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어디 갈 수 없었다. 저녁에 해운대만 산책 삼아서 다녀왔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무거웠다. 전날 고창 선운사에 갔다, 부산으로 오니 은근 차를 오래 타고 산책한다고 저녁에 많이 걸었더니 몸이 축 가라앉았다. 늦잠을 잔 후 늦게 일어나 해운대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라 바다엔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파도는 평소보다 크고 거칠어 보였다.
처음 오는 곳은 아니지만 뻥 뚫린 해운대는 언제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바다 위 구름은 조만간 비를 뿌릴 것 같이 보였다. 아빠는 이번 여행에 셀카봉을 챙겨오셔서 멋지게 혼자서 사진을 찍으셨다.
날은 흐렸지만 오늘따라 오륙도는 선명하게 보였다. 날이 더 좋으면 대마도도 보이는 곳인데 이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부산 여행의 첫날인 만큼 오늘은 해운대 근처만 구경하기로 했다.
작년에 부산에 왔을 때도 갔었지만 청사포까지 밖에 걷지 않아서 오늘은 송정까지 가보는 것이었다.
예전에 동해남부선 열차가 다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철도가 이설되어 관광지 겸 동네 주민들 산책길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도 내 인생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뒤를 돌아보면 엘시티와 해운대의 초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이곳의 주택들과 대조를 이루며 이곳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익숙한 이름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인터넷의 힘을 빌려 보았다. 역시 세계적인 스타인 BTS 멤버 정국의 생일 축하를 알리는 데코였다. 전에 BTS 멤버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KTX 도장을 바꾸었던 적이 생각난다.
기존 동해남부선을 활용해서 지금은 해변 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송정까지 걸어갔다 올 때 해변 열차를 타고 오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산책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마침 해변 열차가 미포 정거장으로 들어왔다. 기차에도 슈퍼스타 정국의 생일을 축하하는 멘트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열차가 들어오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서 급하게 열차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로 갔다. 스카이 캡슐을 타볼까 생각했다가 가격을 보니 바로 마음을 접고 편도 열차 티켓만 구매했다.
열차 출발이 얼마 남지 않아서 뛰지는 못하고 총총걸음으로 빨리 걸어갔다.
붉은색의 기차가 마음에 들었다. 빨간색에서 여행의 정렬이 느껴졌다.
기차 안에는 승객들이 거의 없었다. 이 큰 기차에 승객들이 겨우 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평일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기차 한 칸을 우리가 전세 낸 것 같았다.
기차의 의자들의 바다가 보이도록 한쪽으로 놓여 있었다.
미포 정거장을 출발하니 해운대의 바다와 반대편 멀리 있는 이기대, 오류도 등이 보였다.
큰창을 통해 바다가 시원시원하게 보였다. 주말이었으면 많은 사람들에 치여서 봤을 텐데, 평일이라 편안하게 넓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터널을 지났다. 밖에서 볼 때와는 열차를 타면 보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기차는 중간역에서 잠시 정차를 했다.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었다.
바다가 보였다, 소나무 숲이 보였다를 반복했다.
이렇게 사람이 없어도 되는 거야, 너무 적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사포와 청사포 다릿돌을 지나니 점점 송정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덕포는 항상 이름만 들어봤지 가본 적은 없었다.
드디어 송정역에 도착했다. 승객은 아빠와 나 둘뿐이었다. 탈 때 너무 급하게 타서 기차 앞에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정차된 열차 앞에서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운행 대기 중인 다른 열차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구 송정역을 통해 송정해수욕장으로 갈 수 있었다. 송정역 안에서 바다가 보였다. 일본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소도시의 간이역에 온 것 같았다. 15년 전에는 이곳이 부산이긴 했지만 부산의 변두리이긴 했지만, 지금은 핫하게 떠오르는 곳이 되어 버렸다.
송정역을 나와 바다 쪽으로 걷는데 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다가 보이니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송정해수욕장에 도착하니 가을이었지만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이 많았다. 한국인지 하와이인지 헷갈렸다.
과거엔 서퍼들이 해운대에서 서핑을 했는데 요즘은 송정이 서핑으로 핫한 곳 같았다.
해운대보다 이곳이 파도가 더 크고 거친 것 같았다.
서핑보드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기억하던 과거의 송정해수욕장이 아니었다. 시간이 15년이나 지났으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한 것 같다.
해수욕장 가운데에는 폐품으로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폐품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왔지만 점심시간이라 배가 출출했다.
바게트 버거, 왠지 맛있을 것 같아서 송정당으로 갔다. 실내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바게트 버거를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잠시 동안의 휴식이었지만 에너지 게이지가 풀로 찼다.
끊임없이 파도는 먼바다에서 밀려왔다.
오랜만에 본 공중전화가 신기해서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보았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릴 듯 말 듯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다 말다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진짜 잠시 동안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겨오지 않아서 우린 건물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십여 분간 비가 내렸다.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다. 우리는 송정해수욕장 끝에 있는 죽도로 갔다.
소나무 숲을 지나 죽도 끝에 있는 정자로 갔다.
해운대 쪽은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길게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마음까지 시원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무들이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작은 돌섬에 운치 있는 공원이 있는 게 신기했다. 내 기억은 너무 오래전 기억만 있어서 송정의 바뀐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번 기회에 송정에 대한 내 기억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도 내 머릿속은 15년 전, 군 생활할 때 보았던 그때 그 모습이 더 많이 남아 있기는 한 것 같다. 머릿속에 각인된 것 같이.
죽도에서 나와 용궁사까지 걸어갈까 고민을 잠시 하다 돌아올 때 힘들 것 같아서 다시 해운대로 걸어가기로 했다. 송정해수욕장을 걷고 있는데 카페 문이라는 곳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 신기했다.
서퍼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서퍼들이 해변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가는 모습이 꽤 이국적이었다.
오전보다 오후가 되니 구름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해운대로 걷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되었다. 송정으로 올 땐 이 길이 그렇게 길다 느껴지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한두 번 벤치에 앉아 쉬었다 갔다.
해변 열차는 수시로 지나다녔다. 그리고 먼바다에서는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구덕포쯤 오니 기찻길 옆으로 식당과 카페가 있었다. 전부 바다가 보이는 카페와 식당이다 보니 가게 안에는 손님들이 꽤 보였다. 차 한잔하고 갈까 하다가 빵이랑 커피를 마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카페 앞에서 사진만 찍고 또 계속 걸었다.
좋은 추억도 좋지 않은 추억이 있는 곳이라 걸으며 잠시 옛 추억에 빠져 볼 수 있었다.
맨날 징글징글 보던 구덕포 등대를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저 컨테이너선은 부산항에 입항하기 위해 대기하는 것인지 어디로 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걷다 보니 그래도 청사포 다릿돌까지 왔다.
다릿돌 전망대는 태풍으로 인해 입장을 할 수 없었다.
청사포쯤 오니 아주 멀리 해운대의 슈퍼 초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요즘 사진 명소로 핫한 청사포 역 앞 횡단보도에서 콘셉트 사진도 찍었다.
도로 끝 바다가 보이는 모습에서 슬램덩크 오프닝 장면이 떠올랐다.
청사포 역에 오니 스카이 캡슐이 보였다. 가격의 부담만 없으면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걷고 있으면 힘들었던 외로웠던 그러나 찬란했던 과거에 빠지기도 했다, 현재로 돌아왔다를 반복했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아침에 보았던 오륙도가 선명히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 길이 끝이 보일 것 같았다.
와! 태풍이 오기는 오는 것일까? 구름이 짙게 하늘을 덮고 있지만 시정이 너무 좋았다.
밤이 더 화려한 터널을 지났다.
해운대 쪽으로 걸어갈수록 해운대의 스카이라인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저 멀리 미포 정거장에서 스카이 캡슐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스카이 캡슐이 꼭 엘시티 빌딩에서 출발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나중에.
한참을 걸어서 아침에 시작했던 이곳으로 다시 도착했다. 왕복으로 걷기엔 약간 부담스러운 거리인 것 같다. 갈 때든 올 때는 해변 열차를 이용해 여행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많이 걸어서 힘들었지만 과거와 현재를 둘 다 즐길 수 있는 시간이어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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