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하루하루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원래는 하루종일 수영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였는데, 막상 바다에 몇 시간만 나가서 있다보면 힘이 들어서 하루종일 노는 것은 체력이 안되어 오전 그리고 오후로 나눠서 하루에 한번만 수영을 했다. 나머지 시간은 뭐를 할까 고민을 했다. 어쩌다 보니 차를 가지고 제주에 왔으니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이번 기회에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수영을 하지 않을 땐 숙소에서 쉬면서 함덕해변을 바라다 보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외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이 빠진 함덕해수욕장은 물이 차있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다르게 느껴졌다. 숙소 앞까지 물이 찰랑거렸던 해변은 물이 빠지면 흰모래가 매력적인 해변으로 변했다. 매시간 시시각각 바뀌는 함덕해변의 모습을 매일매일 보는 것이 제주여행의 하나의 기쁨이였다.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제주도의 푸른밤이라는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제주 닭머르 해안길
이날은 오전에 해변에 나가서 수영을 했다. 날이 뜨거워 오래하지는 못하고 한 2시간 정도 수영을 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날이 좋아 오후에 석양이 아름다울 것 같았다. 어디론가 가기위해 차를 끌고 숙소에서 나왔다. 막상 숙소에서 나오니 어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득 생각난 곳이 닭머르 해안길이였다. 겨울 제주 2주살이를 할 때, 가봐야지 가봐야지 생각만 있던 곳이였기에 갑자기 떠올랐다. 네비가 알려주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네비는 우리를 시골마을 한 곳 판으로 데려다 주었다. 뭔가 블록그에서 본 닭머르 해안길과 느낌이 달라서 일단 좁은 길인 동네를 벗어나 블로그에서 소개된 닭머르 해안길 정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공터가 있기에 주차를 하고 가파른 언덕같은 곳을 올라갔다. 우리가 가는 길에 고양이가 먼저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언덕에 오르니 멀리 블로그에 있는 정자가 서있었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왔다. 정자 뒤편으로 보이는 공업지구의 굴뚝이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제주의 날씨가 푹푹 찌듯이 더웠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더위를 식혀주었다.
정자로 난 길의 난간은 이곳의 모습을 더욱더 이국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한쪽으로는 제주의 공업단지의 굴뚝이 보였고, 다른 한쪽은 제주의 천혜의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정자에 올라서 잠시 땀을 식혔다. 수영할 때는 그렇게 더운지 몰랐는데, 햇살이 많이 수그러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많이 더웠다. 그리고 제주의 습함까지 바람으로 습함을 날려버렸으면 좋겠지만 바닷바람은 습한 느낌까지는 없앨 수 없었다.
관광객이 많지는 않지만 간간히 이곳을 들리는 관광객이 있었다.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도 멋지지만, 정자에서 바라본 난간도 아름다웠다.
이곳을 보고 어디를 갈까 고민이되었다. 오늘 날씨도 좋은 것이 석양도 멋질 것 같았다. 그래서 제주에서 일몰을 보기 좋은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 저번여행에서 한담해변의 노을은 보았기에 한담해변은 제외했다.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기는 했다. 그곳은 새별오름이였다. 버스나 차를 타고 여러번 그 주변을 지나가기는 했지만 새별오름에 오른적은 없기에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한적한 곳이라 한번쯤 들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피하게 되는데, 이런 곳은 언택트 관광지로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차가 없으면 꽤 이곳까지 오기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버스로 오기위해 알아본 적이 있는데, 이것만 보러오기에는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조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차로 돌아가는 발길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계속 뒤돌아서 서서 멀어져 가는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 버튼만 의미없이 눌렀다.
닭머르 해안길에서 새별오름으로 향했다. 네비는 제주시내를 거쳐서 가는 길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제주시내도 퇴근 시간에는 막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제주시내에 가까질 수록 차는 계속 신호에 걸렸다. 그리고 제주 외곽에 비해 확실히 차가 많아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노을이 멋진 오름, 새별오름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제주시내를 통과했다. 이러다 새별오름에 가기 전에 노을이 다 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제주시내를 벗어나니 차는 속소를 낼 수 있었다. 다만 제주 시내로 들어가는 반대쪽 차선은 정체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별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니 멋진 노을을 보기위해 온 관광객들의 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에는 푸드트럭에서 허기지고 바쁜 여행자의 배를 채워주고 있었다.
막 노을이 지기 시작하기에 우리는 잽싸게 오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 이 오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코스는 단순했다. 그냥 한길로 난 길을 따라서 주욱 올라가면 되었다. 그런데 경사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조금 올랐을 뿐인데 벌써 숨이 헐떡거렸다.
저녁 햇살을 받은 한라산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 오름들은 오늘 장사를 마감하고 내일을 기약하듯 오늘 관광객 맞이를 마무리하는 것 같았다.
오름에 오를 수록 주변이 조금 더 붉게, 노랗게, 주황빛으로 물들어 갔다.
마지막 언덕을 오르는데, 이 언덕의 기울기는 장난이 아니였다. 실수로 넘어지면 그대로 저 아래로 굴러갈 것 같았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땀이 미친듯이 나서 땀이 눈에 들어갔다. 시야가 흐려졌다. 아찔했다. 그래서 넘어지면 안되기에 옆에 있는 난간의 줄을 꼭 붙잡았다.
날이 너무 맑기에 한라산의 서쪽 사면이 보였다. 구름이 한라산으로 몰려가는 것 같았다. 한라산 북쪽하늘은 구름이불로 덮혀져 있었다.
아빠도 힘드신지 몇발을 걷다가 쉬고 다시 몇발을 걷다가 쉬셨다. 그리고 쉬면서 해가지면 조만간 사라질 한라산을 보았다. 왠지 제주도에 와서 한라산이 보이면 기분이 좋았다. 잔디밭에서 찾은 네잎클로버 같다고 해야할까! 날이 좋지 않을 땐 그 모습을 꼭꼭 숨겨두는 한라산 정상이기에 한라산이 보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드디어 새별오름 정상에 올라왔다. 올라오는 살 것 같았다. 이맛에 이렇게 가파른 오름을 올라오나 보다! 날이 맑아 주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새별오름, 새별오름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은 해바라기처럼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며 핸드폰 또는 카메라의 셔터를 끊이지 않고 눌렀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오늘 못보면 다음에 와서 보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게 마지막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멀리 신기루처럼 빛나는 비양도의 모습이 보였다.
붉게 빛나는 태양빛에 비양도가 타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쓸모없는 생각과 오랜만에 90년대 갬성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생각보다 오름의 정상이 넓어서 사람들의 방해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바다를 보아도 산을 보아도 뭐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이곳을 오지 않았다면 항상 마음 속의 짐처럼 남아 있었을 것 같았다.
수평선 너머의 구름 때문에 아쉽지만 해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은 하늘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했다.
비행기들은 애월쪽에서 제주공항쪽으로 착륙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본 제주의 노을은 또 어떤 모습일까? 비행기를 타본지가 언제인지.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를 한번 타보다 좋아했었는데, 징글징글한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비행기와 또 멀어졌다. 그래도 배를 타고 제주에 온 것은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웠다.
하늘은 점점 붉게 변하더니 햇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이제 검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난 해가 수평선 밑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보다, 해가 사라진 후 한쪽은 검푸르게 다른쪽은 짙은 주황색을 띤 하늘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해가 사라진 후 딱 40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해가 구름 뒤로 숨으니 사람들은 오름에서 내려갔다. 난 이순간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 뒤에는 바로 어둠이 찾아오기에 우리도 슬슬 이동을 해야 할 거 같았다.
더 늦게 이곳에 도착했다면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쳤을 것 같았다. 더 빠르지도 않고, 더 늦지 않게 왔기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제주의 석양을 볼 수 있었다.
더 어두워지면 내겨가기 힘들 것 같아서 서둘러 내려갔다. 내려갈 땐 올라왔던 길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내려간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벌써 길이 어두워서 카메라고 사진찍기 힘들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오름을 유유히 오르는 개 한마리가 보여서 순간 모든 근육이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 견공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우리 옆을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나만 혼자 쫄아서 긴장했던 것 같다. 내려가는 길에 젊은 사람들이 점프사진을 찍길래 우리도 한번 따라서 찍고 싶었다. 그런데 인생샷 명소인지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철조망 앞에서 점프샷을 어설프게 찍었다.
내려오는 그사이 벌써 해가 다 져버렸다. 오름 아래에 내려오니 오름의 실루엣만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오름은 경주의 왕릉을 연상시켰다.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오름은 장엄하면서도 무섭게 보였다. 오름이 나를 덮치는 것 같았다.
한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다시 함덕해변으로 왔다. 당연히 주차장은 차로 꽉 차있었다. 그래서 숙소 근처에 차를 주차했다. 제주의 밤공기와 밤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들은 해안길로 나와 제주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Love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Jul 1.5 함덕해수욕장의 노을 (0) | 2021.08.06 |
---|---|
2021 Jul 1.4 제주 원시림을 거닐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 (0) | 2021.08.03 |
2021 Jul 1.2 푸른 바다와 바람이 있는 곳, 함덕해수욕장 (0) | 2021.08.02 |
2021 Jul 1.1 실버클라우 타고 제주가기(완도에서 제주도까지) (0) | 2021.08.02 |
2021 Feb 1.8 몽환적인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 (0) | 2021.05.04 |