다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해외로만 나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제주에 자주 오다 보니 제주의 바다색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빛의 바다색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바다 위에 동동 떠있기에 해녀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군가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잘 부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참을 서서 구경을 했다.

 
 

제주에는 두 곳의 비양도가 있다. 한 곳은 한림 쪽에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우도에 있다. 이곳의 비양도는 우도 본섬과 아주 살짝 떨어져 있다.

 

우도와 비양도는 연결되어 있기에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전동카트 및 차로 비양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비양도에는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의 텐트가 보였다. 하루쯤은 차박이나 캠핑을 하며 관광이 아닌 이곳을 여유롭게 느껴보고 싶었다.

 
 
 

더위에 체력이 바닥난 아빠는 비양도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비양도는 들어가지 않았다.

 
 
 

비양도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 바다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그래도 바다에 왔으니 바닷물은 손에 담그고 가봐야 하지 않을까.

 
 

물속이 다 보일 만큼 맑은 바닷물이 좋았다. 물속으로 첨벙하며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눈으로만 시원함을 느껴야 했다.

 
 

비양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물에 비쳤다. 우리도 전동카트를 빌려서 구경할 걸 그랬나라는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보는 풍경이 좋았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내가 보고 싶은 만큼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으니.

 
 
 
 

아직 바닷물은 차가웠다. 시원한 바닷물에 손 한번 담그는 것으로 더위를 식힐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냥 좋았다.

 

돌담 너머로 한치(?)를 말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해안 도로를 따라 걸었다. 지나다니는 차와 버스, 자전거, 그리고 전동카트로 해안 도로는 번잡했다.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걷는 맛도 좋았다.

 

6년 전에 우도에 처음 와서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았던 추억이 생각났다. 내리막길에서 넘어진 사람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픈 것보다 얼마나 창피했을까.

 
 
 

눈은 바다를 보고 있으니 시원했지만 이곳도 그늘이 없기에 무척 더웠다.

 

빨리 카페에 가서 시원한 음료 한잔 마셨으면 좋겠는데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지 않아서 계속 걸었다.

 
 

우리가 지나왔던 길에 저렇게 이쁜 곳이 있었다는 것을 한참을 걸은 후 뒤를 돌아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 같다. 한창 아름다운 시절, 행복한 시절에는 그때가 아름다웠는지 행복했는지 알지 못하듯이. 한참을 달려와 뒤를 돌아봐야 그 아름다움을 알고 그리워한다.

 
 

차와 사람이 뒤엉켜 복잡한 도로이지만 그래도 풍경만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1층은 카페로 사방 어디서든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통창문을 통해 미지근하고 끈적이는 바닷바람도 좋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이곳에서 풍경 사진도 찍고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아빠와 나는 사진을 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빠는 SNS에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올리셨다.

 
 
 

카페의 담장 너머로 해변이 보였다. 우도에 올 때 미리 슬리퍼 등을 준비해 왔으면 우리도 물에 발 한 번 담그고 갈 텐데 준비 없이 왔기에 멀리서 사람들이 물에서 노는 모습만 볼 수밖에 없었다.

 
 
 
 

카페의 정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데 손님이 우리 밖에 없는 것이 이상했다.

 
 

카페 안에서 보는 풍경도 좋고 밖에서 보는 풍경도 좋았다. 이런 곳에서는 칵테일이나 맥주 한 병 주문해 놓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최고인데, 또 갈 길이 멀기에 더위로 인해 떨어진 에너지만 충전한 후 다시 길을 나서야 했다.

 
 

해안 도로를 따라가면 한참을 돌아서 가야 하기에 다시 마을 길을 지나 처음 배를 탔던 하우목동항으로 갔다. 우도의 해안 길은 올레 1-1길이기 때문에 올레길 탐방을 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올레길을 맞이하는 곳이다.

 
 
 

마을길로 들어서기 전 잠시 해변을 들렸다.

 

대왕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다음에 또 올 기회가 있겠지 생각하며 다시 길을 걸었다. 그림과 같은 풍경을 마음속에 담아둔 채로.

 
 
 

항상 돌아가는 길은 힘든 것 같다. 배 시간을 체크하며 걷는 속도를 조절했다.

 

약간의 오르막이 계속되어서 숨이 찼다. 그러나 언덕이 심하지 않기에 누구나 산책 삼아서 걸을만한 경사였다.

 
 
 

뒤를 돌아보면 바다가 보이고 앞에는 마을이 보였다.

 
 

왜 그렇게 아쉬운지 한 번씩 뒤를 돌아 보았다. 조금씩 앞으로 걸어갈수록 높은 곳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우도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 나왔다. 그래도 한번 지나왔던 곳이라고 다시 보니 반가웠다.

 
 

마을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면 하우목동항이 나왔다. 뜨거웠던 햇빛은 이제 조금 누그러진 것 같다.

 
 

지나왔던 길이라 빠르게 항구로 걸어갈 수 있었다.

 

항구에 딱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이 먼저 탑승한 후 차를 배에 싣기 시작했다.

 
 

우도에서 성산포항까지 1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서서 가기 싫어서 배의 3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누워서 갈 수 있는 방이 있지만 3층 벤치에 앉았다.

 
 
 

해는 서쪽 하늘로 지고 있었다. 하늘은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하늘은 벌써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배 안은 사람과 차들로 빼곡했다. 사람들이 먼저 내린 후 차를 배에서 내렸다.

 

그 많던 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우리 차 만 덩그러니 있었다. 하루 주차비 최대가 8,000원인데 경차라 반만 내면 되었다. 경차 혜택을 이런 곳에서 볼 수 있었다.

 

네비가 알려준 길이 아닌 해안 도로를 따라 제주 시내까지 달렸다.

 

서쪽으로 가다 보니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가야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멋진 노을을 따라가는 것은 너무 행복했다.

 

하늘은 점점 불게 물들기 시작했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운 후 노을을 보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길가 옆에 있는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카페에서 바라본 노을은 발리의 노을을 생각나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지 못하고 도로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너무 슬펐을 것 같았다.

 

해는 서서히 수평선과 맞닿고 있었다.

 
 
 

우리처럼 지나다 아름다운 노을에 반한 사람들이 카페 마당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해는 극적으로 섬 뒤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다시 오고 싶었다. 그때는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서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하루의 저묾을 느껴보고 싶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해가 섬 뒤로 숨어버리니 아쉬움이 남았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는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착륙을 하고 있었다. 여행의 하루는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 같다. 이 시간을 잡아둘 수 없는 것일까.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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